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지지율 28.9%…‘어젠다는 정치 자본’, 임기 첫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스페셜 리포트]
사진=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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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그는 많은 이슈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하는 능력 그리고 이를 관철하는 설득력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학 학자들이 말하는 대통령의 성공 요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젠다 선점 능력이 탁월했다고 할 수 있다. 어젠다도 간명했다. 감세, 예산 절감, 국방력 강화였다. 다시 말해 ‘작은 정부’와 ‘힘의 미국’이었다. 모든 것이 경제 문제였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더 중요한 성공 비결은 취임 1년 내에 이를 실행했다는 점이다. 6개월 만에 감세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이어 다른 예산은 절감하고 국방 예산은 늘렸다. 정권의 힘이 강력할 때라는 점을 활용했다. 그는 하나의 이슈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이슈를 부각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당시 알렉산더 헤이그 국무장관이 우선순위에 없던 외교 문제를 부각시키자 교체해 버린 일화가 이를 보여준다.

물론 집권 초기 물가는 잡지 못했다. 하지만 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던 민주당 출신 폴 볼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 대해서는 한마디 비난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1983년 그를 연임시키며 결국 물가도 잡아냈다.

한국 사회는 ‘어젠다 실종’의 시간을 맞고 있다. 공정과 상식보다 정권 교체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미래 지향적 담론 형성에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다. 느닷없이 등장한 ‘5세 초등학교 입학’ 같은 이슈는 역풍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가 상승, 주가 하락, 급증하는 무역 수지 적자, 매달 올라가는 실업률, 시한폭탄 같은 가계 부채 등에 대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가장 중요한 집권 1년 차에 낮은 지지율, 어젠다 세팅 실패는 한국 경제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원회에서 '어젠다 세팅'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 당시 당선인이 지난 3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원회에서 '어젠다 세팅'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 당시 당선인이 지난 3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지지율 반전의 동력은“지지율 반전을 만들려면 대통령의 어젠다(의제)가 있어야 돼요. 현 정부가 국정 과제를 120개나 선정했다고 하는데 그중에 3개만 말씀해 보세요. 저도 모르겠어요. 이 상태에서는 지지율 반전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박원석 정의당 전 정책위의장은 7월 14일 진행된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어젠다’가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자 반전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계속 하락 중이다. 20%대까지 떨어졌다. 여론 조사 전문 업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7월 29∼30일 전국 성인 1003명에게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수행에 대한 평가를 물은 결과 긍정 평가는 28.9%로 나타났다. 한 주 전보다 3.3%포인트 하락하며 30% 선이 무너졌다. 부정 평가는 전주 조사 대비 4.0%포인트 오른 68.5%를 기록했다(신뢰 수준 95%, 표본 오차 ±3.1%포인트). 7월 29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은 28%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30% 선이 무너졌다.

이는 정당 지지율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6%포인트 높아진 43.5%를 기록했고 국민의힘은 1.7%포인트 상승한 33.8%로 나타났다. 당 지지율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것은 이례적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8월 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국민의힘 지지율보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상황은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될 대목”이라며 “특히 (정권) 초기에 이렇게 지지율이 급전직하하는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에 쇄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학계에선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 어젠다의 실종과 연관이 있다고 보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3월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다수의 정책을 발표했지만 정부의 국정 기조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현기 가톨릭대 행정학 교수는 “공약으로 선택받은 대통령은 앞으로 나라가 어떻게 운영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공유해야 한다”며 “인수위원회에서 120개의 국정 과제를 선정했지만 이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고 대통령이 지금 뭘 하는지 알 수 없다. 굉장히 큰 문제”라고 했다.
대통령 어젠다의 실종
어젠다는 우리말로 의제다. 모여서 서로 의논하거나 연구할 사항이나 주제란 뜻이다. 어젠다가 대통령과 만나면 통치에 활용하는 주요 수단 가운데 하나가 된다. 대통령 지지율과 어젠다의 상관관계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한귀영 작가(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는 “어젠다는 대중의 욕망과 대통령의 관심이 만나는 공간이자 정치와 민의가 수렴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제에서는 지도자의 비전과 이념이 특히 중요하고 실질적 개혁의 성패가 구체적 정책에 달려 있다”며 “대통령의 민주적 리더십의 요체이자 통치의 수단으로서 어젠다가 특히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슈와 대안이 담긴 어젠다는 법안 형태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대통령의 언급으로 존재할 수 있다.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윤 대통령의 어젠다는 무엇일까. 후보 시절에는 ‘공정과 상식’을 필두로 한 정권 교체, 당선인 시절에는 청와대 집무실의 용산 이전 문제가 가장 큰 화두였다.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로 통일하거나 다주택자 양도세를 1년 감면하기로 한다는 정책 등도 화제를 모았지만 용산 이전이 모든 이슈를 삼켰다. 당선인 시절 인수위원회에서는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 과제’도 내놓았다.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사는 국민의 나라’란 슬로건 아래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사회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등 6개 대주제가 담겼다(표 참조).

지금은 어떤가. 주52시간 근무제 개편안에 이어 초등학교 입학 나이를 만 6세에서 5세로 한 살 앞당기는 학제 개편안이 정국을 뒤덮었다.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한 정치 비평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여기서 이 정책 발표하고 저 정책 발표하고 여러 가지 늘어놓긴 한다. (문제는) 우리한테 와 닿는 게 없다는 것”이라며 “기조, 즉 어젠다가 중요한데 현 정부의 비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역대 정권은 저마다의 대표 어젠다를 갖고 있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취임 첫 해 금융 실명제를 단행해 한국 경제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실명제 논의는 1982년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건을 계기로 불거졌지만 반대론자들에 의해 도입이 좌초되는 등 난항을 겪었다. 당시 미국도 200년이 넘게 걸렸고 일본은 제대로 시행조차 못한 정책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전부터 실명제를 필수 어젠다로 설정한 뒤 집권 후 대통령 긴급 명령으로 이를 강행했다. 경제 충격은 상당했지만 경제의 선진화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란 국난의 위기에서 출발한 김대중 정부는 ‘제2의 건국’ 비전을 선포하며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새해 연설에서 “국민 여러분께서 가지는 가장 큰 관심사는 과연 우리가 올해에 나라 경제를 다시 한 번 성장의 방향으로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라며 국민적 단결과 협력을 다지는 제2의 건국 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제2의 건국 운동을 통해 “우리는 1998년 이 해에는 경제 개혁의 큰 테두리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토대로 1999년 중반부터 플러스 성장을 시작할 것이고 2000년부터는 도약의 단계로 들어갈 것”이라고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균형 발전’을 어젠다 삼아 행정 수도 이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계에 부딪친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 경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 청와대와 중앙 부처를 옮겨 가겠다”고 발언한 이후 ‘행정수도 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상징성·비용·기간 등을 눈감은 억지 포퓰리즘이라며 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우여곡절 끝에 특별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헌법소원으로 좌초 위기를 맞았다. 정부 부처만 이전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사업이 축소됐지만 노 대통령의 균형 발전 어젠다는 뚝심 있게 지속됐다.

‘녹색 성장’은 이명박 정부의 간판 어젠다다. 이 전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을 이을 새 국가 발전의 패러다임으로 녹색 성장을 제시하며 “녹색 기술과 청정 에너지는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불도저’란 별명답게 6개월 만에 4대강 정비 사업, 녹색 뉴딜 사업 10대 핵심 과제 발표, 녹색 성장 기본법 의결, 녹색 성장위원회 출범 등을 처리했다. 토목 사업 위주의 경기 부양책은 녹색 성장의 이름만 따온 것이란 환경론자들의 반발도 컸다. 성패와 관계없이 환경과 성장이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비전 제시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정권을 대표하는 어젠다가 있었다. ‘창조 경제’다. 창조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저출산·고령화·저성장·고실업 등의 4각 파도에 포위당한 한국 경제 위기 돌파의 새로운 해법으로 지식재산권의 창출과 활용에 초점을 맞춘 융합 산업과 문화 산업에 성장 동력을 집중한다는 구상이었다.

인수위 없이 바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어젠다는 ‘소득 주도 성장’이다. 소득 주도 성장은 문 전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2015년부터 당론으로 제시했던 담론이었다. 이에 주요 어젠다가 결정되는 인수위의 시간 67일이 없었음에도 출범 직후 어젠다 설정을 완료할 수 있었다. 소득 주도 성장은 대기업의 성장에 따른 임금 인상 등의 낙수 효과보다 노동자의 소득을 높여 경제 성장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 핵심 어젠다를 뒷받침해 ‘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주52시간 단축’ 등의 정책을 폈다.

해외 지도자들 역시 대통령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어젠다 설정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미국 대통령은 연초 국정 연설인 연두교서(연설문)에서 그들의 어젠다를 주요하게 다룬다. 몇 주에 걸쳐 수많은 자문을 거쳐 작성된 이 연설문은 대통령의 우선순위 목록이 든 메시지로, 대통령의 어젠다 그 자체다.대통령의 시간, 어젠다의 힘 5년.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시간 자원은 극히 제한적이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대통령의 재선이 허용되지 않는 단임제다. 그래서 어젠다 설정은 더욱 중요하다. 다수의 대통령은 인수위 기간 어젠다 설정에 총력을 기울인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주요 관계자들은 “5년의 국정 운영이 대통령 취임 전 인수위 67일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현 정부의 인수위는 어젠다 설정에 제대로 된 답을 주지 못했다는 데 여야 다수 의원이 공감한다. 어떤 비전으로 국정을 차별화하고 어떤 전략을 취할지 뚜렷한 답을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신현기 교수는 “윤 대통령의 어젠다가 보이지 않는 문제의 원인은 인수위에 있다”며 “인수위 기간 국민에게 정부의 비전을 충분히 제시했어야 하는데 그게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묻지 마 정권 교체’의 성격이 강했다 보니 대통령의 비전이나 정책은 차치하고 정권을 교체할 사람을 찾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그것이 어젠다의 실종이란 문제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아직 시간은 남았다. 집권 1년 차, 대통령의 힘이 가장 강할 때다. 대통령학 전문가인 시어도어 폴 라이트 뉴욕대 교수는 그의 저서 ‘대통령의 어젠다’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 어젠다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실현하려면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임기 첫해 초반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움직이지 않으면 잃을 것’이라는 명제를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통령의 지지 기반을 위해서도 어젠다는 중요하다. 실제 전임 대통령들은 지지율 하락에 맞서는 카드로 새로운 어젠다를 꺼내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3년 차 지지율 하락에 ‘양극화 해소가 최우선’이란 새 어젠다를 제시해 맞섰고 이명박 전 대통령 또한 지지율로 고전하던 집권 후반기에 ‘공정 사회’란 화두를 꺼내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신 교수는 “대통령에게 어젠다는 정치적인 자본”이라며 “의회 상황이나 여론이 대통령에 반할 때 어젠다는 대통령이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정국을 돌파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다시, 대통령의 지지율을 생각할 때다. 처음으로 30% 선이 무너졌다. 당 지지율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이례적인 상황이다. 한국 경제는 대내외적 악재로 위기다. 물가 상승, 주가 하락, 급증하는 무역 수지 적자, 매달 올라가는 실업률, 시한폭탄 같은 가계 부채 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지지 기반이 흔들릴 때 대통령이 내려야 하는 처방은 단순하다. 이들의 삶을 다시 통치의 영역으로 끌어안고 보듬는 것이다. “대중의 관심과 고민, 절박하게 원하는 것을 수용하고 이것을 어젠다를 통해 제기하고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한다.” 2011년 한귀영 작가가 한국 대통령의 실패에 주목해 쓴 ‘진보대통령 VS 보수대통령’의 책 한 구절을 다시금 들여다볼 시간이다.
대통령 어젠다의 실종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