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더 중요해진 ‘적재적소 인력 채용’…‘숨어 있는 인재 찾기’ 나선 글로벌 기업들

[비즈니스 포커스]
요즘 기업들은 어디서 직원을 뽑을까?....글로벌 기업들 '숨은 인재' 찾기
은퇴 후 조용한 삶을 살던 70세의 벤이 평균 연령 20~30대의 직원들이 일하는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다시 취직했다. 처음에는 사장보다 나이 많은 인턴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지만 그는 점차 오랜 직장 생활에서 묻어 나온 연륜으로 동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2015년 개봉된 영화 ‘인턴’의 줄거리다.

당시만 해도 ‘70세 인턴’이라는 설정은 현실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할 꽤나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70세 인턴’을 만나는 게 낯설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을 중심으로 은퇴자 등 일을 그만뒀던 이들이 다시 업무에 돌아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리턴십(retrun+Internship)’이다.

‘리턴십’ 프로그램은 글로벌 기업들의 달라진 인재 채용 전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인재 확보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들 기업들의 인재 채용 전략에도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회사 떠난 ‘퇴사자’들에 공들이는 이유는

지난 2년간의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업무 방식’과 ‘일에 대한 태도’다. 원격 근무와 관련한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면서 ‘더 좋은 업무 환경’을 찾아 떠나는 자발적 퇴직이 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대퇴직(great resignation)’ 현상이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대퇴직 현상이 ‘퇴직’이 아닌 ‘이직’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이다.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는 업무 환경 속에서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이직’을 선택하기가 훨씬 용이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 ‘구직자 우위’의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니트야 배드야나탄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매니징 디렉터 겸 파트너는 “기술 격차가 커지면서 기업들의 전문 인력 수요가 늘고 있지만 노동자들이 기대하는 것들이 달라지고 있다”며 “글로벌 기업들이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발굴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입 공채 전형’과 같은 기존의 인력 채용 방식으로는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 줄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찾는 데 한계가 클 수밖에 없다.
요즘 기업들은 어디서 직원을 뽑을까?....글로벌 기업들 '숨은 인재' 찾기
‘리턴십’이 대표적이 프로그램이다. 기업의 전 직원이나 혹은 다른 회사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이들을 위한 복직 프로그램인 셈이다. 이미 은퇴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시니어 리턴십 외에 육아 등을 이유로 경력을 그만뒀던 경력 단절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리턴십 프로그램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리턴십 프로그램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곳 중 하나는 세계 최대 투자 은행 ‘골드만삭스’다. 뛰어난 경력을 갖춘 우수한 여성 인력이 직장을 떠나 경력이 단절되고 있다는 데 안타까움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리턴십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골드만삭스의 리턴십 프로그램은 특히 리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실무 경험을 갖춘 고급 인력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는 ‘유워크(U-work)’ 프로그램을 통해 기존 퇴사자들 혹은 현재 재직 중인 직원들에게 프리랜서 형태의 업무를 배당하고 있다. 프리랜서 형태라고 하지만 급여와 복리 후생을 보장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최근에는 실리콘밸리에서도 ‘리턴십’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특히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인력난이 심각해지면서 기업들 간의 뺏고 뺏기는 인재 전쟁을 계속하는 대신 ‘리턴십 프로그램’의 활용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IBM을 시작으로 애플·아마존·구글·메타·넷플릭스·오라클 등 대부분의 테크 기업들이 퇴사 직원들의 업무 복귀를 위한 리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아마존은 2021년 리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10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해 주목받기도 했다.

글로벌 인재 채용 확대, 국경보다 중요해진 ‘타임존’

원격 근무가 원활해진 업무 환경은 기업들에도 우수한 인력을 채용하는 데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기존과 같이 회사의 본사나 오피스가 있는 지역에 거주 중인 인재 풀로만 인재 채용의 기회를 제한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글로벌 테크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역적 제약을 두지 않고 인재가 많은 여러 지역 중 한 곳에 ‘채용 허브’를 열어 두고 이를 활용하는 곳이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인재를 채용할 때 국가나 도시별로 지역적 제한을 두기보다는 동일 ‘시간대(time zone)’별로 올리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기업들이 상당수다. ‘한국, 서울’이라는 지역적 제한보다 ‘아시아, 서울(Asia, Seoul)’ 등의 타임존을 맞추는 것이다. 이를 통해 더 넓은 지역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업무 가능한 새로운 인력을 충원할 수 있다.

전 세계 웹사이트 5개 중 1개는 바로 이곳에서 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의 오토매틱이 대표적인 사례다. 웹페이지를 제작하고 관리하는 콘텐츠 관리 서비스(CMS) 플랫폼인 ‘워드프레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토매틱에 유명한 것이 또 하나 있다. 팬데믹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적용 중인 ‘원격 근무 모델’이다. 현재 96개 국가에서 2000여 명의 직원들이 96개국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15년간 이와 같은 근무 형태에 따라 전 세계의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는 데 상당히 유리했을 뿐만 아니라 팬데믹 이후 이와 같은 강점이 인재 경쟁에 있어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최근에는 점점 더 많은 테크 기업들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협업 툴 플랫폼 슬랙, 글로벌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인 아틀라시안, 클라우드 기반의 고객관계관리(CRM) 플랫폼 세일즈포스, 글로벌 여행 플랫폼 에어비앤비 등이 팬데믹 이후 본격적으로 전 직원들의 ‘언제 어디서나 근무’ 정책을 도입한 기업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새로운 인재를 채용할 때 거주 지역이나 도시를 확인하는 대신 ‘타임존’별로 공고를 내는 방식이 점점 더 보편화되고 있다.

피버(Fiverr), 탑탈(Toptal), 업워크(Upwork)와 같은 프리랜서 채용 플랫폼을 활용하는 경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최근 BCG와 하버드비즈니스 스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미 대부분의 기업들이 프리랜서 플랫폼을 광범위하게 활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기업 리더들 가운데 약 90%가 향후 글로벌 인재 전쟁과 관련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디지털 플랫폼’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타이어 제조 회사 브리지스톤은 프리랜서 소프트웨어 개발자, 디자이너, 재무 전문가, 프로젝트 매니저를 위한 프리랜서 네트워킹 플랫폼 ‘탑탈’과 협업을 맺었다. 이를 통해 정규직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에 전문 기술자를 고용함으로써 전체 업무 공정 자체를 효율화할 수 있었다.
요즘 기업들은 어디서 직원을 뽑을까?....글로벌 기업들 '숨은 인재' 찾기
기업 간의 인력 교류 프로그램을 확대하거나 내부 직원들을 재배치하는 것도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새로운 채용 트렌드 중 하나다. 글로벌 하드디스크 제조 업체인 시게이트테크놀로지는 자사 직원들이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새로운 업무 분야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내부 인재 이동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일종의 ‘사내 경력 발견 플랫폼(career discovery platform)’이다.
반응은 생각보다 폭발적이었다. 시게이트 측에 따르면 프로그램 운영 첫 4개월간 외부 인재를 고용했을 때와 비교해 140만 달러 이상의 비용을 절감한 것은 물론 3만5000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세계 최대 유통 업체 시스코는 팬데믹 초기 슈퍼마켓 체인인 크로거와 인력 공유 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팬데믹으로 인해 일자리가 불안정해진 시스코의 직원들이 크로거의 물류센터에서 임시로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배드야나탄 BCG 파트너는 “팬데믹에 따라 기업들의 인재 관리 방식과 모델이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글로벌 인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인재 채용에서 내부 인재와 외부 인재의 구별을 없애고 인적자원(HR) 부서가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HR과 관련한 기술을 활용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며 “이와 같은 채용 방식의 변화가 인력 채용의 다양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