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등은 켜졌다는데, 인플레이션은 무엇

[비즈니스 포커스]
지난 3월 전국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돌파했다. 사진은 4월 12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전국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돌파했다. 사진은 4월 12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도, 오팔(OPAL)세대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월급과 용돈은 그대로인데 기름값도 밥 한 끼 가격도 올라버렸다. 내 주변 가장 싼 주유 가격이 2000원이라고 내비게이션은 안내한다. 직장인들의 점심과 ‘소맥 1세트(소주 한 병, 맥주 두 병)’ 1만원 시대가 현실이 됐다. 대학가에선 더 이상 5000원 이하의 식사를 찾아볼 수 없다. 값싸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인기 만점이던 노량진 컵밥도 500원씩 올라 공시생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한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지난 3월 4%대를 돌파했다. 약 10년 만이다.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의 전방위 공습이 시작됐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지는 곳은 한국만이 아니다. 신문과 방송에선 ‘세계 각국이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올라온다. 인플레이션이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자산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이자 부담이 가중돼 자산 버블이 꺼질 우려도 있다. 자산 버블 붕괴는 자산을 팔아도 부채를 상환할 수 없을 만큼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을 뜻한다.

좋지 않은 의미인 것은 알겠다. 하지만 수십년 만의 인플레이션인 만큼 낯설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왜 발생했는지, 인플레이션이 금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당장의 주머니 사정 외에 인플레이션이 생활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한 번 들여다봤다.
우리는 왜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가
인플레이션과 함께 꼭 기억해야 할 단어가 있다. 화폐(돈)와 금리다. 우선 화폐. 상품의 가격은 오르고 돈의 가치는 떨어지는 것, 인플레이션이다. 예컨대 오늘 주머니에 있는 1000원으로 새우깡을 사 먹었다. 그런데 내일 가격이 올라 더 이상 1000원 한 장으로 새우깡을 살 수 없는 현상이다.

또 다르게 말하면 노동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일 일하는 양과 매달 버는 돈은 그대로인데 실제 쓸 수 있는 소득이 줄어드는 효과를 발휘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은 ‘소리 없는 세금’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질문. 새우깡이 매일 1000원씩 오른다면 소비자들은 새우깡을 오늘 살까, 내일 살까. 초등학생도 답할 수 있다. 오늘 살 수 있는 만큼 사두는 것.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더 오를 것을 가정하고 하루라도 일찍 더 많은 상품을 사들이려고 한다. 이때 적용되는 개념이 소비자의 물가 기대를 나타내는 ‘기대 인플레이션’이다.

실제 상황. 최근 미국의 소비자들이 예상한 인플레이션 수준이 또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지난 3월 설문 조사에서 향후 1년간 기대 인플레이션 중간값이 6.6%로 집계됐다고 밝힌 것. 이는 전월 6.0%에서 10% 오른 것으로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한국에선 1년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지난 3월 2.9%로 전달보다 0.2%포인트 높아졌다. 2014년 4월(2.9%) 이후 7년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잠깐 정리해 보자.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아졌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경제 주체들은 앞으로도 물가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미리 물건을 사들인다. 여기에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 임금 감소를 막기 위해 임금 인상 요구도 높아진다. 기업들은 미래의 물가 상승을 선반영해 가격을 책정한다. 결국 고물가가 ‘물가’를 더 자극해 소용돌이처럼 연쇄 작용을 일으켜 계속 올라가는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

혹자는 공급을 늘려 물건을 사려는 수요를 잡을 수 없는지 의문을 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당신이 사장이라고 생각해 보라. 물가가 치솟는 등 경기가 불안한 상황에서 새우깡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겠는가. 또는 결심이 섰다고 해도 생산 라인을 늘리고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그렇지, “새우깡 가격이 하루에 100%씩 상승한다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답을 하자면 “그럴 수 있다.” 물가 상승이 통제를 벗어난 상태로 수백 퍼센트의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하는 상황, 하이퍼인플레이션(초인플레이션)이다.

과거로 시계를 돌려보겠다. 가장 최근 사례, 베네수엘라. 지난해까지 초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 종잇조각이 됐다. 베네수엘라의 초인플레는 2017년부터 시작됐다. 2018년과 2019년 한때 물가 상승률이 연 백만 % 단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트럭에 돈을 한가득 실어 이동해도 강도가 돈이 아닌 트럭을 훔쳐 가는 게 이득이었던 셈. 하지만 이는 1946년 헝가리의 인플레이션 현상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당시 헝가리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산업 시설이 40% 이상 파괴됐고 석탄 생산량도 턱없이 떨어졌다. 하루 인플레이션율만 200%. 1945년 1펭괴를 주고 살 수 있었던 신문 한 부는 1년 만에 40양 펭괴를 내야 했다. 40양 펭괴는 4 곱하기 10의 29승, 즉 1경의 40조 배다. 그해 8월 헝가리는 결국 현재 사용하는 통화인 포린트(1포린트=40양 펭괴)를 도입했다.

가장 유명한 초인플레이션 사례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독일이다. 패전국인 독일은 32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감당하기 위해 돈을 대량으로 찍어냈다. ‘넘쳐나면 가치가 떨어진다.’ 불변의 진리다. 당시 독일에선 돈의 가치가 떨어져 한 달 월급으로 받은 지폐는 한 수레였고 비누 한 장을 사기 위해 양동이에 돈을 담아 갔다. 화폐 단위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10조 마르크짜리 지폐가 나왔다. 1913년부터 1923년까지 물가는 100억 배 뛰었다.

여기서 잠깐.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힌트가 있다. 우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도구인 금리다. 독일처럼 시중에 돈을 많이 풀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는 상승한다. 금리를 올리면 어떻게 될까.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돈이 은행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화폐 가치는 보존된다. 물론 금리는 물가 상승률보다 높아야 한다. 성공 사례는 미국이다. 1980년대 초 오일쇼크(석유파동) 여파로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13%를 웃돌았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발탁한 폴 볼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10%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취임 반년 만에 20%까지 끌어올리며 풀린 돈을 과감히 빨아들였다. 물가는 3년 만에 3%대로 떨어졌다. 다만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시중의 돈줄이 마르고 기업 부도와 실업자가 늘었다.

현재로 다시 돌아와 보자.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가격을 인상하고 아마존이 프라임 회원의 연회비를 올리기로 했다. 지난 3월 미국 소비자 물가가 1년 사이 8% 이상 급등해 40년 만에 가장 높이 치솟았다. 미 Fed는 예정대로 슈퍼 긴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Fed의 긴축은 기준금리를 올려 시중의 돈줄을 죄는 것이다. 당장 내달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높게 예상된다. 빅스텝은 기준금리를 통상 금리 변동 폭인 0.25%포인트의 2배인 0.5%포인트 올리는 것을 말한다. 이와 함께 지난 3월 예고한 대차대조표 축소(양적 긴축)도 내달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Fed가 금리를 올리면 한국도 가만히 있기는 힘들다. 원화로선 기준금리 수준이 미국과 같거나 높더라도 차이가 크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유출 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현재 1.00∼1.25%포인트, 한국(1.50%)이 높은 상태다. 하지만 미국이 빅스텝 세 번만 밟으면 역전될 수 있는 차이다.

그런데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대출 이자가 오른다. 지난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과 빚투(빚 내서 투자)로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투자한 이들에게 끔찍한 소식이다. 특히 저금리에 부채를 안고 부동산 투자를 했을 경우 자산 거품 붕괴로 이어지고 이는 금융 부실과 경제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주식 시장은 위축되고 가상화폐 시장도 출렁이고 있다. 올해 들어 코스피는 다시 3000선 밑으로 내려앉았다. 최근 예·적금 금리 상승의 영향으로 시중 자금이 주식 등 위험 자산을 떠나 은행 상품 등 안전 자산으로 이동했다는 의미다.

잊지 말 것. 앞서 언급한 볼커 전 의장의 사례 때도 기준금리 인상으로 경기 침체가 촉발돼 실업률이 10% 넘게 치솟았다. 당시는 결과가 좋아 미국에 호황기를 안겨줬지만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올린 금리 인상이 되레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도 있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인플레이션, 왜 왔을까?
그러면 최근 물가는 왜 올랐을까. 우선 노동 시장. 1980년대 이후 중국을 비롯한 옛 공산주의 국가가 세계 시장에 참여했다. 엄청난 규모의 노동자가 물가 하락을 유도한다. 이런 말이 있지 않나. “싸면 중국산이라고.” 어쨌든 40년간 생산 비용을 절감하는 세계화는 디플레이션(장기간 물가 하락)적이었다. 그런데 인구 구조가 변하고 있다. 노동 가능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한 명의 노동자가 부양해야 할 인구가 많아지는 셈. 이는 임금 상승 욕구로 귀결된다. 별다른 조처가 없다면 이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현재 인플레이션은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에서 비롯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방역을 위해 거리 두기 정책을 강화하면서 폐업하는 곳이 하나둘 늘어났다. 경제가 휘청이자 세계 각국 정부는 시중에 엄청난 돈을 뿌렸다.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해진 상황에서 방역이 완화되자 우리는 지원금을 알차게 썼다. 소비 수요가 증가한 것. 앞서 말했듯이 시중에 화폐가 늘고 소비 수요가 증가하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공급이 감소하면 물가가 상승한다. 코로나19 방역으로 생산 기지나 항구 등 물류 체계 일부를 폐쇄하면서 공급에 문제가 생겼다. 공급 능력이 심하게 훼손되면서 원자재 품귀 현상으로 운송 지연 사태가 장기화하는 등 글로벌 공급망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물가 상승은 예측 불가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두 나라 간 전쟁은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시장에 치명적이다. 특히 유럽. 유럽은 수입 원유의 27%, 가스의 41%를 러시아에 의존한다.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가스의 30%는 우크라이나 의 파이프라인을 거치고 있다. 결국 러시아산 가스를 대체하기 위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의 유럽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 미국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4월 들어 13년여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국제 유가는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으로 올해 들어 약 35% 뛰었다. 한국도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이 지난 3월 리터당 2000원을 돌파했다. 약 9년 5개월 만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글로벌 밀·옥수수 등 주요 곡물의 창고 역할도 해왔다. 러시아는 30%, 우크라이나는 18% 정도를 차지한다. 두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로 주요 곡물 가격 폭등하면서 애그플레이션(농산물발 가격 상승) 우려도 커진 상황이다. 올해 들어 밀값은 약 42%, 대두는 약 26%, 옥수수는 약 30% 각각 급등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하는 지난 3월 식량가격지수(FFPI)도 전달보다 12.6% 뛰어오른 159.3포인트를 기록, 2개월 연속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이 코로나19 재확산세에 경제 수도인 상하이까지 봉쇄하는 고강도 방역 규제에 돌입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문을 걸어 잠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미 고조된 공급망 불확실성을 악화시킨 것이다. 전문가들이 연일 언론에서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세계 경기 둔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유다.
그래서 피해는 누가?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다른 재앙들과 비슷하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고물가 통증을 더 크게 느낀다. 늘린 소비가 없는데도 미국 가구가 월평균 약 300달러를 추가로 지출하고 있다. 처음 언급하지 않았나. “월급과 용돈 빼고 다 오른다고.” 물가 상승과 실질 임금 감소 등으로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고 이들 중 중산층에서 탈락하는 이들이 생기는 현상, 스크루플레이션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지난해 중고차와 휘발유 가격 급등은 미국 중산층과 저소득층 주머니에 직격탄을 날렸다. 최근 중고차 가격 상승이 주춤했지만 1년 전과 비교해 30% 이상 급등했다. ‘자동차 사회’인 미국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중산층의 몰락은 사회에 양극화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다. 이는 경제 위기까지 연결된다. 미국 로버트 라이시(클린턴 정부 노동부 장관)는 그의 저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말했다. “양극화로 중산층이 줄어들면 소비가 감소하고 하위 계층들의 부채가 늘어나면서 성장 둔화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도 중산층의 몰락을 경계해야 한다. 한국소비자원이 발간한 ‘2021 한국의 소비 생활 지표’에 따르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코로나19 사태 2년 만에 84.9%에서 73.8%로 하락했다. 반면 하류층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019년 13.3%에서 2021년 24.7%로 11.4%포인트 증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탄탄한 중산층은 정치·경제적 안정을 높이는 사회의 필수 동력’이라며 중산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중산층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인플레이션, 전쟁 등이 겹치면서 앞으로 다가올 양극화가 매우 험난할 것을 예고한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