잘하는 일에만 집중하면 실험과 도전은 누가 하나

[경영 전략]
용기 없는 자들의 변명거리…“핵심 역량을 길러라”[박찬희의 경영 전략]
경영학 용어들이 상식이 된 세상이다. 과거 경영학과 시험에나 등장하던 단어들이 술자리 대화에 등장하고 신입 사원 면접에서는 한때 컨설팅 회사에서나 쓰던 전문적 단어들이 둥둥 떠다닌다.

대표적인 말이 핵심 역량이다. 잘 모르는 사업 함부로 하지 말고 잘하는 능력을 키워 사업의 기반으로 쓰라는 지당한 말씀이니 딱히 뭐라고 토를 달기도 어렵다. 하지만 사실 핵심 역량만큼 게으르고 용기 없는 자들이 변명거리로 삼기 좋은 말도 없다.

입만 열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고 혁신하라면서 난데없이 잘하는 일에 집중하라니 어쩌란 말인가. 잘되면 핵심 역량이 받쳐 줬기 때문이고 반대로 잘 안 되면 핵심 역량이 부족했던 탓이라니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다.

평생 장사 한 번 안 해 본 주제에 책에서 몇 줄 봤다고 선택과 집중 운운하며 남의 사업을 떼어라, 팔아라 재단하는 분들도 핵심 역량을 들먹인다. 단순한 제품·부품 단위의 생산 기술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혁신 능력이 핵심 역량이라고 설명하지만 이것은 ‘인재 경영’, ‘기술 제일’ 같은 표어와 다를 바 없다.
핵심 역량과 경쟁 우위핵심 역량은 당연히 의미 있는 개념이다. 잘 모르는 사업을 함부로 하면 망하니까. 하지만 제대로 알고 정확히 쓰지 않으면 대충 하던 일이나 뭉개며 버티는 용기 없는 자의 변명거리로 쓰일 뿐이다. 경영학은 주로(생산·마케팅 등) ‘XX를 잘하는 방법’을 공부한다. 그래서 막상 무엇을 하면 돈이 되는지 물어보면 답이 궁하다.

그나마 전략 계획은 유망한 사업을 찾고 돈과 사람, 기술을 동원해 사업을 만들어 내는데, 강약점·기회·위협을 분석하는 ‘SWOT 분석’이 대표적이다. 여기 나오는 강약점은 나중에 개념화된 핵심 역량과 다르지 않다.

마이클 포터는 산업 경제학을 바탕으로 ‘돈이 되는 사업’의 조건을 풀어냈는데, 돈이 안 되는 사업은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고 어떤 사업을 택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기존의 경영학계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기존 경영학자들과 결이 달라 정년 보장도 어려운 형편이었던 마이클 포터에게 경영학계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1980년대 초반의 일이다.

기존의 경영학자들, 특히 전통적으로 전략 계획 수립, 경영자의 정책적 통합 등을 공부하던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사업도 능력이 안 되면 소용없다’는 반론을 제기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핵심 역량이다.

기초적인 기술 역량과 이를 조합하는 실력이 갖춰져야 제품 시장의 경쟁에서 이긴다는 얘기다. 코임바토레 크리슈나라오 프라할라드는 뿌리가 튼튼한 나무에서 좋은 잎과 열매가 열린다는 비유를 드는데, 캐논의 이미징 기술과 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일련의 체제(아키텍처)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뿌리를 제대로 만들고 키우는 능력, 그럴 사람과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더 근본적인 조직 고유의 능력(organizational capabilities)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제품·부품 수준의 기술적 능력보다 기업의 의사 결정과 운영체제 전반을 봐야 한다는 논리인데, 로마의 혁신적 병기나 전술보다 그 혁신을 가능하게 만든 로마인의 능력을 보라는 얘기다. 아무리 좋은 애플리케이션을 깔아도 운영체제(OS)가 좋지 않으면 시스템이 엉키고 무너지는 것이 좋은 예다.

아무리 좋은 사업도 능력이 받쳐 줘야 한다는 반론에 대해 마이클 포터와 그의 후학들은 기업의 가치 창출 과정을 다양한 활동의 집합으로 정의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고유의 강점이 있는지 찾아 보여주는 ‘가치 사슬(value chain)’의 개념을 제안했다.

쉽게 말해 아마존의 물류와 배송은 월마트와 비교할 때 어떤 강점을 갖고 있는지, 현대자동차의 부품 조달과 마케팅 지원은 테슬라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당신들이 좋아하는 역량, 우리 식으로 풀어봤다’는 얘기다.
사업을 망치는 얼치기 경영학A그룹은 한때 ‘업(業)의 개념’을 내걸고 스스로 손발을 묶었다가 수많은 기회를 날린 적이 있다. 고유의 핵심 역량, 조직 능력 같은 그럴듯한 논지도 더해졌다. 호텔사업은 서비스가 핵심이라며 아무리 좋은 부동산 매물이 나와도 거절하는 것을 보고 ‘문 앞에 금덩이가 떨어져도 업의 개념이 아니라며 고개를 돌릴 사람들’이라 어이없어 하던 기억이 난다.

B자동차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고유의 강점이 필요하다며 엔진 기술 개발과 생산 라인 개선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아무리 좋은 엔진도 전기자동차 시대가 되면 무용지물이 되고 생산의 규모와 방식도 달라진다. 전쟁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므로 함락되지 않는 성은 없다. 난공불락의 성이라고 믿으면 안으로 숨으려고만 들어 더 빨리 망하는데 그런 성을 만들자고 무리하게 국력을 소모하다가 망할 수도 있다.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한 아마존이 책 선정과 주문 처리에 운명을 걸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거래 연결과 배송을 고유의 강점으로 삼아 여기에 집중하고 다른 ‘비핵심적 사업 활동’에서는 손을 떼었다면 지금 아마존 영업이익의 절대적 비율을 차지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는 없을 것이다. 기회가 보이면 조금씩 실험이라도 해보고 회사의 능력과 성격에 맞지 않으면 투자라도 해 볼 일이지 아무 데나 선택과 집중이라니….

인텔의 창업자 앤디 그로브는 세상의 변화에는 그 흐름이 바뀌는 변곡점이 있는데 여기서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이 나오고 다시 모바일로 이어지면서 생겨난 기업들이나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에너지 변화와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이 보여주는 기회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큰 부자는 난리통에 난다는 옛말과도 비슷한데, 늘 하던 잘하는 일에 매달리면 이런 기회는 잡을 수 없다.

그래서 특정 제품 수준의 산업 내 경쟁력에 집착하지 말고 세상이 뒤집히는 기회를 보라는 ‘파괴적 혁신’ 주장이 나오고 사업들이 맞물린 생태계에서 ‘일시적 우위(transient advantage)’에 우쭐하지 말고 다양한 분야의 실험적 시도를 하면서 능력을 준비하고 본격적 사업 기회를 잡으라는 주장도 나온다. 방향을 정해 놓고 한 우물만 파는 정성보다 발 빠른 대응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있다.

사업 기회를 먼저 생각하고 필요한 능력을 따져보나, 무엇을 잘하는지 먼저 살펴보고 사업을 구상하나 현실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다. 더 공상적으로 미래와 비전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사실 자기 돈이면 되는 일인지 속으로 고민한다.

한가한 학자들이 편을 나눠 무슨 이론이니 학파니 우겨 댈 뿐,그 이면에는 전공과 출신 학교, 소속 학회의 치사한 다툼이 숨어 있다.

경영학의 모든 개념과 기법들은 일정한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핵심 역량은 제품·부품 수준에서 일정한 기초 기술이 갖춰져야 성장이든 변신이든 가능하다는 얘기이고 그냥 두면 점점 여러 일을 벌이며 몸집을 키우는 조직의 속성을 경계하는 점에서 유용하다.

조직 고유의 능력은 기업의 의사 결정과 운영체제 전반이 갖는 잠재력·확장성을 생각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양한 실험적 노력들로 실력을 키우면서 제대로 된 도전과 혁신을 살리는 체제를 갖추라는 뜻이다.

시시각각 생기는 현안들을 팽개치고 ‘완벽한 체제’를 만든다고 덧없이 세월을 보내라는 얘기가 아니다. 원래의 문제의식이나 그 배경이 되는 맥락을 모르고 그럴듯한 단어나 외워 우겨대는 얼치기 경영학은 바보가 되는 지름길이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