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목표와 전략 단위 설정 ·단위별 신속 적용 ·안정적 운영 위한 경영자의 밸런싱

[경영 전략]
‘애자일 경영’ 성공 위한 세 가지 포인트[박찬희의 경영 전략]
전략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크고 중요한 일이니 미리 알아보고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거대하고 복잡한 회사일수록 미리 손발을 맞춰 보고 빈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투자자와 이해관계인을 설득하고 정책 환경도 호의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달라진 세상에 맞지도 않는 계획을 들이대며 황당한 목표를 우겨대거나 시도 때도 없이 진행 상황을 따지며 간섭하는 ‘그들만의 권력’이 되는 경우도 있다.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사람들의 투박한 목소리는 ‘게으른 푸념’으로 폄훼되고 경영자는 그럴듯한 전문 용어로 포장된 보고서와 발표, 가지런히 맞춰진 숫자에 중독돼 간다.

미리 내다보고 준비하는 전략의 묘를 살리면서 철 지난 계획을 우겨대는 꽉 막힌 경영을 막아내는 것은 세상 모든 경영자의 고민이다. 애자일 경영은 이런 고민에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직접 일하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계획 자체를 수정하고 사업 모델을 진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늘 바뀌는 목표와 전략으로 어떻게 구성원들을 이끌어 갈지 생각하면 막막한 것도 사실이다.
목표와 전략은 바꾸면 그만?
철 지난 전략 계획을 들이대며 목표 달성을 강요하는 꽉 막힌 경영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애자일 경영의 전도사들은 작은 실천들 속에서 빠르게 배우고 수정해 가는 유연하고 민첩한 전략 개념을 제안한다. 장거리 항해에서 목적지와 일정이 있더라도 태풍과 해류 변화를 만나면 수시로 항로를 고쳐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조금 해보다 안 되면 전략을 바꾸고 나아가 목표 자체도 쉽게 바꾸면 회사는 어떻게 될까. 조금 어려운 일은 온갖 이유를 들어 변명하다가 바꾸면 그만이고 목표와 전략에 맞춰 준비한 일들도 모조리 다 틀어진다.

신(神)들이 모여 경영을 한다면 전략이 필요 없다. 세상 이치를 훤히 알고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이 아닌 부족한 사람들이 더구나 생각과 능력마저 제각각 다른데 유연하고 민첩하게 전략을 수정하고 서로 합을 맞춰 실행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그래서 조직을 갖춰 권한과 책임을 배분하고 앞으로 할 일들을 정해 목표와 성과를 관리한다.

일을 맡은 사람의 권한과 책임 안에서 일정한 판단과 재량이 있으니 그 범위에서 일부 목표와 계획을 수정하고 관련자들과 협의하는 여지를 두는데 수정과 진화라는 애자일 경영의 기본 정신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른바 ‘운영의 묘’라고 한다. 하지만 그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조직 전체의 목표와 전략을 탄력적으로 수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산업용 전력 설비 업체인 K사는 빠르고 민첩한 경영을 위해 애자일 경영을 구현하는 체제를 도입했다. 장기 전략 계획과 연도별 운영 계획, 여기에 연동된 목표 관리와 자재 조달, 인력 충원의 틀을 벗어나 사업부별로 과감한 전략 수정의 권한을 부여했지만 막상 사업부 담당자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업부 담당자들로선 회장님이 만든 목표와 전략에 수정을 언급하면 자칫 제대로 실행하지 못해서 변명하는 셈이고 부진한 업무 추진으로 감사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생산 시스템의 운용(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달리)은 판매와 조달을 맡은 협력사들과 계약 이행 때문에 짜여진 계획을 벗어나기 어렵다. 사업부 담당자들은 예전에 일부 갖고 있던 재량권마저 혹시 튀는 행동이 될까 걱정해 움츠러들고 말았다.

결국 K사는 연구·개발, 그것도 미래 기술 전략을 다루는(무엇을 바꿔도 당장 영향이 작은) 부문에만 애자일 경영을 도입하고 기존의 관리 통제의 틀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K사의 애자일 경영은 이 연구·개발에서 큰 성과를 보였다.애자일 경영, 제대로 하려면
경영학 분야에서는 뭔가 새로운 개념이 나오면 온갖 좋은 얘기들을 다 갖다 붙여 ‘만병통치약’을 만들어 버린다. 애자일 경영도 비슷해 원활한 소통, 시장 반응성, 자율적 동기 부여 같은 성공의 요소들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이런 싸구려 호들갑을 넘어 핵심 포인트를 짚어보자.

첫째 애자일 경영은 목표와 전략을 빠르게 수정할 수 있는 단위를 설정하며 시작된다. 자기 완결성과 독자성이 높은 프로젝트 조직일수록 효과적이다.

애자일의 개념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분야에서 정립됐다. 정보기술(IT) 시스템이 특정 작업(task)을 목표로 하는 작은 모듈들을 연결해 구성되고 수시로 업그레이드하는 환경에서 가능한 범위에서 답을 내놓고 베타 테스트를 통해 수정하고 사용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진화시키는 개념이다.

앞에서 본 K사는 연구·개발 부문이 IT 프로그래밍과 유사한 면이 있는데 회사 안팎에 맞물린 이해관계가 복잡하지 않고 프로젝트별로 유연하게 스스로의 목표와 전략을 수정할 수 있었다. 실제로 프로젝트의 점검과 방향 탐색은 ‘코드 리뷰(code review)’와 개념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둘째, 여러 구성 단위들이 맞물린 사업 프로세스를 가진 경우 애자일 경영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신속 반응이 가능한 단위들로 나눠 적용할 수 있다.

패션 사업은 늘 만들어 놓은 완성품 옷이 재고로 남아 고민이다. 최근 SPA 브랜드들은 과거와 달리 유행의 흐름을 잡은 뒤 소량의 제품을 출시한 후 반응에 따라 디자인별로 생산 비율을 조정한다. IT는 매장과 생산 공장, 디자인실을 실시간으로 연결해 반응성을 높인다.

대규모 플랜트에서 연속 생산 공정을 수행하는 석유화학의 경우 신속한 반응이 힘들지만 완성품과 원재료의 재고를 통해 불확실성을 흡수하고 연구·개발, 마케팅과 같이 연속 공정에서 독립적인 활동들을 분리해 애자일 경영을 적용할 수 있다. 군(軍)에서 빠른 시간에 편성과 배치가 가능한 신속대응군을 두고 정규 편제 부대에도 산하에 현장 중심의 독자적 작전을 수행하는 기동부대를 두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IT, 특히 네트워크 통신을 활용해 제품이 사용자의 요구에 맞게 설정되고 수시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게 되면 제품 기획과 생산에서 시장 반응에 맞추는 부담이 줄어든다. 스마트폰의 개인화된 애플리케이션 설정과 ‘OTA(over-the-air) 업데이트’가 그 예다.

셋째, 애자일 경영을 위해서는 변화의 요구를 민감하게 탐지하고 빠르게 실행하는 능력과 마인드가 요구된다. 또한 애자일 경영을 안정적 운영을 위한 관리 통제의 틀과 함께 가져가는 경영자의 밸런싱이 필요하다.

모든 전투 부대가 특수전 임무를 수행할 수는 없고 특수전 요원이라고 모두가 A급 첩보 공작원이 될 수는 없다. 눈치 보지 않고 과감하게 목표와 전략을 바꾸자고 나서려면 남다른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애자일 경영에서는 빠른 의사 소통과 결정을 위해 여러 분야에 연결된 다양한 전문성을 갖춘 구성원들이 필요하고 특히 변화의 당위성을 설득하는 능력을 강조한다.

바람과 파도를 읽어서 빠르게 키를 바꿔 잡으려면 변화를 읽는 예민함이 필요하다. 빠르게 구성원의 동의를 얻어내 자원을 재배치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수시로 바꿀 수 있다면 반대로 되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참고 버티는 배짱도 필요하다.

기존의 관리 통제는 이런 안정적 운영을 위한 수단인데 현명한 경영자는 이 틀에 애자일 경영의 기민함을 함께 담아 갈 수밖에 없다.

건설과 무역은 오래전부터 프로젝트 단위로 전략을 수정해 가면서 전사적 관리 통제의 틀에 맞춰 왔다. 사업이든 전쟁이든 짜여진 계획을 넘어 변하는 흐름 속에서 풀어가야 살아남는다. 애자일 경영의 속뜻이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