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 인터뷰

[스페셜 리포트]
안주연 마인드맨션 원장[마인드맨션]
안주연 마인드맨션 원장[마인드맨션]
“원인은 사람이 아니라 조직에 있어요.”

마인드맨션의원의 대표원장이자 성균관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인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직장인 금쪽이의 정신 건강 문제를 예방하고 치료해야 할 주된 주체는 직장이고 조직”이라며 “구성원들이 일하는 환경과 조건을 살피고 구성원에게 여러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성장 시대 경쟁 심화 사회에서는 우울증과 스트레스 질환에 접근하는 세 꼭짓점인 생물학적·심리학적·사회학적 측면 중 의사가 해결할 수 없는 사회학적 측면의 해결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정신 질환 병원의 문턱이 낮아졌습니다. 체감하시나요.

“예. 우리 병원을 비롯해 서울에 있는 정신과에 전화해 보면 당장 그 주에 진료 받을 수 있는 병원이 거의 없어요. 예약이 꽉 차 있죠. 흔히 ‘21세기는 심리학의 시대’라고 할 만큼 대중이 심리에 관심이 많아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이를 주도하죠. 정신 건강에 관심도 많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소비해요. ‘힘을 내’라는 위로 대신에 ‘병원에 가도 괜찮아, 이상한 거 아니야’라고 말해 주는 세대죠. 학교에서 상담을 경험한 세대(전문상담교사 제도)니까 익숙한 거예요. 예컨대 한국에서 MBTI가 유행하는 이유도 기본적으로 심리학 지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내향적’, ‘외향적’이 어떤 의미인지 바로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죠. 이런 분위기가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저변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봐요.”

-현대인의 정신 건강에 희소식 같습니다.

“문턱이 낮아졌다는 것은 정신 건강적으로 굉장히 좋은 일이에요. 그럼에도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상위권이에요. 왜일까요. 우울증과 스트레스 질환에 접근하는 세 가지 꼭짓점에는 생물학적·심리학적·사회학적 측면이 있어요.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기질이나 성향, 성장 과정에서 생긴 문제, 사회에서 오는 내·외부적 압박으로 인해 생긴 문제 등 세 가지 측면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우울증과 같은 질병이 생기죠. 생물학적 요인은 신체적 문제이기 때문에 약을 처방하고 심리적인 부분은 상담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회학적 요인은 의사의 권한 밖이에요. 그러다 보니 잘 낫지가 않아요. 신체적 문제와 심리적 문제가 해결돼도 ‘졸업’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우리를 둘러싼 사회가 너무 가혹하니까 다른 요인이 개선돼도 사회학적 요인이 크게 작동해 질병이 낫지 않는 어려움이 따르는 것 같아요.”

-사회학적 요인의 가장 큰 부분은 무엇인가요.

“201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번아웃 증후군’이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저성장 시대 경쟁 심화로 개인이 시스템을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계속 소진하는 번아웃 상태가 오게 된 거죠. 번아웃 증후군은 주로 직무와 관련된 상황을 가리키는데, 직업 또는 학업과 관련해 굉장한 소진과 냉소, 효능감 저하 등을 느끼는 경우예요. 그런데 한국은 저성장 시대 경쟁 심화에 플러스알파로 문화적인 요인이 더해져요. 물리적인 업무 시간으로만 봐도 세계 순위권이잖아요. 일의 절대량이 많고 책임감도 강해요. 집단에 폐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도 있고 권위적인 서열 문화도 존재해요. 집단 내에서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죠. 실제 정신과를 찾는 고객을 보면 MZ세대인 2030대, 그중에서도 여성의 비율이 높은 편이에요.”

-회사에 알려질까봐 걱정하거나 피해를 걱정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도시 괴담’ 같아요. 개인 정보가 잘 보호되지 않았던 30~40년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본인이 말하지 않는 이상 (가족이나 회사 등 제삼자가) 진료 기록을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어요. 본인이 아니면 보험 지급 기록이나 진료 기록 자체를 확인할 길이 없어요. 기록은 다시 말하면 ‘차트’예요. 이 차트는 두 곳에 남아요. 내원한 병원과 건강보험공단이죠.

둘째는 진료비를 건강보험으로 처리했을 때 건강보험공단에서 병원에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한 행정기록이 남습니다. 예컨데 우울증이 포함된 F32 코드로 보험진료를 받으면 환자는 진료비의 20%만 부담하고 나머지 비용은 병의원의 청구를 통해 건보공단이 병원에 지급하는데 이 지급기록입니다.

-직장인이 겪는 정신 질환을 ‘우울증’으로 통칭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아요. 질병은 다양하고 치료법도 다 다릅니다. 직장 문제로 찾는 이들은 우울증이 가장 많아요. 우울증·조울증 등은 ‘기분 장애’에 속합니다. 그다음 ‘불안 장애’가 있는데 여기에 스트레스 장애, 공황 장애 등이 속합니다. 번아웃 증후군은 이러한 질병분류체계에 속한 질환은 아니고, 직장스트레스가 잘 조절되지 못해 발생한 정서적 소진과 피로, 무기력, 신체적 증상 등이 포함된 증후군(여러 증상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공황 장애 스트레스 장애 등 질병은 진단 기준이 있고 치료법도 다 다릅니다. 번아웃 증후군은 질병은 아니지만 질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염두에 두고 치료합니다.”

-가장 흔한 질병은 무엇인가요.

“우울증·공황 장애 번아웃 증후군이 직장인에게 제일 흔한 것 같아요. 직장인 정신건강검진 등의 결과를 보면 수면장애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불면증이 흔하고 몽유병이라고도 불리는 렘수면 행동장애, 코골이라고 하는 수면 중 무호흡 장애도 많아요.

수면 장애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스트레스도 작용합니다. 교대근무·야간근무 등 직무의 특성으로 악화하는 경우도 있죠. 또한 알코올 의존증도 흔합니다. 접대 문화가 있는 직종이나 회식이 많은 곳이라면 악화할 수 있어요. 도박과 게임 중독도 유사한 문제라고 볼 수 있죠. 야식 증후군(저녁 7시 이후의 식사량이 하루 전체 섭취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며 불면증을 동반하는 증상)도 있어요. 이 역시 스트레스에 대한 비정상적인 반응으로 우울함과 불안함, 자신감 상실 등의 심리적·정신적 문제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신과 하면 '마음', '정신'만 생각하기 쉽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성 신체질환, 그리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모든 삶의 질이 정신건강의 영역에 해당합니다.”

-직장인 ‘금쪽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금쪽이’의 변화보다는 회사가 바뀌어야 해요. 구글에서 창의적인 팀을 위한 다섯 가지 조건을 연구했는데 첫째가 ‘심리적 안전’이었어요. 창의성과 생산성에 바탕이 된다는 연구도 많이 나와 있죠. 회사의 번영과 성장을 위해서라도 회사와 지도자(리더)가 직원의 정신 건강 문제를 돌봐야 하는 시대가 됐어요. 직원이 이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상의하고 도울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알려져도 불이익이 없다는 사실이 심리적 안전을 돕기 때문이에요.”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우울증·공황 장애·수면 장애 등이 반드시 직장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개인에 따라 직장 문제로 인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도 있고 좋아질 수도 있죠. 아무리 멘탈이 튼튼한 인재를 선발한다고 해도 번아웃을 근본적으로 막기는 힘듭니다. 구성원들이 일하는 환경과 조건을 살피고 데이터를 꼼꼼히 검토해야 합니다. 그들이 회사에서 어떤 일에 좌절감을 느끼고 어떤 경우에 동기 부여가 되는지 질문하고 답을 파악하면 좋겠어요. 업무 환경에 대한 리더의 정확한 인지와 개선 의지는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직장에서 보냅니다. 리더의 숙고와 소통이 여러분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훨씬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업의 명상센터 도입 등은 바람직한가요.

“중요한 직원 복지예요. 그런데 직원의 우울증·공황 장애·번아웃 증후군의 완전한 해법이 되기는 어려워요. ‘빨간 약 발라 주기’에 그치죠. 더 중요한 것은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겁니다. 심리적 안전이 가장 중요하고 이후에는 시스템을 개선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이를테면 충분한 보상, 공정한 결과와 같은 제도 개선이죠.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의사 결정권이 없다는 사실에도 피로감을 느낄 수 있어요. 자기가 맡은 직무에 한해 독립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이 일부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동시에 성과를 인정받고 그에 따른 보상도 누릴 수 있어요. 그러면 아무리 힘들고 피로해도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죠. 근무 강도에 따른 충분한 급여와 보상이 주어지는 일도 중요해요. 사실 심리 상담을 받거나 전문의를 찾거나 명상을 하는 일 모두 사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보상이 충분하다면 회사 밖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죠. 회사만이 할 수 있는 시스템 개선이 사회학적 요인을 제거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작업이에요.”

-MBTI로 직무를 구분하면 정신 질환 문제에 도움이 될까요.

“하지만 MBTI는 심리적으로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분류법입니다. 어떤 사람의 타인과 대비되는 특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죠. MBTI별로 조직을 묶으면 오히려 악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상호간에 보완되지 않고 같은 극끼리 묶었기 때문에 편향되거나 갈등이 생길 수도 있죠. 다만 구성원 간 어떤 강점과 약점이 있고 소통 방식은 어떤지를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꼭 MBTI의 방식이 아니어도 돼요.”

-병원에는 언제, 어떤 기준으로 찾아가야 하나요.

“보통은 이겨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병원에 가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해요. 간단하게 말하면, 본인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다면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야 해요. 정신적 고통이 크고 신체적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죠. 잠이 오지 않고 소화가 안 되고 신체적으로 전과 같지 않은 문제들이 생겨요. 회사에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죠. 길면 6개월, 짧으면 3개월의 기간인데 이때가 병원을 찾아야 하는 ‘골든타임’이에요. 이때는 대기가 긴 병원에 진료를 접수하기보다 되도록 빠르게 처방할 수 있는 곳을 가야 해요. 반면 이보다는 좀 나아졌다면 이때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해도 안전한 기분이 드는 주치의나 상담자를 찾아 꾸준히 치료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장인 ‘금쪽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다소 뻔해도 효과가 좋은 것은 자연과의 접촉이에요. 정신적으로 지쳤을 때 자연을 찾아가 감각을 일깨우는 일은 매우 중요해요. 시각·청각·촉각 등 오감을 느끼면 생명력을 다시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거든요. 저는 ‘오감산책’이라고 불러요. 자연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서 오감을 느껴도 됩니다. 물론 급한 불을 끈 이후의 얘기예요. 무기력 상태가 심하다면 얘기가 달라지죠. 걷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뛰라는 것과 같으니까요. 밖에 나갈 에너지가 없다면 그때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해야 해요.”
직장인 ‘금쪽이’ 유형별 대처법직장인 ‘금쪽이’들은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까. 이에 대한 해결책은 또 없을까. 안주연 정신의학과 전문의에게 직장인 ‘금쪽이’ 유형별 대처법을 물어봤다.
“출근하기 싫은 직장인 금쪽이, 문제는 조직이야”[직장인 금쪽이②]
Q. 모든 배터리가 방전된 것만 같아요.(번아웃 증후군)

A. 번아웃 위기에 처했을 때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보다 우리 부서, 우리 회사, 또는 우리 업계가 바뀌어야 합니다.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 취약해서가 아니라 ‘과로를 권하는 사회’와 가시적인 효율만 강조하는 기업에 있다는 비판적인 문제의식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건강과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챙겨야 합니다. 때로는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직장을 포기하거나 직종 자체를 바꾸고 이직하거나 관계를 끊어 내는 등의 어려운 결정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몸을 쉬게 하고 완벽해지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Q. OO님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숨이 막혀요.(상사·인간관계 갈등 스트레스)

A. 어렵게 들리겠지만 ‘호소’를 하느냐, 안 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회사 내 도움을 청하거나 호소할 곳이 있다면 능동성을 찾을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 ‘당하다’ 보면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무력감은 곧 자신감을 결여시키고 상처를 남기죠. 호소한다면 어떤 해결책이 마련될 수도 있고 하다못해 보상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러한 과정에서 능동성을 찾을 수 있죠. 직장과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느끼는 대로,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됩니다.
이야기할 수 없는 구조라면 사건에서 빠르게 분리돼야 합니다. 정말 지쳤다면 일단 자신이 살아야 하니까요. 자신의 건강과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챙기길 바랍니다. 한국의 직장 문화에서 회사나 상사에게 불만을 표출하거나 시정을 요구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개개인의 문제의식이 모여 직장 분위기가 바뀌고 결국은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Q. 차라리 코로나19에 걸렸으면 좋겠어요. 회사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요.(재택근무 후 회사 복귀 스트레스)

A.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본인이 가능한 선보다 더 많은 사회적 소통을 요구 받은 이라면 재택근무 후 회사 복귀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내향형이라면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예컨대 A 씨의 사회적 소통의 한계가 30%라고 생각한다면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를 할 동안에는 딱 필요한 소통만 하다 보니 가능한 선에서 사회적 소통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사 복귀 시 30%를 넘는 사회적 소통을 해야 하니 극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됩니다. 또한 회사는 ‘심기 노동’이 필요합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심기에 맞춰야 하죠. 신입이나 하위직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소통과 협조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일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