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기술도 ‘디자인·트렌드·정부 지원’ 따라와야 비로소 완성

기아차가 지난해 광저우모터쇼에서 공개한 'EV6'[기아차]
기아차가 지난해 광저우모터쇼에서 공개한 'EV6'[기아차]
한 마케팅 전문가는 자동차·옷·화장품 등 모든 브랜드가 론칭할 때 처음 내보이는 제품은 무조건 사라고 말한다. 그 제품은 브랜드의 명함이나 마찬가지여서 연구·소재·비용·디자인 등에 아낌없이 투자한 역작이다. 정말 잘 만든 제품이라 믿고 살 만하다.

제품이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꼭 기술·기능·스펙 만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뿐만 아니라 제품이 나오는 시기·환경·제약 조건·디자인·시장 특성·소비자 특성도 이를 결정한다. 제품이 최적의 결과를 내려면 기술과 다른 요소들이 최적의 조합으로 컬래버레이션해야 한다.

최고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기술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요소가 모여 다 같이 만들어진다. 기술 외에 다른 요소들이 제품을 가장 효과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술과 다른 요소들이 최적의 조합으로 최상의 효과를 낸 것을 알아보자. 3D보다 시인성 높은 2D 로고
기아는 빨간색 3D 원형이었던 로고와 엠블럼을 단순한 검은색 2D로 교체했다. 닛산 역시 단순한 2D로 엠블럼을 교체했다. 제너럴모터스(GM)는 하늘색 바탕으로 엠블럼을 바꿨고 BMW는 심플한 흰색을 강조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3차원에서 2차원으로,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로고와 엠블럼 디자인을 바꾸고 있다. 양각·음영·입체 문양을 쓰던 로고를 평면으로 단순화하고 있다. 엠블럼은 한 번 바꾸고 나면 자동차 차체뿐만 아니라 광고·명함·언론 홍보에도 다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리소스가 많이 소요돼 쉬운 일이 아니다. 브랜드 이미지와 맞물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예산도 많이 드는 일인데 완성차 업체들이 이 작업을 감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D 로고는 3D보다 시인성이 좋다. 전기차는 내연 기관차에 비해 보닛이 전면을 넓게 덮어 눈에 잘 띄는 로고가 필요하다. 전기차 전면부에 대형 디스플레이가 적용되는데 로고가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패널의 빛이 퍼지지 않는다. 자율 주행에 필요한 레이더 센서는 차량 앞 엠블럼 뒷면에 붙게 되는데 2D 평면에서 레이더 전파가 난반사될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센서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이런 기술적 이유로 2D 엠블럼이 선호되고 있다.

단순하고 부드러운 색을 가진 평면 엠블럼은 전기차의 친환경적이고 깔끔한 이미지를 강조한다. 이런 감성적인 이유도 2D 엠블럼을 대세로 만들고 있다.데이터 제공자로 거듭난 커넥티드카
자동차는 데이터라는 원석을 수집하고 정확한 형태로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미 몇 개 완성 차 업체들이 차 안에 스마트 지갑이라는 전자 지갑을 장착하는 실험을 마친 곳이 있다. 이 스마트 지갑은 주행 도로의 포장 상황, 주변 날씨, 교통 데이터를 수집한 뒤 도로 교통 기반 시설을 관할하는 자치 단체나 관리 업자에게 제공한다. 사고나 정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도로 상태·요철·구멍과 같은 이상을 담은 이 정보는 도로 관리자의 클라우드에 업로드된다. 요긴한 데이터 제공에 대한 보상으로 차의 전자 지갑에는 토큰 (암호화폐)이 들어온다. 전자 지갑에 모인 토큰은 어디에 쓸까. 고속도로 통행료나 주차장, 전기 충전소의 요금을 지불할 때 쓸 수 있다.

커넥티드카는 달리면서 센서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자율 주행을 위해, 편리한 운전을 위해 수집되는 교통 정보다. 이 정보는 커넥티드카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도로·교통 시설 등 사회 기반 시설을 유지·개선하는 사업자들도 이 정보가 필요하다. 그래서 차가 달리면서 자연스럽게 수집하게 된 도로·교통 정보는 이것이 꼭 필요한 사업자에게 매각할 수 있다. 차는 원래 가려던 곳으로 달려가는 김에 동시에 돈도 벌게 된다. 데이터 거래 트렌드에 발맞춰 차는 이동 수단 역할을 넘어 정보 제공자 역할도 하게 돼 가치가 높아진다. 또한 자신이 제공한 데이터를 가지고 만약의 사고와 지연을 방지할 수 있으니 전체 교통 시스템에 기여하는 사회적인 의미도 커진다.

미래 커넥티드카가 구현한 스마트 지갑, 차량 센서와 같은 기술은 자율 주행과 같은 차 본연의 기능에만 쓰려고 국한하면 아깝다. 다른 곳에서도 이 데이터가 필요하다. 어차피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주행 중 쓰는 기능이라면 이 기능은 추가로 돈을 벌어다 주거나 데이터 거래 트렌드를 활성화하거나 교통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역할과 컬래버레이션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시장에서의 가치와 파급력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다.
기술 뒷받침할 정부 지원·지역 환경도 필요해커넥티드카뿐만 아니라 차량 공유 분야에서도 데이터는 생명이다. 차량 공유는 단순히 택시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차량 공유는 최적화된 경로 설정과 실시간 가격 책정 알고리즘이 생명이다. 현재 교통 상황과 이동 시간을 고려해 고객에게 최적화된 경로를 파악하고 교통 수단을 제안하고 가격을 적절히 책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 중 축적된 빅데이터를 보고 싶다고, 활용하고 싶다고 요청하는 다른 서비스들이 여기에도 줄 서 있다. 성별·나이·직업·지역·날짜·시간별로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지에 대한 데이터는 파생시킬 수 있는 관련 시장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개인 신용 데이터를 결제 시스템 구축에 활용할 수 있고 물류 배송 서비스나 O2O에 이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시장 자체가 붐업되면 역으로 차량 공유 서비스의 입지도 높아지고 니즈도 지속된다.

자율 주행차의 핵심은 테스트 주행 거리, 테스트 주행 경험 확보다. 이 양이 많고 기간도 길고 조건도 다양할수록 자율주행에 필요한 다양한 주행 환경 빅데이터가 쌓여 자율 주행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바이두는 자율 주행차 기술 표준 중 하나인 주행 거리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2013년 이후 자율 주행 시뮬레이션 테스트 누적 주행 거리는 10억 km에 달한다. 레벨4 수준 자율 주행 테스트는 1000만 km를 초과했다. 이는 중국 지방 정부들이 자율 주행 도로 테스트를 적극적으로 허가해 주고 최대한 지원해 준 결과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조력이 없었다면 자율 주행 기술 축적과 고도화가 단시간에 이 수준으로 오르기는 어렵다. 2021년 4월 미국 시장 조사 업체 가이드하우스인사이트는 바이두를 2년 연속 글로벌 자율 주행 리더 그룹에 포함시켰다.

자율 주행차와 빅데이터에 대한 다른 예도 살펴보자. 중국 포니닷에이아이는 이미 500만 km가 넘는 주행 데이터를 축적했다. 다양한 지역, 다양한 특징, 다양한 교통 문화를 데이터화해 최적화된 자율 주행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런 다양한 빅데이터 수집·분석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은 도로가 넓고 단순한 고속도로가 길게 쭉 펼쳐져 상대적으로 돌발 상황이 적다. 반면 중국은 도로 상황이 좋지 않고 무단 횡단 등 교통 법규 위반 보행자도 많다. 자율 주행 중 일어날 수 있는 돌발 상황 샘플을 미리 체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중국은 기후도 제각각이다. 스모그가 심한 지역, 비가 많은 지역, 사막 지역 등 특징이 다양하다.

자율 주행차가 대응해야 할 갖가지 험한 샘플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율 주행차는 이를 딥러닝으로 계속 학습하고 이 상황에 대응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처럼 이런 특별한 지역 환경은 자율 주행을 위한 갖가지 빅데이터를 쌓고 수준을 높이는 데 유리한 조력자가 돼 줬다.

정순인 ‘당신이 잊지 못할 강의’ 저자·I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