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 매각 중단됐지만 ‘MB 유산’ 꼬리표에 10년간 해외 투자 10분의 1로 뚝

[비즈니스 포커스]
마다가스카르의 암바토비 니켈·코발트 광산의 광석 처리 시설. 사진=한국광해광업공단
마다가스카르의 암바토비 니켈·코발트 광산의 광석 처리 시설. 사진=한국광해광업공단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 자원 외교 사업의 실패 사례로 낙인 찍혔던 해외 광산들의 자산 가치가 재평가받고 있다.

정부는 당초 공기업의 재무 개선을 목적으로 해외 광산 매각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공급망 위기에 따라 매각 절차를 잠정 중단하고 유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 등 글로벌 공급망 위기 상황이 이어지면서 자원 전쟁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광해광업공단이 지분을 소유한 해외 광산 15곳 중 마다가스카르 중동부의 암바토비 니켈·코발트 광산, 파나마 코브레파나마 구리 광산 등 2곳의 매각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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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구리 광산 매각 뒤늦게 올스톱

암바토비 광산은 한국광해광업공단이 지분 33%를 보유하고 있다. 2006년 포스코인터내셔널·STX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암바토비 광산의 매장량은 원광 1억4620만 톤이다. 2014년부터 전기차 배터리 등에 쓰이는 니켈은 연간 4만7000톤, 코발트는 연간 3400톤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은 2012년 LS니꼬동제련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코브레파나마 광산 지분 20%를 취득했지만 2017년 LS니꼬동제련이 캐나다 퍼스트퀀텀에 지분 10%를 매각해 현재 한국광해광업공단 10%, 퍼스트퀀텀이 90%의 지분을 갖고 있다.

국제구리연구그룹(ICSG) 보고서에 따르면 코브레파나마 광산에서는 연간 35만 톤의 구리가 생산되고 있다. 광산 운영이 완전히 궤도에 오를 2023년부터는 연간 생산량이 4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천덕꾸러기, 적폐 취급 받던 해외 광산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공급망 위기가 심화하며 다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이명박 정부 때 공기업인 한국광물자원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가 주도한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이 큰 손실을 내자 2018년 한국 공기업의 모든 해외 광산을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해외 광산 매각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부채를 줄이기 위해 해외 광산을 헐값에 내다 팔았다. 2011년 인수한 칠레 산토도밍고 구리 광산 지분 30%를 캐나다 구리 탐사 업체 캡스톤마이닝에 1억5200만 달러에 매각했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그동안 약 2억4000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투자 원금의 60% 수준에 지분을 넘겨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다. 2011년부터 보유해 온 캡스톤마이닝 지분 11%(1971억원어치)도 지난해 전량 매각했다.

이와 함께 호주 와이옹 유연탄 광산, 파나마 코브레파나마 구리 광산,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코발트 광산 등을 포함해 해외 자산을 전부 매각할 예정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한국광물자원공사와 한국광해관리공단을 통합해 해외 투자 사업의 처분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한국광해광업공단을 출범하면서 기존 해외 자원 개발 직접 투자 기능까지 모두 없앴다.

그러던 중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공급망 위기가 커지며 미래 산업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의 수급 안정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해외 광산 매각을 올스톱한 상태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까지는 해외 자원 개발에 적극적이었지만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자원 가격 하락에 따라 투자가 위축되며 자원 투자가 대폭 축소됐다. 한국산업연합포럼 보고서에 따르면 신규 해외 자원 개발 건수는 2012년 33건에서 2020년 2건으로 뚝 떨어졌다.

공기업의 해외 자원 개발 투자도 2011년 70억 달러에서 2020년 7억 달러로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민간에 대한 자원 개발 융자 예산도 2010년 3093억원에서 2021년 349억원으로 9배 정도 축소됐다. 2012년 219개에 달했던 해외 광산은 매각 작업이 이어지며 2021년 6월 기준 94개로 줄었다.

미래 먹거리 산업인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원자재의 자급률이 0% 수준으로 해외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국가 차원의 해외 자원 개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니켈을 필두로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배터리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배터리업계에서는 원자재 확보전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정권 따라 부침…장기적 안목 필요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 흐름에 따라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로봇·자율주행차·2차전지·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생산에 필요한 리튬·코발트·구리·아연·희토류 등 원료 광물 자원 확보를 위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2차전지·석유화학·자동차 등 거의 모든 원자재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 빈국으로 공급망 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일관적 해외 자원 개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에너지와 광물 자원 수입 의존도가 높고 철광석·구리·니켈·희소 금속 등을 원료로 사용하는 철강·자동차·조선·반도체·2차전지 등 제조업의 국내총생산(GDP) 비율이 2020년 기준 24.9%로 높은 편이다. 그만큼 안정적인 자원 확보가 필수적이다.

또한 유연탄·우라늄·철·동·아연·니켈 등 6대 전략 광종에 대한 자주 개발률이 28%에 그치고 있어 일본(76%)과 중국(65%) 등 경쟁국 대비 자원 위기 상황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자주 개발률은 한국이 필요한 광물 자원 가운데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개발, 조달할 수 있는 에너지 자립도를 의미한다.

한국은 2008년 이후 희소성과 편재성으로 인해 조기 고갈 위험성과 공급 불안정성이 큰 35종의 금속 원소를 희소 금속으로 분류하고 있다. 희소 금속은 국가별로 산업 특성을 반영해 분류하는데 한국은 리튬·크롬·몰리브덴·텅스텐·코발트 등과 희토류(1종)를 포함한 35종의 광물을 희소 금속으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35개 희소 금속 가운데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이 14개에 달한다. 희토류 역시 70% 이상을 중국과 일본에서 수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수출통제법을 제정해 정부 주도로 세계 최대 희토류 기업을 출범시키며 희토류를 전략적 자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향후 중국·일본과 분쟁 발생 시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은 해외 자원 개발 온라인 세미나를 통해 “해외 자원 개발마저 정권 변동에 따라 부침을 반복하며 특정 원자재 획득 여부가 산업의 존폐를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을 받는 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자원 정책은 정권과 무관하게 장기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자원 정책은 산업계와 긴밀한 협조 체계를 구축해 핵심 자원 확보를 위한 신속하고 적확한 자원 외교와 공급망 관리가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