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와 1900조원 가계 부채로 정부 정책 딜레마 심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생존 위협

[경제 돋보기]

대통령이 물가 대책의 중요성을 강조한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 14일 용산 집무실 출근길에 “공급 측면에서 물가 상승 요인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공급 측면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들을 다 취하려고 한다”고 밝혔고 그 전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물가가 오르면 실질 임금이 하락하니 선제적 조치를 통해 서민의 어려움을 덜 수 있는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하며 연일 고물가에 대한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새 정부가 직면한 경제 위기에서 인플레이션 관리의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실제 고물가는 전 세계적인 문제다. 지난 5월 미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8.6%를 기록했다.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의 지난 4월 평균 상승률은 9.2%로, 1998년 9.3%를 기록한 이후 3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연일 치솟는 물가로 인해 세계가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한국도 지난 5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5.4%를 기록하며 6%대 진입이 코앞에 있는 상황이다. 생활에 밀접한 품목들로 이뤄진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그보다 높은 6.7%이고 식품물가지수 상승률은 7.1%를 나타내며 특히 서민 가계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실제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정부가 계속된 유류세 인하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미 시중의 리터당 휘발유 가격은 2000원이 넘었다. 지난해 말 리터당 1600원대에서 30% 가까이 오르는 등 일반 국민이 일상적으로 상대하는 물가가 가파르게 뛰면서 지갑을 열기가 무섭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곡물 파동으로 세계적 애그플레이션(agflation)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 곡물 시장의 주 공급 국가들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곡물 공급을 못하면서 세계 곡물 시장이 요동치고 모든 국가의 식탁 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내부 곡물 공급망이 망가졌고 전쟁이 끝나더라도 농산물의 특성상 회복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역시 수출 제한으로 그동안 곡물 재고가 쌓였겠지만 관리 상태에 따라 바로 수출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결국 곡물 공급망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한 장기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

미국은 고물가에 대응하고 있다. 금리를 빅스텝(한 번에 0.50%포인트 금리 인상)으로 인상하고 재정 긴축 정책을 펼치고 있다. 주식을 포함한 자산 시장에 빨간불이 켜지며 투자자들의 손실이 커지는 상황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조치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더해지면서 나타난 경기 침체 상황에서의 인플레이션이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현재의 경제 상황은 더블 딥(이중 침체 현상) 상황을 우려하게 된다. 고물가는 유류와 원자재, 곡물의 세계적 공급망 위축 등 실물 공급의 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유동성 공급 확대도 인플레이션 발생에 영향을 줬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 체력이 약해졌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덮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금리를 인상해야 하지만 경기 침체라는 변수와 1900조원에 이르는 가계 부채로 인해 딜레마에 빠졌다.

경제의 이중 침체 현상에서는 특히 체력이 약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생존하기가 더욱 어렵게 된다. 고물가에 의해 서민들의 가계 지출비가 크게 증가하며 실질 소득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금의 경제 위기가 그만큼 위기 상황이기에 정부뿐만 아니라 여야를 떠나 초당적인 협치가 필요하다. 지금의 위기가 길어지면 그동안 선거전에서 모두가 강조했던 경제를 살리고 특히 서민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공약들은 무책임해지는 것이다. 이제 정치 이해관계는 잠시라도 접어두고 제대로 된 협치를 통해 지금의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더블 딥 우려 속에 필요한 초당적 협치[이정희의 경제 돋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