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코웨이가 100억원 배상하라 판결
2심 “핵심 원리 다르다” 결과 뒤집혀

[법알못 판례 읽기]
‘BTS 정수기’로 불리는 코웨이의 아이콘 얼음 정수기 광고 이미지. 사진=코웨이 제공
‘BTS 정수기’로 불리는 코웨이의 아이콘 얼음 정수기 광고 이미지. 사진=코웨이 제공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업체가 기술을 두고 법정 싸움을 지속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업체에서는 자신들이 만든 독자적이고 진보한 기술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이미 업계에 공개된 기술이기 때문에 상대방 회사의 기술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현실 속에서도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특허 전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2위를 다투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전쟁이다. 이들은 기술이 하나 공개될 때마다 각국 법원에서 특허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 업체끼리의 특허 전쟁도 치열하다.

가장 최근에 불거진 것은 청호나이스(이하 청호)와 코웨이 간 ‘얼음 정수기’ 특허 전쟁이다. 두 기업은 2014년부터 증발기 하나로 얼음과 냉수를 만드는 특허 기술을 둘러싸고 8년째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최근 두 회사의 특허 전쟁의 판이 뒤집혔다. 특허 침해 소송 항소심에서 코웨이가 1심을 뒤집고 승소했다. 2021년 법원은 청호가 가진 특허 기술 자체의 진보성은 인정했지만 이번 재판부는 ‘코웨이의 정수기가 청호의 특허를 침해하지는 않았다’는 판단을 내놓은 것이다.

청호, 1심에서 승기 잡았지만…

사건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호는 2015년 4월 “코웨이가 2012년 출시한 ‘스스로 살균 얼음 정수기’가 자사 ‘이과수 얼음 정수기’의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과수 얼음 정수기의 핵심 기술은 얼음을 만들어 내는 부품인 증발기 하나로 제빙과 냉수를 동시에 하는 것이다. 코웨이가 비슷한 기능의 정수기를 출시하면서 특허권 분쟁이 시작됐다.

쟁점은 제품의 작동 원리가 얼마나 비슷한지였다. 두 제품의 구성품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코웨이가 출시한 제품에 사용된 기술과 청호나이스가 보유한 기술에 차이가 있다”면서도 “기술상의 핵심이 아닌 비본질적인 부분으로 두 정수기의 구성은 같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제품 구성 중 일부 변경된 부분이 있더라도 기술 원리가 동일하고 이를 통해 작용 효과가 같다면 특허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논리다. 이에 100억원의 손해 배상금과 함께 스스로 살균 얼음 정수기의 생산과 대여, 원자재 및 기계 설비를 모두 폐기하라고 명령했다.

2015년 특허 침해 소송 1심에서 진 코웨이는 곧바로 청호 특허에 대한 특허 등록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청호의 특허가 진보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특허 등록을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허가 무효로 판명 나면 청호가 더 이상 특허 침해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6년 특허법원은 코웨이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청호 측은 대법원 상고심을 진행하며 특허 발명을 정정했다. 이전 특허 발명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정확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어 조금 더 명확하게 기술을 기재하기 위해서였다.

특허심판원은 이를 받아들였고 청호 측은 다시 한 번 기술에 대한 진보성을 확인받았다. 대법원 역시 “확정된 정정 기술을 바탕으로 다시 심리하라”며 2017년 특허법원에 환송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일반적인 기술자가 쉽게 따라 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기술적 차이점이 있고 일부 요소는 구체적인 구성과 그 작동 방식이 선행 발명과 차이가 있다”며 청호의 특허를 인정했다. 이처럼 지난 7년간 이어 온 얼음 정수기 특허 전쟁의 승기는 그동안 청호가 잡고 있었다.
‘임영웅 직수 얼음 정수기’로 불리는 청호나이스의 직수얼음 정수기 아이스트리. 사진=청호나이스 제공
‘임영웅 직수 얼음 정수기’로 불리는 청호나이스의 직수얼음 정수기 아이스트리. 사진=청호나이스 제공
2심에서 반전, 대법원 판단에 주목

하지만 사건은 항소심에서 급반전됐다. 2022년 7월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4민사부(부장판사 이광만)는 청호가 코웨이를 상대로 낸 특허권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2심은 기술의 핵심 원리가 동일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청호의 이과수 정수기는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냉수로 얼음을 만들지만 코웨이의 스스로 살균 얼음 정수기는 냉수가 아닌 정수로 얼음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청호의 특허는 ‘냉수를 제빙 원수로 사용한다’는 것인데 코웨이 얼음 정수기는 냉수가 아닌 섭씨 영상 12~16도 온도의 물로도 얼음을 만들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원리의 차이로 인해 청호 정수기는 외부 온도와 상관없이 일정하게 제빙량을 유지하지만 코웨이 정수기는 외부 온도에 영향을 받는 등 작용 효과에도 차이가 있다고 봤다.

2심은 “(청호 측) 발명의 경우 주위 온도에 관계 없이 일정 기간 동안 일정한 양의 얼음을 얻을 수 있다”며 “코웨이 제품은 주위 온도가 높아지면서 일정 시간 얻을 수 있는 얼음의 양이 적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코웨이 얼음 정수기가 청호의 특허 자체를 침해한 바 없다고 했다. 청호 관계자는 “대법원의 판단을 다시 받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5년간 413건 소송…글로벌 특허 괴물 ‘먹잇감’ 된 삼성

비슷한 물품을 제조하는 업체끼리 특허 소송을 벌이는 경우도 있지만 특허 관리 전문 회사(NPE)와 제조 업체 간의 특허 소송의 비율도 높은 편이다.

NPE는 생산 활동을 하지 않은 채 확보한 특허를 바탕으로 제조 업체에 특허 침해 소송을 걸어 막대한 배상금을 챙기거나 특허를 제조 업체에 라이선싱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단체다. 이들의 또 다른 이름은 ‘특허 괴물’이다.

NPE는 제조 업체가 아닌 만큼 특허를 직접 만드는 업체는 아니다. 하지만 여타 특허를 가지고 있는 업체나 사람에게 양도받아 비슷한 기술을 쓰는 업체에 무분별하게 특허 침해 소송을 걸곤 한다. NPE는 기초적인 기술 특허를 가지고 신제품을 공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대부분의 NPE는 미국에서 한국 기업을 공략한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에서 한국 기업 20곳에 대한 피소 건수는 707건에 달한다. 이 중 원고가 NPE인 소송은 530건(75%)이나 된다. 한국은 기술 기반 산업이 발달돼 있는 만큼 NPE들의 먹잇감이 되기도 쉽다는 분석이다.

한국 기업 중 NPE의 공격을 가장 많이 받는 업체는 바로 삼성전자다. 스마트폰·가전·반도체까지 사업 분야가 넓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를 향한 NPE의 공격은 한국은 물론 해외 유명 정보기술(IT) 기업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7년부터 2021년 3분기까지 미국에서 총 413건의 특허 침해 소송을 당했다.

특히 대형 NPE뿐만 아니라 신생 NPE와 전직 임원까지 회사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이어 가고 있다. 최대 NPE인 스크래모지 테크놀로지는 삼성이 자사의 무선 충전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제소했다. 갤럭시 S21과 S22도 발매와 동시에 여러 NPE로부터 무선 통신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법원에 소송이 제기됐다.

특허 담당 임원이었던 안승호 전 삼성전자 지식재산권(IP) 센터장도 소송을 제기했다. 안 전 부사장은 삼성전자를 나온 이후 NPE인 ‘시너지IP’를 설립했다. 이후 삼성전자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S20’ 시리즈와 갤럭시 버즈, 빅스비 플랫폼 등에 적용된 오디오 녹음 장치 등이 총 10건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미국 법원에 시너지IP를 영업 비밀 도용으로 맞고소했다. 안 전 부사장이 재직 중 취득한 영업 비밀을 보호하지 않고 악용했다는 것이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