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택 담보 연체율 0.1% 수준 불과…시장에 맞겨야 서민·청년 주거 복지 확대 가능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서울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사진=한국경제신문
집값이 가전제품 가격 수준이라면 누구나 집을 쉽게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 집값이 많이 올라 그런 것은 아니다. 과거부터 이어진 것이고 다른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비싼 집을 개인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방법은 가처분 소득을 차곡차곡 모아 집을 사는 것이다. 부모님 세대에 집을 산 이들은 대부분 이 방법을 썼다. 문제는 자산이 모일 때까지 상당 기간을 세입자 상태로 있어야 해 주거가 안정되지 않는다. 자산을 모으는 속도가 집값 상승 속도보다 늦으면 내 집 마련은 영영 불가능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집값 일부를 금융회사에서 대출 받아 내 집 마련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다. 대출은 미래에 얻을 소득을 현재 자산으로 바꾸는 행위다. 대출 이자보다 집값 상승률이 높다면 대출로 집을 일찍 살수록 유리하다.

다만 대출이 긍정적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내 집 마련 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자산 형성에 유리한 일이지만 국가적으로는 매수세가 늘어나면 집값 상승의 원인이 된다. 주택 시장을 조절하기 위해 정부가 대출을 규제하는 이유다.

문제는 주택 시장에 들어가는 유동성을 관리해 집값을 잡겠다는 목표 아래 진행되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에 부작용이 있다는 점이다.

다주택자가 더 유리해지게 만드는 LTV

담보물 가치에 따라 대출금을 제한하는 LTV를 현재보다 더 낮추면 무주택자의 주택 구매는 더욱 어려워진다. 다주택자와의 경쟁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는 전세를 끼고 집을 구매해 대출이 어렵다. 전세가 낀 집에 후순위로 대출해 줄 금융사도 적고 반대로 대출이 많은 집에 전세로 들어갈 세입자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한국 아파트의 평균 전셋값 비율은 66.2%다. 시세 10억원의 아파트가 있다면 전세금은 6억6200만원이다. 전세를 끼고 이 집을 사는 다주택자는 3억3800만원만 있으면 된다.

반면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사려는 무주택자는 LTV가 전셋값 비율보다 낮으면 다주택자보다 많은 자금이 있어야 집을 살 수 있다. 정부에서 대출 규제를 강화해 LTV를 40%로 맞춘다면 대출은 4억원만 가능하다. 무주택자는 6억원을 조달해야 10억원짜리 집을 살 수 있다.

3억3800만원만 조달해도 10억원짜리 집을 살 수 있는 다주택자보다 자금 조달 측면에서 불리하다는 뜻이다.

더욱이 차주의 상환 능력에 따라 대출 한도에 제한을 두는 DTI 규제가 강화되면 소득이 낮은 서민은 대출을 받을 가능성이 더 낮아진다. 소득에 비례해 대출금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DTI 규제는 고소득자에게는 대출을 많이 해주고 저소득자에게는 대출을 적게 하는 규제다. 이를 감안하면 가장 반서민적 규제라고 볼 수 있다. 즉, 대출 규제는 돈이 많은 이들을 옥죄는 것이 아니다. 집을 살 자금이 부족해 대출이 필요한 서민이나 자산 형성이 덜 된 젊은 계층을 괴롭히는 직접적인 규제다.

자기 자본이 적은 서민이나 아직 자산 형성이 덜 된 젊은층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해 대출 규제를 완화하면 집값이 오른다. 반대로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서민이나 젊은이의 내 집 마련 기회가 박탈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서울 종로 통의동 회의실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 참여한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서울 종로 통의동 회의실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 참여한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집값 안정의 목적은 서민과 청년의 내 집 마련

생각을 바꾸면 이 딜레마 역시 해결된다. 대출 규제 완화가 집값 안정이 우선인지, 서민의 내 집 마련 지원이 우선인지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집값 안정의 본래 목적은 서민과 청년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한 것이란 점을 상기해야 한다.

즉, 대출 규제로 집값을 잡는다고 해도 서민과 청년의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진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대출 규제로 집값을 잡겠다는 의도는 논리적 모순이다.

집값의 방향을 100% 시장에 맡기는 선진국에선 이러한 모순이 없다. 반면 집값 안정을 주택 정책의 우선 목표로 삼는 한국은 대출 규제를 수단으로 삼아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선진국에서는 대출 한도를 어떻게 조절할까. 정부 개입을 줄이고 은행의 자율에 맡기는 원칙 아래 LTV를 이자율에 연동하고 있다. LTV가 높다면 은행의 위험도가 높아지는 만큼 높은 이자율을 요구한다. LTV가 낮다면 낮은 이자율을 은행에서 제시한다.

한국도 선진국처럼 정부 개입을 줄여야 한다. 2주택자 이상 소유자에 대한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것까지는 무리지만 무주택자나 갈아타기를 시도하는 1주택자에게는 지금보다 대출 규제를 상당한 수준으로 풀어야 한다. 내 집 마련과 갈아타기를 하는 데 도움을 줘야만 한다.

지난해 12월 기준 미국 주택 담보 대출의 연체율은 2.33%다. 한국은 0.1%다. 한국의 주택 담보 대출 연체율이 미국보다 낮은 만큼 은행도 자금 회수에 부담이 없다. 현재 규제를 완화해도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대출 규제 완화로 무주택자는 내 집을 마련하고 1주택자는 더 나은 집으로 갈아타기에 성공할 수 있다. 주거 사다리가 복원되는 것이다.

대출 규제로 집값 안정과 서민층 내 집 마련 지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방법은 없다. 집값을 잡겠다고 대출 규제만 강화하면 서민의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진다. 집값 안정은 서민층의 내 집 마련을 쉽게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목적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 정부의 실패를 반면 교사 삼아 목적과 수단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

아기곰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