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진 삼프로TV 이코노미스트
굵직한 경제 위기와 사이클 몸소 체득한 ‘영원한 현역’

1997년 외환 위기,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붕괴, 2008년 금융 위기 그리고 2020년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까지 현장에서 경제의 다양한 스토리와 사이클을 경험했다. 그야말로 주식 시장에서의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거시경제 전문가로 손꼽히는 이코노미스트 김한진 박사의 얘기다. 그는 한국 리서치 역사의 산증인이다. 이직이 활발한 증권업계에서 그는 우직하게 애널리스트로서 한길만 걸었다. 신영증권과 흥국증권 리서치센터장을 거쳐 삼성투자신탁운용 리서치헤드,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 등을 역임하고 2013년 KTB투자증권(현 다올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로 현업에 복귀해 업계의 귀감이 된 일화는 유명하다.
경력의 정점을 찍고도 다시 현장에 돌아와 KTB투자증권에서 몸담은 9년간 6권의 책을 썼다. 2021년 말 치열했던 여의도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지만 은퇴는 아니다. 2022년 초 삼프로(3PRO)TV 이코노미스트로 자리를 옮겨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36년간 애널리스트를 하며 ‘훈련’받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영원한 현역’ 김한진 박사를 만났다.
-1986년 신영증권을 시작으로 36년간 애널리스트 외길을 걸었습니다. 원동력은 뭔가요.
“제일 큰 것은 ‘미스터 마켓(Mr. Market)’이 도와준 거죠. 입사했을 때는 코스피가 200도 안 됐는데 2021년 6월 3300까지 찍었으니 36년간 거의 20배 가까이 올랐네요. 마켓이 커지고 투자 인구가 늘고 기관투자가와 개인 투자자의 팽창이 결국 애널리스트에 대한 수요를 늘려 줬기 때문에 저도 성장의 수혜를 봤다고 생각해요.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마켓의 도움을 많이 받은 거죠.
인간이 시장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요. 마치 산악인이 더 높은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계속 도전하듯이 애널리스트도 시장을 완벽하게 예측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오히려 그게 매력인 것 같아요. 시장에 대한 경외심, 범접할 수 없는 시장의 위엄, 시장 앞에서 인간의 미약함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도전 의식을 고취하고 동기 부여했다고 봐요.”
-애널리스트라는 용어가 생소하던 시절인 1986년 애널리스트를 시작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당시 컴퓨터는 카이스트나 가야 볼 수 있었고 전동식 타자기 시절이었죠. 1997년 외환 위기 직후에 컴퓨터와 엑셀 프로그램이 보급되면서 증권업계에도 퍼지기 시작했어요. 엑셀이 굉장히 중요한 변화를 일으켰죠. 엑셀 보급 이후 수익 추정 모델, 밸류에이션 모델 같은 데이터가 나왔고 매크로도 시장의 각종 적정 가치를 산출하고 경제 전망을 좀 더 과학적으로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죠.
제가 증권사에 들어온 1986년부터 한 10년간은 사실 리서치의 암흑기이자 석기시대였던 셈이에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암흑기라고 생각한 10년 동안 회사에서 배웠던 것들이 애널리스트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펀더멘털이 됐던 것 같아요. 분석 도구는 미개했을지라도 결국 시장을 예측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사고·논리이고 현상을 종합하는 융합 능력이죠. 현상을 종합해 미래를 예측하는 상상력이 중요하고 분석 도구는 그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지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저는 보스를 참 잘 만났다고 생각해요. 당시 신영증권 리서치헤드가 정종열 전 동부증권(현 DB금융투자) 대표였는데 맥줏집에서 토론하며 펀더멘털과 분석의 기초를 굉장히 잘 가르쳐 주셨어요. 주식 시장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의 역사가 짧았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죠. 적정 주가에 대한 평가 모델도 빈약했던 때라 우리보다 발달한 외국 증권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신입 사원 시절 일본 마루산증권에서 연수할 때 나이가 지긋한 연구원들이 독립적인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것을 봤어요. 과거에는 리서치센터장도 하고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도 했던 사람들이거든요.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계속 글을 쓰고 강연도 하면서 후배들에게 자문해 주고 회사도 기꺼이 은퇴한 직원들에게 기회를 주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도 나이가 들면 애널리스트로 마무리하는 것이 만족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당시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이었던 정용택 센터장이 고맙게도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죠. 본인도 제가 걸어갔던 길을 똑같이 걷겠다고 IBK투자증권에서 센터장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고 수석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정통 이코노미스트의 길을 걷고 있어요. 한화투자증권의 김일구 전 센터장도 2018년 센터장 자리를 내려놓고 수석이코노미스트로 글을 쓰고 있어요. 하이투자증권의 박상현 상무도 수석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에요.”
-리서치센터에서 경력과 연륜을 쌓은 시니어들의 장점은 뭔가요.
“젊은 애널리스트들은 마켓의 이슈에 대한 발 빠른 기동력을 바탕으로 이슈를 더 적극적으로 쫓아가면서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나이가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순발력이 부족한 대신 다양한 사이클을 경험했기 때문에 마켓에 대한 해석과 전망을 달리할 수 있어요. 지금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이 찾아왔는데 저는 대학 때 오일쇼크를 경험한 세대예요. 다양한 사이클과 시장 국면을 경험한 게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돼요.
‘이번만은 다르다(This time it’s different)’는 증시 격언이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틀렸다고 존 템플턴 경이 이야기했지만 시장은 비슷하게 반복되는 부분이 많아요. 경기 사이클도 업 앤드 다운이 있고 주식 시장도 결국 비싸지면 빠지고 싸면 올라요. 신입 사원 때 5년간 보스에게 배웠던 것이 평생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얘기했는데 결국 시장의 순환성을 배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시장이든 개별 종목이든 경제든 주가든 결국에는 펀더멘털에 수렴할 수밖에 없다는 시장의 원리를 그때 배운거죠.
나이와 경험이 많은 것을 잘 활용하면 굉장히 파워풀해질 수 있어요. 의사로 따지면 임상 경험이 많은 의사가 손이 떨려 수술은 잘 못할지라도 치료의 정확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능력은 더 클 수 있죠.”
-30년 넘게 자본 시장을 분석하면서 경제의 다양한 히스토리와 사이클을 경험했는데 기억에 남는 변곡점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1997년 외환 위기,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붕괴, 2008년 금융 위기, 2020년대 코로나19 팬데믹 등 크게 네 번의 경제 위기가 있었죠. 외환 위기 때는 제 경험이 일천할 때였지만 그 나이에 국가가 부도가 난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정말 충격이었죠. 그런데 당시 우리 팀은 한국 경제는 곧 회복된다고 전망했어요. 환율이 달러당 1500원을 향하고 있었고 무역수지 흑자가 결국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외환 위기에 빠졌던 나라 중 망한 나라가 거의 없었는데 한국의 산업 구조상 망할 수 없다고 리포트를 써 기관 세미나를 했던 게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닷컴 버블 때는 묻지 마 투자 광풍이 일면서 결국 모든 기관과 개미들이 무덤으로 가는 광경을 목도했죠. 당시 반대쪽에 있던 기업들이 성장성이 없고 안정된 수익 모델을 갖고 있던 롯데칠성·농심·신세계 등 기업들인데, 이 기업들이 닷컴 버블 붕괴를 기점으로 성장주 거품이 꺼지면서 주가수익률(PER)이 30배 이상 올랐어요. 성장주 다음에는 그 반대쪽의 가치주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시장의 원리를 알게 됐죠.
2008년 금융 위기는 미국의 가장 경쟁력 있는 산업인 금융 시스템이 망가진 사건이에요. 첫째로 미국도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어요. 하지만 미국은 달러를 찍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죠. 미국은 달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는 둘째 교훈을 얻었어요. 셋째로 ‘기승전연준(미국 중앙은행)’이에요. 미국 중앙은행(Fed)이 어떤 정책을 내리고 유동성을 공급하느냐, 회수하느냐가 주식 시장에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한국에서도 2007년부터 Fed의 의사 결정에 대해 상세히 분석하기 시작했어요. 2008년엔 바이사이드에 있을 때라 직접 관련 보고서를 쓰지는 않았지만 Fed의 역사부터 금리 유동성, 통화 정책과 자산 시장을 연결하는 공부를 많이 했죠.”
-팟캐스트·유튜브 등 활동 영역을 꾸준히 넓혀 가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조언해 줄 말이 있나요.
“자기 이름 석자를 걸고 일하면서 자존감 있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세상에 많지 않아요. 자기 만족감·자존감·희열을 느낄 수 있는 게 애널리스트라고 생각해요. 적성에만 맞는다면 도전할 가치가 있는 직업이 아닐까 싶어요. 분석과 관련해선 ‘생각하는 힘’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생각하는 힘을 더 기르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쓰고 대화하고 논쟁해야 합니다.
한국의 리서치 문화에서 논쟁 문화가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좋은 리포트를 쓰는 데는 동료와의 소통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마켓이 여기에서 어디로 갈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리포트가 더 많이 나와야 해요. 신입 사원 시절 맥줏집에서 훈련받았던 것이 결국은 ‘생각하는 힘’이었고 그게 답인 것 같습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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