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장악한 ‘15초 콘텐츠’…드라마도 20~30분 내외로 간략하게

[비즈니스 포커스]
틱톡은 '숏 플랫폼'의 시대를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틱톡은 '숏 플랫폼'의 시대를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콘텐츠가 갈수록 짧아진다. 15분의 분량도 이젠 길다. Z세대는 15초 내외로 자신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옮겨 가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유튜브·페이스북 등은 틱톡의 성장세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떠난 유저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틱톡이 바꿔 놓은 콘텐츠 형식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와 기업들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쇼트 폼보다 길고 롱 폼보다 짧은 ‘미드 폼’이라는 장르도 생겨났다.

미국 10대들을 집어삼킨 틱톡의 매력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시기는 한마디로 ‘유튜브 천하’였다. 사회 활동이 제한되자 유튜브 트래픽이 급격히 늘었다. 그런데 지난 1분기, 유튜브의 모회사 알파벳의 매출액은 680억1000만 달러로 2020년 3분기 이후 6분기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유튜브의 성장세가 한풀 꺾인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엔데믹(주기적 유행)으로의 전환 때문일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유튜브의 성장세에 다리를 건 것은 중국 바이트댄스의 ‘틱톡’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부진한 알파벳의 실적에 대해 “틱톡이 글로벌 영상 시장을 장악하면서 유튜브의 광고 매출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광고주들이 유튜브보다 틱톡을 더 영향력 있는 SNS로 평가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틱톡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증가세는 무서울 정도다. 최근 틱톡의 MAU는 전년 대비 45% 증가한 16억 명으로 추정된다. 페이스북의 MAU가 전년 대비 4%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준이다.

미국에서 틱톡의 인기는 어마어마하다. 미국 내 SNS 사용자들이 하루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는 틱톡이 된 지 오래다. 지난해 틱톡의 하루 사용 시간은 40분으로 조사됐다. 페이스북은 33분이었다. 특히 틱톡은 미국의 Z세대를 꽉 잡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앱애니에 따르면 틱톡의 사용자 중 40%가 Z세대라고 한다.

모든 기업들이 Z세대를 고객으로 확보하려는 상황에서 이들을 주 이용자로 확보하고 있는 틱톡의 앞날은 밝을 수밖에 없다. 틱톡의 정체성인 ‘쇼트 폼 콘텐츠’ 시장을 잠식하기 위해 기존 SNS도 관련 서비스를 출시한 지 오래다. 지난해 7월 유튜브가 한국을 포함한 100여 개국에 ‘유튜브 쇼츠’를 출시했다. 인스타그램도 지난해 2월 쇼트 폼 동영상 편집 기능인 ‘릴스’를 도입했다. 쇼츠와 릴스는 창작자들에게 보상책을 강화하고 케이팝 아티스트들을 내세운 ‘챌린지’ 등을 통해 크리에이터들을 확보하는 것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쇼츠와 릴스는 쇼트 폼 시장에서 틱톡의 영향력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광고 시장에서는 틱톡이 곧 유튜브를 넘어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용제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다른 콘텐츠와 달리 쇼트 폼 콘텐츠는 사용자뿐만 아니라 광고주들의 즉각적 수익화 측면도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쇼트 폼은 피드 이미지와 광고가 유사하다는 특징이 있어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덜하다. 또 쇼트 폼은 콘텐츠 재생 시간이 길지 않아 기존 대비 유사한 광고 노출량의 확보가 가능하다.

이처럼 틱톡이 바꿔 놓은 콘텐츠업계의 공식은 그간 ‘60분’이 정석이었던 드라마 시장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숏폼과 미드포 형식으로 제작된 웹드라마 '좋좋소'. (사진=한국경제신문)
숏폼과 미드포 형식으로 제작된 웹드라마 '좋좋소'. (사진=한국경제신문)

‘늘어지지 않는’ 미드 폼의 등장
우리에게 익숙한 60분 분량의 콘텐츠가 최근에는 ‘롱 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됐다. 미드 폼과 쇼트 폼이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쇼트 폼과 미드 폼으로 나누는 것은 확실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업계와 시청자들이 세운 나름의 기준은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통상 20~30분 내외를 미드 폼, 10분 미만의 콘텐츠를 쇼트 폼으로 분류한다”고 설명한다.

길이가 짧아진 만큼 콘텐츠 구성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단순히 롱 폼의 분량을 쪼개는 것만으로는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다. 특히 틱톡과 같은 직관적 콘텐츠에 익숙해진 Z세대는 더욱 그렇다.

이에 따라 제작사들은 아예 새로운 전개와 호흡을 택했다. 롱 폼 콘텐츠가 다수의 인물로 구성된 폭넓은 스토리를 다루는 것과 달리 쇼트 폼과 미드 폼은 한층 집약된 캐릭터의 스토리에 집중하면서 시청자를 극 중으로 빨아들이는 흡입력을 선사하고 있다.

광고와 편성 시간에서 자유로운 웹 드라마는 미드 폼과 쇼트 폼으로 만들어지는 게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지난 3월 한국 웹 드라마 최초로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좋좋소’도 10분 안팎의 쇼트 폼 웹 드라마다. ‘좋좋소’는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현실을 코믹한 상황 설정과 디테일한 현실 고증으로 녹여내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특히 기존 드라마의 공식을 파괴하는 데는 짧은 분량이 큰 몫을 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미드폼 드라마 '며느라기2'.(사진=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미드폼 드라마 '며느라기2'.(사진=카카오엔터테인먼트)
유튜브가 쇼트 폼의 천국이 됐다면 콘텐츠 제작에 뛰어든 기업들은 ‘미드 폼’에 주목하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20년 9월 카카오TV 오리지널을 통해 미드 폼 콘텐츠를 중심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했다. 2022년 3월 기준 총 80개 타이틀의 카카오TV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였다. 2022년에는 임산부의 성장 일기를 그린 ‘며느라기2...ing’, 유재석 씨와 시청자들이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실시간 라이브로 소통하는 신개념 인터랙티브 예능 ‘플레이유’ 등이 인기를 얻고 있다.

5월 23일 첫 공개를 앞두고 있는 이진욱·이연희 씨 주연의 ‘결혼백서’, 지난해 연애 예능의 클리셰를 뒤집은 신개념 연애 리얼리티 ‘체인즈 데이즈’의 둘째 시즌도 6월 첫 공개된다. 이 밖에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오리지널 스토리 지식재산권(IP)을 원작으로 하는 ‘빌린 몸’, ‘아쿠아맨’ 등의 웰 메이드 미드 폼 드라마를 선보일 계획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미드 폼 콘텐츠는 60분에 달하는 기존 롱 폼보다 압축적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며 강렬한 흡입력을 전하면서 5~10분 분량의 쇼트 폼 콘텐츠가 줄 수 없는 풍성한 캐릭터와 관계성, 스토리의 재미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드 폼 장르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콘텐츠에서도 강점을 보인다. 미드 폼 예능은 기존의 롱 폼으로 구현하기엔 분량상 어려움이 있었던 아이템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고 압축된 재미를 통해 ‘늘어지지 않는’ 밀도 있는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