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와 공급에 맡기면 자연스럽게 집값 잡힌다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3일 인수위 간사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3일 인수위 간사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격렬했던 대선이 끝나고 오는 5월 10일이면 새 정부가 들어선다. 이번 대선의 주요 핵심 쟁점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심판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기대감도 대선 열기에 상응할 만큼 크다.

새 정부는 주택 정책에 대한 민심을 정확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과거 참여정부나 현 정부가 부동산 문제로 정권을 잃었는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부동산 정책은 잘못 활용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현 정부가 부동산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해서 정권을 잃은 것이다. 방향이 처음부터 잘못돼서다.

집값 안정화에 담긴 ‘동상이몽’

부동산 정책과 주택 정책의 목표는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 흔히 주택 정책의 목표를 집값 안정화로 인식한다. 하지만 안정화라는 단어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느 동네에 A와 B·C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A는 집을 소유한 사람이고 B와 C는 무주택자다. 이 동네에는 무주택자가 더 많아 집값 하락을 바라는 이들이 더 많다. 집값이 떨어져야 본인이 싸게 집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민심에 따라 이 지역의 정책 담당자가 집값 하락 정책을 펼쳐 집값이 떨어졌다고 가정하자. B는 이때가 기회라는 생각에 은행 대출과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집을 마련했다.

이후 B는 앞으로 집값이 떨어지기를 바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집값이 떨어지면 기존에 집을 빚 없이 소유했던 A보다 B가 더 큰 타격을 받는다. 여론 조사를 다시 실시하면 이 지역의 민심은 집값을 올려야 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바뀐 민심으로 정책을 180도 전환해야 할까. B가 집을 사기 전까지 집값을 내리는 정책을 쓰다가 B가 집을 산 시점 이후 정책을 바꾸는 것이 과연 정의일까. 여전히 무주택자인 C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객관적인 방법을 동원한다면 어떠할지 생각해 보자. 정상적인 집값과 적정 집값은 측정하기 매우 어렵다. 1인당 국민소득 수준으로 할지 선택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서울 한강 인근의 주택과 시골을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할 수도 없다.

집값을 안정시킨다는 말은 쉽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이들은 이 문장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 적정 집값을 책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안정화도 어렵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의 주택 정책 방향…“집값은 시장·공급에 초점”[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가격은 시장, 공급은 정부의 몫

새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할까. 인위적으로 안정시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집값을 올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집값이 오르거나 내리더라도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집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면 집값은 떨어질 것이다. 반면 집값이 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으면 집값은 오를 것이다. 수요가 많은 곳은 집값이 오르고 수요가 줄어드는 곳은 집값이 떨어지는 자연스러운 상황이 나타날 것이다.

모든 시장 참여자, 크게는 5000만 국민 개개인의 미묘한 이해관계가 표출된 것이 시장 가격이다. 시장의 자율 기능을 믿지 않고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정책은 꼬이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정부가 마냥 손을 놓고만 있어야 할까. 그것은 아니다. 시장에 지속적으로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집값을 안정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일부 규제주의자들은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공급을 늘려봤자 자산가들이 이것을 차지해 무주택 서민이 차지할 몫이 없어 규제를 강화해 소유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따랐던 문재인 정부는 실패했다.

한국이 민주화된 후 집권한 여섯 정권에서의 아파트 상승률을 보면 상대적으로 규제를 완화한 보수 정권에서는 평균 9.7% 상승했다. 반면 규제가 강화된 진보 정권에서는 집값 상승률이 36.7%에 달했다. 규제로 집값을 절대 안정화할 수 없다는 방증이다.

참여정부의 8·26 조치나 문재인 정부의 8·2 조치의 예에서 나타난 것처럼 강력한 규제 조치 후에는 시장이 잠시 주춤한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이전보다 훨씬 높은 반등세가 나타나곤 했다.

반대로 규제가 완화되면 당분간 어느 정도 집값이 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집값이 안정된다는 것을 전 정권의 집값 상승률이 증명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규제 강화를 통해 집값 잡기’가 아니라 ‘규제 완화를 통한 양질의 주택을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다.

규제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점은 지난 30년간의 결과가 증명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의 대통령의 취임사를 살펴보자. 집값 안정이라는 문구는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선진국 정부일수록 시장이 할 일과 정부가 할 일을 잘 구분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낸다. 또 헛된 약속을 남발하면 다음 대선 때 민심이라는 바다에서 배는 다시 뒤집힌다. 선진국 대통령들이 이를 잘 알고 있음을 새 정부는 기억해야만 한다.

아기곰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