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대란에 반도체 품귀 현상…트윈 트랜스포메이션 경영 촉진

[스페셜 리포트-새로운 시대 새로운 전략, 트윈 트랜스포메이션]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세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기업 환경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됐고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은 그 타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불확실성을 안고 치열한 경쟁 무대를 헤쳐 나가야 한다. 다가올 미래를 사전에 대비한 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위기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삼았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큰 위기를 겪었다. 언제나 그랬다. 기업 생존을 위해 유연하고 탄력적인 리더십이 더욱 필요해졌고 기술 도입, 기업 구조 재편, 인재 전략 수정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위기감이 고조될 당시 CJ의 주요 계열사인 CJ제일제당·CJ대한통운 등은 소위 ‘코로나 특수’를 누렸다. 집밥 열풍에 가정 간편식(HMR) 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렸고 비대면 열풍에 택배 사업은 호황을 누렸다. ‘사상 최대 매출’로 이어졌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감은 높지 않았다. 6년 전 30만원대에 달했던 CJ의 주가는 8만원대로 10년 새 최저까지 떨어진 상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기존의 전통 사업군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는 시장의 냉철한 분석이 따른 것이다.

결국 지난해 11월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현재의 CJ는 성장 정체 상태”라고 진단하며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CJ의 대변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표하며 2025년까지 신사업 육성에 1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래 성장을 위한 변곡점에서 최고경영진의 깊은 고심이 엿보인 순간이었다.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세계
무역 의존도 14년 만에 최저치

기업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신규 전략 수립과 실행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신사업을 발표한 CJ뿐만 아니라 삼성·SK·현대차·LG 등 한국의 대기업들 모두 그룹별 사업 전략을 재편하고 새로운 성장 엔진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기업의 미래 전략엔 ‘디지털’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공통분모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들은 기존의 전통 사업에 디지털을 적용하는 디지털 대전환을 실시했고 앞으로 나아갈 성장 동력에는 ESG를 새로운 기준으로 적용했다. 올해 주요 기업의 신년사에 ‘변화 속 도전’, ‘미래를 위한 혁신’, ‘100년 기업’ 등이 공통적으로 담긴 배경이다.

저성장 시대에 기업의 위기의식은 늘 있었지만 이 같은 공통의 위기의식은 2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사태에서 촉발됐다. 2020년 초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 세계가 예상하지 못한 수요와 공급 충격을 동시다발적으로 겪으며 경제·사회적 측면에서 심각한 위기와 구조적 변화에 당면했다.

글로벌 경제는 2020년 3.3% 위축된 가운데 한국의 2020년 경제성장률은 대만(3.1%), 베트남(2.9%), 중국(2.3%), 노르웨이(-0.8%) 다음인 마이너스 1.0%를 기록했다. 글로벌 경제 순위로 보면 나쁘지 않았지만 과거 1998년 경제 위기(-5.5%) 이후 처음 겪은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가장 큰 위기는 무역에서 왔다. 전 세계를 연결했던 하늘길이 막히면서 수출이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 경제에서 수출입에 의존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무역 의존도’는 14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전체 수출입 총액을 명목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수치인 무역 의존도는 59.83%로 1년 전보다 3.50%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2005년(58.3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체 수출액을 GDP로 나눈 수출 의존도는 31.28%로 2006년(30.93%) 이후 최저치였고 GDP 대비 수입액인 수입 의존도는 28.55%로 2016년(27.08%) 이후 가장 낮았다.

무역 의존도가 너무 높으면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타격이 세계, 그중에서도 한국에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무역 문제는 곧 공급망으로도 연결된다. 공급망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원재료부터 완제품이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재화·서비스·정보의 흐름이 이뤄지는 연결망을 의미한다. 이전까지 공급망 관리는 개별 기업 차원의 문제였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이를 국가 차원으로 확대했다. 전쟁이 아니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주요국의 공급망 전략 자산화에 따른 ‘의도된 단절’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세계는 그야말로 공급망 대란에 빠졌다.

특히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가 공급망 대란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반도체 품귀 현상이 빚어졌고 이에 따라 반도체가 필수 부품으로 들어가는 전자·가전·자동차 등 주요 업계가 제품 생산에 큰 차질을 빚어야만 했다.

자동차는 반도체 대란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았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한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대수는 총 76만1975대로 코로나19 사태가 극심했던 지난해 3분기(92만1559대)보다 17.3% 감소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생산량이 대폭 줄었던 2008년 수준이다. 3분기 자동차 생산 차질의 주원인은 반도체 수급난이다. 주요 반도체 업체의 생산 공장이 델타 변이의 확산으로 봉쇄되면서 국내 공급이 막힌 것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코로나19 이슈가 해결된다고 해서 공급망 문제가 쉬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급망 붕괴를 경험한 미국은 반도체를 포함한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자국에 두려는 강력한 산업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대통령과 의회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의 국가 대표 반도체 기업들의 리스크도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각종 원자재는 코로나19 사태에 이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공급망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 사업본부의 공급망 관리(SCM) 조직을 대폭 강화하거나 자국 중심으로 체계를 재편하는 등 공급망 챙기기에 나섰다. 한국은 공급망을 확대하기 위해 유턴 기업 지원 규정을 완화하고 있다.

공급망 위기는 기업의 유턴을 불러오기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사례는 지난해 26개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2개가 늘었고 관련 통계를 공식 집계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단일 연도 기준으로 역대 최다 기록이다. 복귀 기업 중 중견기업의 비율이 34.6%(9개)로 전년보다 9.6%포인트 높아져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나머지 17개는 모두 중소기업이다. 업종별로는 자동차 6개, 전기전자 5개, 금속 3개였다. 복귀 전 진출했던 나라는 중국 18개, 베트남 4개, 미국 2개 순으로 중국·베트남에서 복귀한 사례가 85%를 차지했다.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세계
DX와 ESG 경영 가속화

디지털 전환과 ESG 경영도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나비 효과다. 세계적인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은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화를 더욱 빠르게 진전시키면서 ‘디지털 전환(DX)’을 촉발했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5세대 이동통신(5G)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이들 기술의 융·복합이 산업에 신속하게 도입되고 있다는 뜻이다.

디지털 기술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뿐만 아니라 자동차·기계·바이오·헬스·금융·유통 등 다양한 산업의 DX에 영향을 미쳤다.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은 내연기관차에서 순수 전기차와 완전 자율주행차로의 이행이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고 전통 산업으로 여겨진 금융권과 증권계 역시 온라인화의 확산으로 점포가 문을 닫는 대신 금융 상담, 자산 운용·관리, 주식 분석 등에 AI와 데이터 분석 기술이 도입되면서 비대면화·무인화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기업 경영에서 변방의 이슈였던 ESG가 기업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떠오르는 등 ESG 경영 시대가 도래한 점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특징이다. 기업들이 2년 새 사업장 셧다운, 공급망 붕괴, 대기 환경 개선, 임직원 안전, 고객 가치의 본질적 변화 등을 경험하면서 ESG로의 경영 패러다임 대전환이 가속화된 것이다.

기업들은 이 같은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사명 변경이라는 전략까지 쓰고 있다. 두산중공업이 두산에너빌리티로, SK건설이 SK에코플랜트로, 한화종합화학이 한화임팩트로, SK종합화학이 SK지오센트릭으로 중공업이나 화학 등을 떼어내고 ESG를 강조한 게 공통된 특징이다. 기존 사명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