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에도 실적 상승세 탄 실적…대내외 악재에 주가는 18만원 박스권

[스페셜 리포트]
서울 양재동 현대차기아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양재동 현대차기아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현대차가 올해 1분기 성적표를 공개했다. 반도체 수급난에도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을 올렸다. 부품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판매량은 줄었지만 대당 판매 가격이 오르고 판촉비는 감소, 수익성이 좋아졌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깜짝 실적에도 주가는 여전히 바닥권만 맴돌며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직장인 A(34) 씨는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현대차 주식을 분할 매수했다. 나름대로 유망 종목을 분석한 결과였다. 주식 관련 뉴스와 여러 기업의 재무제표를 공부한 후 투자처로 현대차를 택했다. 신차를 사도 일러야 6개월 안에 차량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에 성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지난해 6월 24만원에 30주를 매수한 후 7~12월 매달 30주씩 총 180주를 샀다. 평균 단가는 22만원, 총 투자 금액은 4000만원이다. 하지만 약 1년이 지난 현재 투자금은 3000만원으로 줄었다. 수익률은 마이너스 25%다.

A 씨는 “현대차가 기존 가솔린·디젤 차량 외에도 친환경 차량이나 로보틱스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투자를 결정했다”며 “실적 발표를 보면 매번 역대급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는데 주가는 반대로 가고 있다. 아내 몰래 주식을 샀는데 언제쯤 주가가 회복돼 익절(이익을 보고 매도)은커녕 원금이라도 회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A 씨만이 아니다. 현대차 개인 주주는 1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현대차의 장밋빛 미래를 보고 투자했지만 손실이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증권가도 현대차의 목표 주가를 높게 설정하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주가와 실적이 반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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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악재는 없다” 영업익 8년 만의 최고치

실적은 말 그대로 서프라이즈다. 현대차의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0조2986억원, 1조9289억원이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6%, 영업이익은 16.4% 늘었다. 영업이익은 2014년 2분기(2조872억원) 이후 7년 9개월 만의 최대치다. 영업이익률은 6.4%로 2016년 2분기 7.1% 이후 최고치다.

반도체 수급 불안으로 판매량이 줄었지만 제네시스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이 많이 팔려 대당 판매 단가가 높아진 덕분이라고 현대차는 설명했다.

기아는 상황이 더욱 좋다. 분기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7% 늘어난 18조3572억원, 영업이익은 49.2% 증가한 1조6065억원이다. 영업이익률도 8.8%를 기록해 2012년 2분기 9.8%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아는 “글로벌 시장에서 기아 차종에 대한 수요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며 “높은 상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제값 받기 정책으로 평균 판매 가격이 크게 올랐다”고 호실적의 배경을 설명했다.

증권가는 현대차·기아의 1분기 호실적이 올해 내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지정학적 리스크 등의 불확실성이 있지만 밀려 있는 주문량으로 높은 수요가 유지될 것”이라며 “향상된 차량 성능과 디자인 등이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어 반도체 공급이 안정화를 찾으면 실적 개선세가 더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준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의 올해 예상 영업이익이 6조7185억원, 기아는 6조52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봤다. 이대로 실적이 나온다면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2013년 8조3000억원 이후 9년 만의 최대치다. 기아의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해의 영업이익(4조8700억원)을 뛰어넘는다.

김 연구원은 “소비자가 차량을 인도받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여전히 길다”며 “코로나19 사태에도 완성차업계에서 나타나는 호황은 반도체 공급 정상화 이후 자동차 재고가 적정 규모에 도달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닝 서프라이즈면 뭣하나”…요지부동 주가에 한숨 쉬는 현대차 투자자
올해 4월 현대차의 차종별 예상 납기표를 보면 인기 차종인 아반떼는 8개월, 아반떼 하이브리드는 11개월이 걸린다. 제네시스 GV70는 6~8개월, G90는 10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현대차의 캐스퍼는 3개월이 걸린다. 캐스퍼는 다른 차량과 달리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서 생산되고 있어 인도 기간이 비교적 이른 편이지만 급증한 수요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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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차 저리 가라” 괄목할 만한 디자인·성능

현대차·기아의 상승세는 벤츠·BMW·아우디 등 주요 완성차 업체를 뛰어넘는 디자인과 성능에 있다는 평가다.

현대차의 글로벌 판매량은 줄어드는 추세라는 게 약점이다. 2018년 458만9000대(내수 72만1000대, 해외 386만8000대)였던 글로벌 판매량은 지난해 391만2000대(내수 72만7000대, 해외 381만5000대)로 줄었다. 다만 수입 3사에 맞먹을 만한 디자인과 성능을 갖춘 고급차들의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면서 대당 판매 가격이 높아져 실적이 좋아지고 있다.
“어닝 서프라이즈면 뭣하나”…요지부동 주가에 한숨 쉬는 현대차 투자자
중견·중소기업 오너들도 수입차보다 현대차를 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한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는 20년 이상 애용한 아우디를 팔고 조만간 제네시스 세단을 살 예정이다.

수입차의 가장 큰 단점인 불편한 애프터서비스와 비싼 부품 가격에 질려서다. 간단한 라이트(등)를 바꾸는 데도 수십만원이 들고 기간도 오래 걸리는 것에 신물을 느낀 것이다.

재계 총수들도 마찬가지다. 벤츠 애호가로 알려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제외한 5대 그룹 총수는 모두 현대차를 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팰리세이드, 최태원 SK 회장은 제네시스 EQ900, 구광모 LG 회장은 제네시스 G90를 타고 있다.

총수들이 타는 차량이 1대일 리는 없지만 공식 석상에 현대차를 타고 등장한다. ‘벤츠·BMW·아우디’를 타는 것이 성공의 방정식이었지만 현대차와 제네시스의 성장에 이 공식이 무너진 셈이다.
“어닝 서프라이즈면 뭣하나”…요지부동 주가에 한숨 쉬는 현대차 투자자
차 잘 팔리는데 주가는 왜 이럴까

좋은 차를 잘 팔고 있는데 현대차의 주가는 왜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할까. 올해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현대차의 4월 25일 종가는 18만2000원이다. 실적 발표 후 오름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2000원 상승에 그쳤다.

최근 1년 동안의 최고점인 지난해 6월 24일 24만9000원과 비교하면 현대차의 주가는 여전히 약 25% 빠진 상태다.

올해만 놓고 보면 연초 21만500원으로 출발한 현대차의 주가는 3월 15일 16만2000원을 기록하며 52주 최저가를 보이기도 했다. 기아도 8만2600원에서 3월 14일 6만8800원으로 떨어지면서 52주 최저가를 기록했다.

현대차의 주가가 바닥권인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의 매도세에 있다. 최근 한국 증시에서 전체 시가 총액 대비 외국인 보유 지분율은 2009년 이후 13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4월 25일 기준 외국인의 보유 지분율은 28.8%다. 외국인 보유 지분율이 30%대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00년 이후 이번이 셋째다.

외국인 보유 지분율은 2009년(28.2%) 이후 꾸준히 30~33% 수준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3월 4조8350억원어치, 4월 1~25일 3조5930억원어치, 올해는 약 9조원어치를 순매도했다.

현대차 역시 외국인의 투자 금액이 8343억원 빠졌다. 시가 총액 40조628억원의 2.1%가 빠진 셈이다. 기아 역시 외국인의 투자 금액이 2376억원 줄었다.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며 현대차도 그 영향권에 든 것을 첫째 요인으로 꼽는다. 한국 증시의 투자 매력이 크게 떨어진 이유는 대외 리스크의 영향이 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과 인플레이션 압력, 공급난 등 대외적 악재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현대차·기아처럼 원자재의 수입 의존도가 높고 경기에 민감한 산업은 더욱 전망을 좋지 않게 볼 수밖에 없다.

또 러시아에서의 판매량이 줄어든 탓도 있다. 유럽기업인협회(AEB)에 따르면 올해 3월 현대차와 기아의 러시아 판매량은 지난해 동월 대비 68% 줄었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외적으로는 세계 정세의 불안함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이, 내부적으로는 생산 차질이 현대차 주가 상승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생산이 안정화될 시점까지 주가가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증권가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현대차의 목표 주가를 제시한 증권사 13곳 중 9곳이 목표 주가를 내려 잡았다. 한화투자증권은 현대차의 목표 주가를 기존 30만원에서 23만원으로 23.3% 낮췄다.

신영증권은 28만원에서 25만원으로, 한국투자증권은 31만원에서 26만원, 현대차증권은 30만원에서 26만원으로 낮췄다. 메리츠증권과 대신증권은 각각 22만원과 21만원을 제시하며 20만원대 초반을 한계로 봤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올해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 미래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올해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 미래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미래 경쟁력 강화 전략의 아쉬움

지속 성장을 위한 경쟁력 강화 전략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전기차·수소차 등 친환경 차뿐만 아니라 자율주행·로보틱스·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사업이 걸음마 단계다. 가장 앞선 사업인 전기차는 아직 테슬라와 비교할 정도가 못 된다. 자동차 시장의 최대 격전지인 미국에서 테슬라는 지난해 전기차 20만6000대를 팔았다. 반면 현대차는 7000대에 그쳤다. 테슬라의 3% 수준에 불과하다. 아이오닉 5와 제네시스 GV60 등을 출시해 반전을 꾀하고 있지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구성중 카카오페이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미래 차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며 “현대차는 ‘세계 가전 전시회(CES) 2022’에서 자동차 산업과 로보틱스·메타버스가 결합된 메타모빌리티 개념을 제시하는 등 모빌리티 업체로의 변화 방향을 제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앞으로의 미래 차 비전 강화가 현대차의 최우선 과제”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그동안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선두권 기업의 장점과 단점을 살피며 사업을 진행해 왔다. 성공 기업을 벤치마킹하는 경영 전략을 구사해 온 것이다. 사업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런 전략이 현대차의 인사 시스템에 기인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차 만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 기업이 없다는 얘기다. 과거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그룹을 경영할 때는 ‘수시 인사’가 이뤄져 왔다. 실적에 따라 CEO를 가차 없이 교체했다. 2005년에는 임원급 인사만 10여 차례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 임원진 사이에선 ‘실패=퇴진’이란 인식이 형성됐다.
“어닝 서프라이즈면 뭣하나”…요지부동 주가에 한숨 쉬는 현대차 투자자
정의선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퍼스트 무버’로의 변화를 선언하며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란 평가다. 아직 뚜렷한 성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2022 유럽 올해의 차’ 등 여러 시상식에서 아이오닉 5나 EV6가 상을 받은 것이 한 예다.

정 회장이 직접 해외 시장을 돌며 각종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 등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조기에 자리 잡은 정의선 리더십이 사업의 성과로 이어지는 시간을 얼마나 줄일수 있을지에 재계는 물론 투자자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