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디 크로포드·나오미 캠벨·엘튼 존·마돈나·할리 베리…1997년 피격, 화려한 인생 막 내려
류서영의 명품이야기베르사체 ③

블랙 색상의 미니 드레스는 A라인의 실루엣으로 바로크 여신의 프린트가 옆선을 따라 배색으로 부착됐고 컬러풀한 안전핀과 메두사 문양의 단추가 절개선을 따라 부착된 스타일이다(사진①). 베르사체로선 의도하지 않은 톡톡한 홍보 효과를 거둔 셈이다.
이번 원주 씨의 하객 룩은 우연의 결과이지만 유명 인사들을 통한 브랜드 인지도 높이기는 베르사체의 전통적 전략이었다. 1978년 밀라노 컬렉션에 데뷔한 베르사체는 패션의 중심지이자 유서 깊은 파리에서는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베르사체는 패션쇼에 슈퍼모델들을 대거 세웠다. 슈퍼모델은 패션쇼뿐만 아니라 패션 사진, 화장품을 비롯한 각종 광고 등 다방면에서 활약을 보이며 고수익을 올리는 모델을 일컫는다. 패션업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중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모델들이다.
독일 출신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쉬퍼는 “슈퍼모델이 되려면 동시에 전 세계의 모든 패션 매거진 표지에 등장해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슈퍼모델 린다 에반젤리스타는 “크리스티 털링턴과 나는 일당 1만 달러 이하의 일을 위해서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는 말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세계적인 슈퍼모델의 몸값이 얼마나 비쌌는지 짐작하게 한다.

막대한 비용 들여 슈퍼모델 캐스팅 효과 톡톡
크리스티 털링턴이 베르사체 패션쇼에서 한 번 무대에 오른 대가로 8만 달러의 개런티를 받았다는 일설도 있다. 털링턴은 1991년 미국 화장품 회사 메이블린과 1년에 단 12일 일하는 조건으로 80만 달러 광고 계약을 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1995년 클라우디아 쉬퍼는 1200만 달러의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1980년대 말부터 베르사체는 이런 세계적인 슈퍼 모델들을 적절하게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매 시즌 신디 크로포드, 린다 에반젤리스타, 나오미 캠벨, 크리스티 털링턴, 클라우디아 쉬퍼, 케이트 모스, 헬레나 크리스텐슨, 카를라 브루니 등과 같은 초호화 슈퍼모델들을 많은 비용을 들여 패션쇼에 캐스팅했다.
패션쇼의 마지막은 항상 베르사체가 슈퍼모델들과 팔짱을 끼고 함께 등장하는 것으로 장식했다(사진②). 이들 슈퍼모델들은 화려하고 글래머스한 베르사체의 디자인을 잘 표현했고 베르사체는 이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슈퍼모델의 자신감과 관능미 넘치는 워킹, 섹시한 포즈로 관객을 유혹하는 자세는 베르사체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고 베르사체는 곧 섹시함과 럭셔리함의 대명사가 됐다.
베르사체는 “나는 유명인에게만 옷을 제공하기를 원한다”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일반인보다 유명 영화배우나 팝스타 등 특정 계층을 타깃으로 하는 마케팅 전략을 폈다. 이런 전략은 지나친 노출과 섹슈얼리즘으로 저속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의상들은 대중적인 관심과 시선을 끌기에도 충분했다.
베르사체가 이런 마케팅 전략을 펼친 것은 1년에 4번의 패션쇼로선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영화배우와 팝스타에게 자신의 옷을 입히는 전략을 택했고 결과적으로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중에게 브랜드를 홍보하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
베르사체는 팝스타와 영화배우들이 패션의 선도자들이라고 보고 이들에게 럭셔리하고 섹시한 자신의 옷을 입혀 브랜드의 위상을 높여 나간 것이다. 베르사체의 의상을 즐겨 입는 연예인들은 당대의 스타를 망라한다. 엘튼 존, 마돈나, 실베스터 스탤론, 엘리자베스 테일러, 티나 터너,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 할리 베리 등이 대표적이다. 베르사체는 엘튼 존, 티나 터너와 같은 록 스타들이 공연할 때 입은 무대 의상을 직접 만들어 줬다. 또 영화배우들이 레드 카펫을 밟을 때 입는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베르사체의 사생활은 호화 그 자체였다. 사치를 미덕으로 삼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세계적 디자이너라면 그럴 권리는 당연히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베르사체의 저택들엔 이를 입증하는 수많은 예술 작품, 화려한 가구들, 로마 시대의 유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세계적인 팝스타와 영화배우들에게 고급 드레스를 선물하기도 하고 이들을 수시로 초대해 호화 파티를 열곤 했다.
하지만 뜨는 해가 있으면 지는 해도 있는 법이다. 정상에만 머무를 것 같던 베르사체의 화려한 인생도 어느 날 갑자기 막을 내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1997년 7월 15일 미국 마이애미 자택 앞에서 동성애자 연쇄 살인범인 앤드루 커내넌에게 피격 당해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그의 나이 50세 되던 해였다. 베르사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의 금기를 깬 파격적인 디자인도 막을 내렸다. 범인인 앤드루 커내넌은 8일 후 자살하는 바람에 베르사체의 죽음은 원인을 모르는 미궁으로 남게 됐다.

베르사체 사망 뒤 형 산토가 최고경영자가 됐고 도나텔라는 수석 디자이너를 맡아 디자인을 총괄했다. 베르사체는 생전에 ‘베르사체 걸(Versace Girl)’이라고 여길 정도로 도나텔라를 아꼈다. 하지만 베르사체는 오랫동안 적자를 낸 끝에 2018년 18억 3000만 유로(현 환율 기준 한화 약 2조 4000억원)에 지미 추와 마이클 코어스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대표 명품 기업인 카프리홀딩스에 팔렸다. 그럼에도 도나텔라는 현재까지 카프리홀딩스에서 베르사체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도나텔라는 오빠 지아니 베르사체의 스타일을 현대화한 감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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