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한 육아 휴직자, 과장급에서 대리급으로 발령낸 롯데마트
대법원 “불리한 처우 받은 것 맞다”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시내 한 롯데마트의 신선매장. 사진=롯데쇼핑 제공
서울 시내 한 롯데마트의 신선매장. 사진=롯데쇼핑 제공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직원에게 이전과 같은 형식적 직급을 부여했더라도 실질적인 권한이나 임금 등을 축소하면 부당한 인사 이동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전직 전후 차별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첫 판례다. 복직 후 인사 조치를 두고 육아 휴직자와 사측 간의 법적 갈등이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복직 후 영업담당 된 매니저…法 “부당 전직”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022년 7월 “복직한 발탁 매니저를 영업담당으로 발령 낸 롯데쇼핑의 인사는 부당 전직”이라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 판정을 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1999년 롯데쇼핑에 입사한 A(47) 씨는 2013년부터 롯데마트의 한 지점에서 발탁 매니저로 근무했다. 그는 2015년 6월 육아 휴직 1년을 승인받았다가 6개월 후인 이듬해 1월 복직 신청을 했다. 지점장은 “대체 근무자가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A 씨는 “자녀와 함께 살지 않게 되면서 휴직 사유가 없어졌다”며 재차 복직 신청을 했다.

롯데쇼핑은 기존 A 씨 자리에 대체 근무자가 있는 상황을 고려해 A 씨를 2016년 3월 식품부문 영업담당으로 발령냈다. 롯데마트에서 담당은 대리급 직급으로 과장급 직급인 매니저보다 낮다. 다만 발탁 매니저는 필요할 때 대리급 사원에게 부여하는 임시직이기 때문에 형식상 담당과 비슷한 수준의 직급으로 볼 수 있다.

A 씨는 이 같은 인사 조치가 부당 전직과 부당 노동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재심 판정을 맡은 중앙노동위원회는 “회사 측이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4항을 위반한 부당 전직”이라고 판단했다. 롯데쇼핑은 즉각 반발하며 재심 판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A 씨가 육아 휴직 전과 다른 수준의 임금을 받는 직무로 복귀했다고 볼 수 없다”며 롯데쇼핑의 손을 들어줬다. 발탁 매니저는 임시 직책에 불과하고 발탁 매니저로 일하다가 다시 담당으로 발령이 난 사례도 있어 부당 전직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 씨가 맡던 발탁 매니저 자리 외 다른 매니저 직책은 모두 과장 직급이 맡고 있었고 A 씨가 조기 복직을 신청한 것도 회사 측 승소 판결의 근거로 들었다.


구체화된 차별 기준…법적 분쟁 불붙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A 씨의 업무 권한과 책임 등이 상당히 바뀌었기 때문에 그가 인사 이동으로 불리한 처우를 받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A 씨가 휴직 전 맡은 생활문화매니저는 생활문화 코너 전반을 총괄하면서 영업 실적 관리 및 개선, 담당 사원(영업담당) 관리, 발주·입점·진열·판매·처분 등 매장 운영 전반을 담당하는 데 반해 복직 후 맡은 냉장냉동영업담당은 파트장과 매니저의 지휘 감독 아래 담당 코너인 냉장냉동 식품의 발주·입점·진열·판매·처분 업무를 담당한다”며 “매니저는 파트장 이후 소속 직원에 대한 인사 평가 권한이 있지만 영업담당은 이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기업이 복직한 노동자에게 휴직 전과 같은 업무가 아닌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를 맡길 수도 있지만 이전보다 불리한 직무가 아니어야 하는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기준으로는 △임금을 포함한 근로 조건, 업무 성격·내용·범위 및 권한·책임 등에서의 불이익 △직무 부여 필요성 △기존 업무상·생활상 이익 박탈 △동등하거나 더 유사한 직무를 부여하기 위한 노력 여부 등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복귀 후 맡게 될 업무나 직무가 육아 휴직 이전과 현저히 달라짐에 따른 생경함, 두려움 등으로 육아 휴직 신청이나 종료 후 복귀 그 자체를 꺼리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도 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노동자들이 육아 휴직 후 회사로 돌아갈 때 예상하지 못한 전직으로 불리한 처우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선례가 생겼다는 평가다. 이전과 같은 직급이라도 이번 판결 과정에서 대법원이 내놓은 세부적인 기준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근거가 있다면 노동자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대법원이 남녀고용평등법에 규정되지 않은 내용을 기준으로 내놓았기 때문에 부당 전직 판단을 두고 법정에서 치열한 법리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는 육아 휴직자에 대한 처우에 대해선 ‘육아 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 ‘육아 휴직을 마친 후에는 휴직 전과 같은 업무나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 정도의 내용만 담고 있다.


[돋보기]
노동자, 육아 휴직 급여 소송에서도 승소


노동자들은 복직 후 전직뿐만 아니라 육아 휴직 급여 관련 소송에서도 최근 승소하고 있다. 승소 과정에서 육아 휴직자들의 처우에 관한 판단 기준도 차츰 구체화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2021년 12월 직장인 A 씨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을 상대로 냈던 육아 휴직 급여 부(不)지급 처분 취소 소송 파기 환송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A 씨는 2013년 1월 첫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1년간 육아 휴직을 했다. 그 후 둘째 출산으로 2014년 6월 또다시 1년간 육아 휴직에 들어갔다. A 씨는 이때 첫 휴직 기간에 받지 못했던 육아 휴직 급여 중 두 달 치를 신청해 받았다. 하지만 2차 휴직 종료 후 신청한 나머지 10개월 치 육아 휴직 급여는 받지 못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측은 “청구 기간인 1년이 지났다”는 것을 이유로 댔다.

A 씨는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에선 연달아 판결이 뒤집혔다. 1심에선 A 씨가 승소했지만 2심에선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이겼다. 그 후 대법원이 다시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재판부는 “육아 휴직 급여를 신청하면 허용받은 휴직 기간 전체에 관한 추상적인 급여 청구권이 행사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A 씨가 육아 휴직 중 2개월 치 휴직 급여를 청구했다면 나머지 급여를 기한을 넘겨 신청하더라도 지급 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파기 환송심에서도 이 같은 판단이 유지되면서 A 씨는 5년여간의 법정 공방 끝에 최종 승소했다.

무급 육아 휴직 중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은 것을 합법으로 인정한 판례도 나왔다. 춘천지방법원은 2022년 6월 강릉시 전 공무원 B 씨가 원주시장을 상대로 낸 소득 인정액 소급 변경 결정 처분 취소 및 반환 명령 처분 무효 확인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B 씨는 2021년 10월 강릉시를 상대로 낸 행정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2015년부터 2021년 2월까지 강릉시 공무원으로 일한 B 씨는 2018년 8월 무급 육아 휴직을 했다. B 씨는 “소득이 없다”며 이듬해 4월까지 강릉시에서 생계·주거·의료급여 등으로 1270여만원을 받았다. 그해 8월 원주시로 전입한 뒤 2021년 1월까지 원주시에서 1800여만원을 받았다.

이에 강릉시와 원주시는 “육아 휴직은 자발적 휴직이기 때문에 소득 중단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급여를 반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B 씨는 “자발적 휴직자라는 이유로 휴직 전 소득을 적용해 소득 인정액을 결정한 것은 위법”이라고 맞서며 두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춘천지법은 “지자체가 해당 공무원에게 휴직 전 소득에 의해 근로 소득과 소득 인정액을 산정하는 방법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이나 수급권을 제한하는 것은 위법하다”며 B 씨의 손을 들어줬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