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류 장수 기업의 성공 법칙 3가지…기술‧근무 환경‧사회적 책임

[서평]
BMW‧폭스바겐‧포르쉐는 어떻게 세계적 기업이 됐나
독일 100년 기업 이야기
요시모리 마사루 지음 | 배원기 외 역 | 한국경제신문 | 3만원


독일에는 가족 단위의 사업장으로 출발해 현재 전 세계를 호령하는 브랜드가 많다. 대표적인 산업이 자동차로, BMW·폭스바겐·포르쉐 역시 소규모 가족 기업에서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했다. 가족 기업 중에는 5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도 있다. 무역업·대부업 등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푸거가 그 주인공으로, 1512년 창립됐다. 그 밖에 철강 기업 크루프는 1811년, 광학 기기 기업 자이스는 1816년, 산업 기기 전문 보쉬는 1886년, 글로벌 미디어 기업 베텔스만은 1835년, 제약 기업 머크는 1827년 창립됐다. 모두 2세기가 넘도록 지속되는 기업이다.

‘독일 100년 기업 이야기’는 이처럼 소규모 가족 단위 사업에서 시작해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기업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기업들은 단순히 오랜 역사만을 기준으로 뽑은 게 아니다. 임금 정책과 복리 후생 제도, 사회적 공헌과 공익 재단 유무, 경영 혁신과 명성 등을 기준으로 기업을 선정했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사회 공헌’이다. 이들 기업의 핵심적인 경쟁력이기도 하다. 대부분 국가에서 가족 기업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반면 독일인들은 상당히 우호적으로 평가한다. 비텐 가족기업연구소가 2010년 조사한 기업 평판 결과에 따르면 가족 기업의 평판이 비가족 기업보다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장기적인 안목에 기초한 경영, 이에 따른 좋은 노동 조건과 고용 유지에 대한 책임감, 고객·거래처와의 장기적 관계, 종업원 상호 간의 유대감·안정감, 기업의 연속성과 안정성 등을 높게 평가했다.

저자 요시모리 마사루는 프랑스에서 경영학 석사와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고 프랑스 퐁텐블로 인시아드와 파리 제9대학 등에서 10년 가까이 강단에 섰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 기업의 경영 사례를 연구해 왔다. 독일 가족 기업들은 명성이 높지만 의외로 정보는 적은 편이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역사와 독일 사회 전반의 기업 문화 및 노사 상생 관계, 특히 기업 재단 제도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푸거·크루프·자이스·보쉬·베텔스만·BMW·포르쉐·폭스바겐·머크의 역사와 특성을 살펴보면서 이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성공을 이어 온 비결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제품과 기술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가족 기업은 창업 초창기에 주요 사업에서 성공해 번영의 바탕을 마련했다. 크루프는 최고 품질의 철강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자이스는 현미경·천체망원경·쌍안경 등의 분야에서, 보쉬는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내연기관용 점화 플러그 분야에서, 베텔스만은 출판 분야에서 성공해 성장의 토대를 마련했다.

둘째, 종업원 근무 조건의 대폭적인 향상이다. 독일의 노동 조건은 그 어떤 나라보다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연간 24일간의 유급 휴가가 보장되고 최종 월급의 75%를 연금으로 지급하며 연말에는 1개월분의 급여를 수당으로 지급한다. 여기에는 크루프·자이스·보쉬가 선도적인 역할을 했고 이후 베텔스만이 이익 참여 제도를 도입해 노동 조건 개선과 종업원의 자산 형성을 이끌었다.

셋째, 공익 재단의 설치와 사회적 책임의 실천이다. 기업이 거둔 이익을 직원들에게 더 많이 배분할수록 노사가 서로 신뢰하고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게 된다. 이런 선순환의 결과물로 공익 재단을 설립하는 곳이 많은데 자이스·보쉬·BMW 등이 그 예다. 공익 재단은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재단이 제 역할을 해내면 회사와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다.

이 책은 가족 기업 소유자나 관리자, 경영자, 기업 경영에 관심이 있는 학생과 연구자를 위해 쓰였다. 또한 기업의 사회 공헌과 지배 구조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는 점에서 최근 경제계의 화두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세 사업장에서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 각 기업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 종업원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는지,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소명 의식을 가지고 기업을 운영해 왔는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종오 한경BP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