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어려움’ 인정한 시진핑… ‘방역과 경제’ 균형 강조

[글로벌 현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월 8일 중국 쓰촨성 메이산에 있는 마을을 시찰했다. (사진=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월 8일 중국 쓰촨성 메이산에 있는 마을을 시찰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경제 전반에 심각한 충격을 주자 미래에 큰 불안함을 느끼는 중국인들이 소비를 억제하고 ‘예방성 저축’을 늘리고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경제권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다시 확산되면서 통제도 강화되고 있다. 중국에선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물가는 뛰는 스태그플레이션도 감지되고 있다.

꾸준히 줄어드는 중국 소비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에 따르면 올 1~5월 중국의 가계 저축 증가액은 7조8561억 위안(약 1493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50.6% 증가한 것이다.

중국의 가계 저축은 춘제(설) 연휴가 있던 2월과 상하이 봉쇄로 중국 경제에 큰 충격이 가해진 4월 줄어들었지만 다른 달에는 큰 폭으로 늘어났다. 특히 5월 가계 저축 증가액은 7393억 위안으로 작년 5월 1072억 위안보다 7배 정도 급증했다. 5월 말 기준 중국의 위안화 저축액은 246조 위안(약 4경6780조원)으로 1년 전보다 10.5% 늘어났다.

이처럼 저축은 늘어나는 반면 소비는 위축되고 있다. 중국의 소매 판매 증가율은 3~4월 연속으로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4월 소매 판매 증가율은 마이너스 11.1%로 2020년 우한 사태 초기 이후 최악이었다.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으로 지역 간 이동이 통제되면서 상반기 최대 연휴인 5월 노동절 연휴 기간 여행 분야 수입은 작년보다 43% 감소했다. 소비가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저축 성향 강화는 향후 중국 경기 회복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중정성 핑안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경제와 고용 불안정성이 커짐에 따라 주민들의 예방성 저축이 늘어나고 이는 소비 의욕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지적했다. 봉쇄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것은 저소득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이지만 사회 전반에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중산층과 부유층의 소비도 위축된다는 설명이다.

중국공정기계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중국의 굴착기 판매량은 2만624대로 전년 동월 대비 24.2% 줄었다. 작년 4월부터 13개월 연속 감소세가 이어졌다. 부동산 산업의 비율이 전체 GDP에서 25%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에선 굴착기 판매량이 경기 현황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꼽힌다. 1~5월 누적 판매량은 12만2333대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9.1% 감소했다. 5월 수출은 8445대로 63.9% 늘었지만 내수가 1만2179대로 44.8% 급감했다.

펑파이신문은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으로 인프라 투자가 지연되고 당국의 엄격한 규제에 따라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굴착기 판매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 4월까지 중국 부동산 판매액은 3조7800억 위안으로 29.5% 감소했다.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다시 코로나19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중국이 6월부터 추진하는 경기 부양도 난항을 겪고 있다. 베이징은 6월 13일부터 재개 예정이었던 초·중·고 학생 등교를 전면 연기했고 식당 등에는 입장 인원을 50% 아래로 유지하는 등 방역 정책을 철저히 준수하라고 요구했다.

상하이시는 16개 구 가운데 13개 구에서 6월 11~12일 전수 검사를 실시했고 이 가운데 민항구·창닝구·훙커우구는 이 기간 주민 이동을 전면 통제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경제 어려움을 인정하고 방역과 경제 사이의 균형을 강조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신화통신과 중국중앙(CC)TV 등은 6월 10일 시 주석이 쓰촨성 시찰에서 ‘전염병 방역과 경제 사회 발전의 통일적 계획’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시 주석은 6월 1일 지진이 발생해 4명이 사망한 쓰촨성 현황을 점검하기 위해 방문했다.

시 주석은 지방 관리들을 만난 자리에서 “현재 경제 발전이 직면한 약간의 어려움을 단호히 극복하고 취업과 사회 보장, 빈곤층 지원에 총력을 다하라”고 주문했다. 이어 ‘제로 코로나’ 방역 성과를 고수해야 한다고도 지시했다. 관영 매체들의 이런 보도는 ‘제로 코로나’를 강조해 온 그동안의 기조와는 차이가 있다.

시 주석은 그동안 최근까지 국정 운영에서 경제보다 방역에 힘을 실어 왔다. 5월 5일 중국공산당 최고위급 회의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서도 그는 ‘제로 코로나’ 방침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화통신은 당시 회의 결과 보도의 대부분을 방역 정책에 할애했고 마지막 한 줄에 ‘회의에선 다른 사항도 논의했다’고
짤막하게 밝혀 시 주석이 방역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쓰촨 시찰 보도에선 경제 문제에 대한 시 주석의 관심을 대거 보도했다. 시 주석은 “중국인의 밥그릇은 자신의 손안에 있어야 한다”며 식량 안보를 주문했다. 또 이빈대를 방문해 대졸자 취업 안정을, 지역 강소기업 지미광전에서는 과학 기술 혁신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이빈대에서 “지금은 대졸자 취업이 중요한 단계”라며 “학교와 기업을 비롯한 해당 부서는 일자리를 더 많이 발굴하고 취업 지도를 세심하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미광전에서는 “경제가 직면한 어려움을 단호히 극복해 취업·사회보장·빈곤가정 지원 등의 업무와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각종 업무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의 발언은 강력한 코로나19 방역 정책의 여파로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경제와 방역의 균형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상하이 봉쇄 등의 여파로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5.5%)를 달성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는 와중에 7월이면 사회에 진출하는 대학 졸업생이 지난해보다 167만 명이나 많은 1076만 명에 달한다.

중국 취업 사이트 즈롄자오핀에 따르면 가을에 새 학년을 시작하는 중국은 올해 취업 시즌(3∼4월)에서 대졸자 취업률이 46.7%로 작년의 62.8%보다 16.1%포인트 낮아졌다.
늘어나는 ‘예방성 저축’…중국, 스태그플레이션 오나 [글로벌 현장]

강력한 봉쇄로 물가 상승세는 약해

중국의 장바구니 물가는 4~5월 두 달 연속 2%대 상승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2.1% 올랐다. 1~2월 두 달 연속 0.9%를 유지하던 중국의 CPI 상승률은 3월 1.5% 상승한 데 이어 4월과 5월 모두 2.1%를 기록했다. 5월까지 누적 상승률은 1.5%로 작년 연간 0.9%를 웃돌았다.

5월 CPI 상승률은 시장 예상치인 2.2%보다 낮았다. 연간 상승률도 중국 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3%를 한참 밑돈다. 하지만 상하이 등 주요 지역 봉쇄로 2분기 성장률이 1%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물가가 2% 이상 오르는 것은 가계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4월에 이어 5월에도 CPI를 구성하는 8대 부문이 모두 올랐다. 비율이 가장 높은 식품류에선 과일(19.0%), 채소(11.6%), 달걀(10.6%), 곡식(3.2%) 등 대부분의 품목이 올랐다. 단일 품목으로 비율이 가장 높은 돼지고기가 21.1% 내렸고 전체 상승률을 0.3%포인트 정도 끌어내렸다. 중국 돼지고기 가격은 아프리카돼지열병 유행이 마무리된 지난해 상반기 이후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교통 연료비가 27.1% 급등했다. 유틸리티(수도·전기·가스) 비용도 4.1% 올랐다.

도매 가격인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안정세를 보였다. 5월 PPI 상승률은 6.4%로 전월 8.0%에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중국의 PPI 상승률은 작년 10월 13.5%로 역대 최고치를 찍은 뒤 7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 갔다. 하지만 철광석 가격이 11.8% 내렸을 뿐 석유·천연가스(47.8%), 석탄(37.2%), 석유화학 제품(13.6%) 등 주요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강세는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경제권에 비해 중국의 물가 상승세가 약한 이유를 강력한 봉쇄 때문으로 보고 있다. 장즈웨이 핀포인트자산운용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상품 가격은 뛰고 있지만 여행이나 오락 서비스산업 침체로 전체 인플레이션이 상쇄되고 있다”며 “강력한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베이징(중국)=강현우 한국경제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