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의 정년 철학론

[서평]
정년 이후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
아직 긴 인생이 남았습니다
기시미 이치로 지음|전경아 역|한국경제신문|1만6000원



50대의 A 씨는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갔다가 의외의 말을 들었다. 젊은 시절 일밖에 모르던 선배는 퇴직 후 매일 부인과 다투다가 결국 이혼했다고 하고 올해 다니던 회사를 퇴직한 친구는 갑자기 주어진 여유 시간이 마치 징벌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A 씨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년 이후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관계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 그런데 이것은 A 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정년 재취업이나 황혼 이혼 등이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정년 이후가 젊은 시절보다 반드시 불행하다는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정년이 오는 것을 두렵고 힘겹게 느끼는 것은 왜일까. 최장기간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이자 67세의 철학가인 기시미 이치로는 이렇게 말한다. 그 불안은 본질적으로 일로 맺었던 인간관계의 상실에 있다. 그런데 은퇴 준비를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돈과 건강만 떠올린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우리의 삶에서 돈이 관여할 수 있는 문제는 한정적이다. 즉 행복한 정년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돈과 건강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 책에서는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 질문을 던지라고 말한다.

미국의 문학가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는 노년을 황혼이 진 뒤의 하늘에 비유했다. “저녁 황혼이 사라지면 하늘엔 낮에는 보이지 않는 별들로 가득 차게 된다.” 그는 노년을 젊은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본연의 자신을 찾아가는 기회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밤이 오면 일과가 끝났다고 생각해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다. 반면에 밤하늘을 들여다본 사람은 자신을 기다리는 수없이 많은 별(기회)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정년 이후 젊은 시절보다 더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은퇴하고 급격히 늙는 사람도 있다.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책은 전자는 나이 듦을 변화로, 후자는 노화로 받아들인 심리적인 결정의 결과라고 말한다. 과연 마음이 우리 삶이나 건강 문제까지 관여할 수 있을까.

지금을 온전히 살 수 있다면 다가올 노화와 죽음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면서 즐겁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생각보다 멀리까지 와 있음을 깨달을지 모른다. 요컨대 오래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 그건 그저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책 본문 중에서)



언론과 많은 전문가가 ‘당신은 100세까지 살 것’이라고 말한다. 통계상으로도 1990년생이 만 60세가 되는 2050년에는 만 60세가 중간 연령, 즉 중년이 된다고 한다. 이렇듯 많은 사람이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도 기회보다 익숙함에 손을 내민다. 그러므로 정년 이후의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용기다. 나이 듦은 변화이고 변화 속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초로의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정년 이후 당신에게 생각보다 긴 인생이 남았다면 삶을 죽음을 기다리며 허비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회와 본연의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을 만들 것인가.

젊은 시절에는 생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했던 사람도 용기를 낸다면 정년 이후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퇴직 전에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어색했던 사람도 용기를 낸다면 가족과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평생 일터라는 좁은 세계에서 살아가던 사람도 용기를 낸다면 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정년 이후 인간관계에서부터 소속감, 일의 의미와 행복까지…. 이렇듯 이 책은 삶의 주제들에 질문을 던지며 삶의 태도라는 커다란 통찰로 나아간다. 한 발짝만 나아가면 새로운 삶과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속삭이는 이 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최경민 한경BP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