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의약품은 제품 하나에 50건 이상의 무효 심판 제기되기도

[지식재산권 산책]
오리지널과 제네릭의 처절한 특허 다툼 [차효진의 지식재산권 산책]
일반적으로 하나의 특허에 대해 무효 심판이나 소극적 권리 범위 확인 심판이 10건 이상 제기되는 것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유독 의약품 등재 특허에 대해서는 무효 심판, 소극적 권리 범위 확인 심판이 10건 이상 제기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소위 블록버스터급 의약품의 등재 특허에 대해서는 무려 50건 이상의 무효 심판 등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특정 특허에 대한 이례적인 사건 범람 현상은 의약품에 대해 특수한 제도인 허가·특허 연계 제도와 우선 판매 품목 허가 제도와 관련이 있다.

허가·특허 연계 제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지식재산권 강화 방안으로 도입된 제도다. 의약품 특허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특허 기간이 존속하는 동안 허가와 특허를 연계해 제네릭 의약품 판매(미국은 허가 절차 정지)를 금지하는 제도다.

구체적으로 제약사가 오리지널 의약품의 안전성·유효성에 관한 자료를 근거로 제네릭 의약품의 품목 허가를 신청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를 특허권자에게 통지한다.

이어 특허권자가 제네릭 제약사를 상대로 침해 금지 소송 등을 제기하고 해당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판매 금지를 신청하면 제네릭 의약품 판매를 9개월 동안 금지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권자는 보다 오랫동안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특허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이 시장을 방어하기 위한 대표적 전략은 ‘에버그리닝 전략’이다.

에버그리닝 전략은 오리지널 의약품의 유효 성분인 신규 화합물에 대한 물질 특허를 보유한 특허권자가 이후 해당 화합물이나 제법 등 관련 기술을 개량해 조성물, 결정형, 염변경, 제형, 복합 제제, 새로운 제조 방법, 신규 용도, 용법 용량 등의 후속 특허의 지속적인 출원을 통해 후속 특허에 의해 원천 특허인 물질 특허 존속 기간 이후로 독점 기간을 확대하는 전략을 말한다.

이를 통해 특허권자는 제네릭 의약품의 시장 진입을 막고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다만 이와 같은 후속 특허는 최초 원천 특허인 물질 특허와 비교해 그 권리 범위가 좁다.

또 경우에 따라 무효 가능성도 높을 수 있다. 무효 가능성이 높은 후속 특허에 대해서도 판매 금지 신청권 등 강력한 권한이 인정된다면 제네릭 의약품의 시장 진입이 늦어짐에 따른 제네릭 제약사의 매출 감소가 발생할 것이다. 당연히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가 유지에 따라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의 약제비 부담이 증가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에 오리지널 의약품 등재 특허에 대해 특허 도전을 활성화해 제네릭 의약품의 신속한 출시를 장려하기 위해 허가·특허 연계 제도와 같이 도입된 제도가 우선 판매 품목 허가 제도다.

우선 판매 품목 허가 제도는 소송을 통해 특허 도전에 성공한 제약사에 대해 9개월 동안 해당 제약사가 제조한 제네릭 의약품의 독점 판매권이라는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제약사가 우선 판매 품목 허가권을 획득하려면 다른 제약사들보다 우선해 가장 먼저 품목 허가를 신청해야 한다.

또한 등재 특허에 대해 최초로 무효 심판(권리 범위 확인 심판, 존속 기간 연장 등록의 무효 심판 포함)을 청구하거나 최초 심판 청구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심판을 청구해 무효 등 쟁송에서 승소해야 한다.

한편 우선 판매 품목 허가 제도 시행 결과 하나의 등재 특허에 대해 수십 건 또는 많게는 50건 이상의 무효 심판 등이 청구돼 다수의 제약사가 우선 판매 품목 허가권을 획득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는 최초 심판 청구일 이후 14일 이내에 심판을 청구한 자에게도 우선 판매 품목 허가권을 인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다수의 우선 판매 품목 허가권자가 존재함으로써 독점권의 의미는 무의미해졌다.

또 특허 도전 성공에 따른 시장에서의 매출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워짐에 따라 특허 도전에 성공해 우선 판매 품목 허가를 취득하고도 해당 품목을 출시하지 않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제약업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우선 판매 품목 허가 제도 개선을 모색하고 있어 제도 도입 취지를 살린 개선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차효진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