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아래 똘똘 뭉친 스트롱맨들
미국·서방 중심 국제 질서 흔들어…세계 경제 초토화

[비즈니스 포커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일인 2월 4일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에서 자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일인 2월 4일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에서 자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중고가 겹치면서 세계 경제가 신음하고 있다. 지구촌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두 명의 ‘빌런(악당)’이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두고 하는 말이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자국의 풍부한 자원 매장량을 활용해 각종 제재에도 끄떡없이 자급자족하며 자원 무기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글로벌 인프라와 투자를 위한 파트너십(PGII)’,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 다양한 경제 안보 동맹을 내놓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에 맞서 브릭스(BRICS :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경제 5개국)를 활용해 독자 경제권을 키우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은 브릭스 국가 비즈니스 포럼 개막식에서 “브릭스는 세계 인구 30억 명,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의 25%, 세계 무역의 20%, 전 세계 외환 보유액의 35%를 차지하고 있다”며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 브릭스가 회원국 간 협력과 단결을 통해 서방에 맞설 자체적인 경제권을 구축할 수 있다”고 했다.


첨단 산업 필수 소재 희토류 패권국 노리는 중국


둘은 반미로 똘똘 뭉쳐 남다른 유대 관계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균열을 만들고 싶어한다.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깨뜨리고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하는 다극 체제로의 변화를 추구한다.

중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사실상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러시아의 가장 든든한 우군 역할을 해왔다.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의 브로맨스는 자원 무기화를 통해 전 세계를 고통에 몰아넣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대표적인 자원 부국이다. 풍부한 자원을 협상의 무기로 삼고 자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미·중 무역 분쟁에서 희토류를 무기화했다. 희토류는 전기차·스마트폰 등 첨단 정보기술(IT) 제품과 군용 무기 생산에 쓰이는 필수 소재다. 중국이 세계 생산량의 60% 이상을 점유한다.

미국이 중국을 고립시키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주도하자 중국은 반격의 카드로 희토류를 활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희토류 광물 채굴이 대규모 환경 파괴를 동반한다며 환경 보호를 내세워 전략 자원인 희토류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희토류 관련 국유 기업과 연구 기관을 합쳐 세계 최대의 희토류 기업인 중국희토그룹을 출범시켰다.

희토류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던 미국도 자급자족을 추진하며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전략적 경쟁국으로 삼고 있는 중국이 국방뿐만 아니라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의 세계 최대 생산지라는 점에 불안감을 느껴 왔다.

미국은 희토류 매장량이 많은 편이지만 공급망에서 해외 의존도가 높은 수준이다. 희토류는 전자제품부터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이는 필수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 내 희토류 공급망 구축을 위한 지원을 발표하는 등 희토류 공급망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희토류 추출·재활용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러시아, 서방 제재 맞서 에너지 무기 휘둘러


에너지는 ‘21세기 신무기’로 둔갑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시작된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한 보복에 나서 풍부한 천연가스·석탄·석유 등의 매장량을 바탕으로 에너지를 무기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셋째의 원유 생산국이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돈줄을 죄기 위해 원유·천연가스 등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금지, 러시아에 대한 수출 통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차단, 푸틴 개인 제재 등 다양한 경제 제재 카드를 총동원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며 가계의 고통이 점점 커지고 있다.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스를 공급하는 가장 중요한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을 통한 가스 공급을 40%까지 축소해 유럽의 에너지난이 심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 등 유럽에서는 가스비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럽에서는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까지 이어지며 유럽의 고통을 심화시키고 있다. 영국 정부는 ‘머리를 매일 감지 말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다행인 점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 사회의 러시아 경제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예일대 경영대학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경제적 상황이 크게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를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상쇄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불리한 통계를 발표하지 않거나 통계를 조작한 사례도 있어 신뢰하기 어렵다고 했다. 맥도날드·스타벅스·나이키·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를 떠나면서 자본 유출과 고용 감소도 진행 중이다. 보고서는 장기적으로 러시아의 경제적 지위가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봤다.


[돋보기]
제15대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00년 11월 브루나이 영빈관인 아사아라에서 정상 회담을 갖기 전 악수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제15대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00년 11월 브루나이 영빈관인 아사아라에서 정상 회담을 갖기 전 악수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한국 대통령 6명 바뀌는 동안 20년 이상 장기 집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공통점이 많다. 푸틴 대통령은 1952년생, 시 국가주석은 1953년생으로 70대에 접어들었다. 냉전 시기 각각 소련과 중국에서 태어났고 재임 중 개헌을 통해 종신 집권의 토대를 닦았다.

푸틴 대통령은 1999년 보리스 옐친의 뒤를 이어 총리로 취임한 이후 23년째 장기 집권 중이다. 푸틴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한국의 역대 대통령인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을 모두 만났다.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의 3연임을 금지하고 있지만 중임은 무제한이다.

대통령 임기는 당초 4년이었지만 2008년 개헌을 통해 6년으로 연장돼 임기는 2024년 5월 7일까지다. 푸틴 대통령은 2024년 5선에도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 주석은 2003년 후진타오에 이어 국가주석에 올랐고 중국 헌법의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 금지 조항을 삭제해 15년 이상의 장기 집권 기반을 마련했다.

2022년 10월 5년에 한 번 돌아오는 중국공산당의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 지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긴장의 지속으로 하반기에도 경기 침체 우려가 나온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