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EDITOR's LETTER]프로야구 40년, 야구의 쓸모와 정치의 무쓸모
“통념을 버려야 혁명이 산다.”

보스턴컨설팅 설립자 브루스 핸더슨이 한 말입니다. 그는 군사 용어였던 전략을 경영의 무대로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의 말대로 경영 혁신의 역사는 통념을 깬 혁명의 역사였습니다. 자동차의 엔진이라는 통념을 버린 테슬라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창조는 그냥 여러 가지 요소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휴대전화, 카메라, MP3 플레이어, 앱스토어, 따로 쓰는 게 당연했던 것들을 하나로 연결해 아이폰을 내놓았습니다. 요소는 식상했지만 결합은 새로웠습니다. 그는 비즈니스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삼성전자 세탁기의 작은 실패는 통념에 얽매인 결과였습니다. 1인 가구가 늘어나자 개발팀은 1인용 세탁기를 개발했습니다. 작은 세탁기였습니다. 잘 팔릴 리가 없었습니다. 데이터 전문가들이 나중에 파악한 것은 혼자 사는 사람들은 주말에 빨래를 몰아서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도 큰 용량의 세탁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파악한 것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통해 1인 가구, 빨래와 관련된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였습니다.

통념을 깬 전략으로 기존의 판을 뒤흔든 대표적 사례는 야구에도 있습니다. 1980년대 빌 제임스라는 야구광은 ‘야구 개요서’라는 책자를 냈습니다. 그는 방대한 선수들의 기록(요즘말로 하면 빅데이터)을 분석해 좋은 타자의 요건을 새롭게 정리했습니다. “가끔 홈런을 치는 타자보다 자주 볼넷을 얻는 타자가 더 좋은 선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직감으로 스타가 될 가능성 있는 홈런 타자를 찾아다니던 스카우터들에겐 재앙과 같은 주장이었습니다.

2002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빌리빈 단장이 이런 데이터 전략을 활용해 좋은 성적을 올렸습니다. 영화 ‘머니볼’의 소재가 됐고 빅데이터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프로야구를 다뤘습니다. 어느덧 40년이 된 한국 프로야구. 구단의 실적, 선수들의 연봉과 성적의 관계, SK는 왜 야구단을 팔았을까 등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각 구단의 전략, 빅데이터를 통한 분석을 치밀하게 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럼에도 야구는 많은 영감을 주는 에피소드들을 갖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화이글스가 그렇습니다. 연봉도 성적도 꼴찌지만 팬들은 경기장을 찾습니다. 이글스 응원단장은 말합니다. “여러분 경기 결과가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오늘 저하고 신나게 놀다 가시죠.”

한화와 함께 몇 년째 바닥을 기고 있는 롯데자이언츠, 기아타이거즈 팬들도 다른 구단으로 갈아타지 않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야구 팬들은 일종의 언약을 맺었다고 볼수 있다. 팀의 흥망과 관계없이 스포츠맨십을 지키는 팀을 응원하겠다는 헌신의 언약이다”라고 설명합니다.

미국에서는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가치로 평가받습니다. 2001년 미네소타 트윈스 사건이 이를 보여줍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구단주 등이 경영난을 이유로 트윈스를 퇴출시키기로 결정합니다. 반발한 팬들은 트윈스를 그대로 두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합니다. 판사는 이렇게 판결했습니다. “야구는 세대와 세대를 아우르며 내려온 전통이다. 공동체 정신을 창조한다. 트윈스는 40년간 미네소타의 역사와 전통의 일부가 됐다. 전설적인 선수들도 있었다. 그들이 한 일 가운데 가장 길이 남을 일이 있다. 인생의 도전에 맞서라고 어린아이들을 북돋은 점이다.” 퇴출이 불가하다는 판결이었습니다.

요즘 나라 안팎이 어수선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인플레이션으로 주유소에서 기름 넣는 것조차 부담스럽습니다. 주가는 몇 달째 2600~2700선을 오가며 지지부진합니다.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을 결정할 인수위가 활동하고 있지만 국가의 미래 전략은 보이지 않고 인사를 둘러싼 소음만 커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코로나19가 정점을 지나고 거리에 사람들이 늘어나며 활기를 되찾는 것 정도가 위안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 찾아온 봄, 하루쯤은 젊은 함성 가득한 야구장에 다녀올까 합니다. 집을 나가 온갖 모험을 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박수를 받는, 그 모험을 통해 아이들에게 도전의식을 심어주는 야구. 그 팬들의 함성은 미래세대에게는 1도 관심 없는 정치권의 소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닫습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