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심리’에 더 힘받는 달러 강세…인플레 잡히면 결국 환율도 안정될 것

[머니 인사이트]
바로 지금이 엔화 자산·원화 자산을 살 타이밍
금융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금리는 치솟고 주식은 급락하고 환율은 요동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 강화’라는 두 가지 변화가 이끌어 낸 변동성이다. 모든 변화가 으레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히지만 그 한복판에 있을 때는 판단하기 어렵다.

탈세계화와 긴축은 이제 되돌리기 힘든 추세가 되고 있다. 구조 변화가 가속화될 때 유독 더 급변하는 지표가 환율이다. 103을 넘어선 달러 인덱스를 어떻게 봐야 할까. Fed의 긴축을 반영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좀 더 확대 해석하면 강한 달러는 금융 시장 위기를 대변한다. 환율이 급격히 움직이고 그럴싸한 음모론이 확산되면 이를 경제 변화보다 투기적 자금에 의한 혼란으로 단순화하기도 한다.

변화가 급격하다 보니 시장 참가자들의 불안 심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기본으로 돌아가 더더욱 차분하게 외환 시장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환율 변화 이끄는 요인 세 가지환율의 주된 변화 요인은 ‘경기·금리·리스크’ 등 세 가지다. 세 가지 요인이 다 영향을 주겠지만 무엇이 더 주된 발화점일지가 중요하다.

최근 공감을 얻고 있는 변화 요인은 한국과 미국의 내외 금리 차다. Fed의 긴축이 빠르고 한국은 느리니 두 국가 간의 금리 차이가 원·달러 환율의 상승을 불러 왔다는 것이다. 물론 각국의 통화 정책 전환이 진행될 때는 이러한 접근이 힘을 얻는다.

환율 변화의 강도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와 Fed의 속도 차이로 파악하는 게 타당하다. 소위 말하는 ‘내외 금리 차’ 개념이다. 2015년 이와 유사한 국면에서 한국은행의 이주열 전 총재가 한 말이 재미있다. “내외 금리 차가 작용한다면 인도 루피화가 강세로 가야 하지 않는가”라는 말은 환율의 변화를 단순히 금리 차로 볼 수 없다는 중앙은행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원화 약세에 내외 금리 차도 일정 부분 기여했지만 더 큰 이유는 미국과 한국의 펀더멘털 차이에 있다고 본다. 2022년 5월 초반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270원을 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원·달러 환율 최고점인 달러당 1296원을 제외한다면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부실 사태로 인한 상승에는 못 미치고 2010년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 사태를 촉발한 그리스 채무 위기 상황과는 맞먹는 수준이다.

미국 정책 변환 속도가 확연히 빠른 것은 사실이고 이는 내외 금리 차 기대 수준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미국 금리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돼 왔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원화와 달러로 표현되는 환율에서 달러의 강세가 환율에 반영된 것이지, 내외 금리 차에 따른 외국인 투자 자금 유출이 반영된 것은 아니다.

금리 차에 따른 외국인 투자 감소가 아닌 한국 경제에 대한 기대 하락이 환율 변화를 이끌고 있다. 한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에서 내수·투자·정부 지출 등 모든 항목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수출 증가율이 GDP의 하락을 방어했지만 수입 가격의 상승이 가팔라지는 현 상황에서 순수출이 1분기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기 힘들다. 결국 2분기 GDP에서 내수가 상승하는 흐름을 보이지 못한다면 경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코로나19 사태의 완화로 내수 성장이 수출 부문의 부진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면 경제가 나아질 수 있겠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민간 부채 증가 폭이 큰 상황에서 금리마저 올랐다면 좋게 봐야 완만한 내수 개선 정도일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시기 노트북과 TV 등 내구재 소비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할 때 한국 경제에 매력을 느꼈던 투자자가 돌아오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다. 한마디로 지금 당장 외국인들은 한국 경제 혹은 원화에 매력을 못 느낀다. 음모가 아닌 펀더멘털 기대감 약화가 원화 약세를 이끄는 이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장 수출의 개선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을 제외하고 한국의 최대 교역국은 중국이고 중국에 대한 대외 의존도를 높이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액수는 적지만 러시아도 무시할 수 없는 한국의 교역국이다. 대외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글로벌 이슈에 경기가 민감하게 연동돼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다른 국가들보다 한국이 받는 지정학적 리스크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이 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경제의 체력이 꽤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달러 환율의 상승 속도가 부담스럽지만 현재의 원·달러 환율 수준이 위기 신호로 볼 수는 없다. 달러 인덱스가 강해져 그만큼 원·달러 환율이 상승했을 뿐이다. 강해진 달러 만큼 원화가 약해진 것이지 원화의 가치만 홀로 하락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후 원·달러 환율을 예상할 때 달러 인덱스의 향방을 예측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환율 변동과 관련해 시끄러운 두 나라가 있다. 일본은 끊임없이 엔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고 중국은 최근 들어 갑자기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엔화와 위안화 모두 약세 방향의 원인에 정부의 의도가 섞여 있다. 다만 일본은 달러의 방향성을 비교적 충실히 따라간 반면 중국은 인위적인 환율 조정이 장기간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시장 참가자들은 6개월 정도 전부터 진행된 위안화 강세를 궁금해 했다. 위안화 강세 요인이 부재한 상황에서 위안화가 타 통화 대비 견고한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필자의 답변은 단순했다.

중국은 바스켓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국가이고 환율에 대해서도 자유 변동을 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2021년 들어 나타난 위안화의 강세는 중국 정부가 내수 진작을 위해서든,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을 위해서든 인위적으로 강세 구간을 끌고 갔다고 판단된다.

최근의 위안화 강세는 경기 둔화를 방어하기 위해, 즉 수출 증가를 위해 인위적인 강세 조정을 포기한 영향이 크다고 본다. 따라서 위안화의 움직임은 한국 등 나머지 국가들이 반년 이상 이어 오던 상승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달러 인덱스가 과거 2017년 수준까지 상승했고 원화와 엔화 등이 2016년에서 2017년 사이 고점을 형성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당시의 위안화 환율 수준은 6.95위안을 넘어선다. 물론 내부적으로 위안화의 변동성 억제 혹은 수입 가격 하락 등 여러 가지 조정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7위안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위안화 약세를 중국 경제의 위기로 판단할 수는 없다. 중국이 지급준비율 인하를 단행한 것은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생긴 경제성장률 하방 리스크 관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고민은 과거 중국 지준율 인하 사이클이 글로벌 경기 하락 사이클과 동행했다는 데 있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는 경제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기확산지수 기준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복합 선행 지표(CLI)의 저점은 10월 정도에 다다를 것으로 추정된다. 3분기에 가야 원화든 위안화든 강세 전환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엔화 약세도 이례적인 수준이다. 긴축에 부진한 경기가 상당 부분 반영돼 왔다.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30엔을 넘어서 있다. 동일 기간 저점에서의 상승 폭으로 보면 원·달러 환율이 18%, 달러 인덱스가 17% 상승했으니 엔·달러 환율의 28% 상승이 좀 더 높은 수준인 것은 맞다.

이러한 속도 차이에는 일본 중앙은행의 완화적인 태도, 코로나19 회복 지연과 경기 활력 저하 등 여러 가지 요인이 혼재돼 있다. 물론 자민당 정권이 추구하는 엔화약세에 의한 수출 경쟁력 강화라는 ‘아베노믹스’로부터 이어져 온 금융 정책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거 아베노믹스의 정점 수준으로 볼 수 있는 125엔을 넘어선 수준이라는 점과 어차피 코로나19 사태는 완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 엔화는 지나치게 싸다. 단순하게 포스트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이후 일본 여행을 계획해 온 이들이라면 원·엔 환율이 엔당 1200원일 때보다 970원인 지금 엔화를 사야 하지 않을까. FOMC 이후 엔화, 원화 자산에 관심 중심축인 달러가 강해지자 주변 국가의 환율도 요동친다. 이제 시작된 미국의 통화 정책이 후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Fed의 기준금리는 더 올라갈 것이고 양적 긴축을 통해 유동성은 회수된다. 달러 강세 요인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래서 위험하다고 단정짓기는 이르다. 5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진행되고 있는 긴축 발작은 이러한 우려를 상당 폭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탈세계화와 긴축 정책으로 촉발된 외환 시장의 지각변동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 힘겨운 시기는 앞으로 10년 이상 지속될 것이고 그 결과 달러가 강해질 것이란 논리가 지나치게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라는 병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은 내려졌고 이후 물가가 잡히느냐는 지켜보면 된다. 긴축이 더 본격화하면 인플레이션 압력은 더 둔화될 수밖에 없다. 이미 기대 인플레이션은 정점을 치고 내려오고 있다. 결국 변동성이 줄어드는 구간에서 환율은 하방으로 안정화될 것이다.

FOMC 이후의 변동성 확대 구간은 이러한 우려가 화산처럼 폭발하는 시기다. 2분기 후반부터 물가와 환율이 안정화될 수 있다면 바로 지금 엔화나 원화 자산을 사야 한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