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전 회장, 개인 회사 위해 계열사 이용·3300억원 횡령 등으로 징역 10년 선고

[법알못 판례 읽기]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하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진=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하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진=연합뉴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이 계열사들의 자금을 우회적으로 동원해 그룹 지주회사를 인수한 혐의 등으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한때 금호그룹을 재계 순위 7위까지 끌어올렸던 경영인이지만 각종 불법 행위로 중형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계열사 돈 빼 그룹 되찾기 시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4부(조용래 부장판사)는 2022년 8월 17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공정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 전 회장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2021년 11월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 왔던 박 전 회장은 이날 실형 선고로 보석이 취소돼 법정에서 다시 구속됐다. 박 전 회장과 함께 기소됐던 전직 금호아시아나그룹 임원 3명도 징역 3~5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금호산업 법인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벌금 2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박 전 회장이 금호아시아나그룹 재건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보유 중인 금호산업 지분 46%를 매각하고자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2006년)과 대한통운(2008년)을 인수하기 위해 과도하게 외부 자금을 끌어왔다가 유동성 위기에 빠져 2010년 채권단과 워크아웃 협약을 체결했다.

대규모 자금을 빌려줬던 채권단이 출자 전환을 거쳐 금호산업의 최대 주주가 됐고 박 전 회장은 100 대 1 감자 조치로 경영권을 잃었다.

박 전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되찾기 위해 우선 매수권을 행사해 금호산업 인수전에 뛰어들기로 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자금력이 바닥난 박 전 회장이 채권단의 인정을 받을 만한 인수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최대 과제였다. 이미 채권단은 박 전 회장에게 “그룹 계열사 자금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뜻을 전달했던 터였다.

박 전 회장은 금호그룹 계열사들이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자금 조달 계획을 짰다. 일단 5000만원을 출자해 금호기업이라는 개인 회사를 만든 뒤 금호기업이 NH투자증권에서 3300억원을 빌린다는 약정을 맺었다.

그 후 이 대출 채권을 기초 자산으로 한 유동화 상품인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이 ABCP를 인수한 투자자가 바로 금호그룹 계열사들이었다. 그룹 계열사들의 자금이 복잡한 구조를 거쳐 박 전 회장에게 흘러 들어간 셈이다. 이 같은 구조를 숨긴 채 박 전 회장은 2015년 말 금호산업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검찰은 이 같은 행위를 사익을 위해 계열사들의 자금을 빼낸 횡령으로 보고 2021년 5월 박 전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1심 재판부도 검찰과 같은 판단을 내리며 이와 관련한 공소 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개인 회사를 위해 계열사를 이용하는 것은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손실이 다른 계열사로 전가되고 국민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등 파급력이 크다”며 “금호그룹이 4조8000억원의 공적 자금을 지원받는 동안 박 전 회장 등은 무리한 차입 등으로 그룹 전체의 위기를 불렀다”고 밝혔다.

기내식 사업권 헐값 매각 등도 유죄

박 전 회장은 2016년 4월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하던 금호터미널을 금호기업에 헐값 매각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금호기업의 금호터미널 인수 가격은 2700억원으로 시장 예상치인 5700억~5900억원에 한참 못 미쳤다.

아시아나항공이 채권단과 체결한 재무 개선 약정을 지키기 위해 대규모 구조 조정을 진행 중임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가격이란 평가가 잇따랐다. 이때 박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대표이기도 했다. 금호기업은 인수 이후 금호터미널을 합병해 금호터미널이 보유했던 현금으로 차입금까지 갚으며 저가 인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박 전 회장은 2016년 말 스위스 게이트그룹에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독점 사업권을 1333억원에 팔고 그 대가로 금호기업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 1600억원치를 게이트그룹이 무이자로 사들이도록 거래한 것에 대해서도 유죄(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판결을 받았다.

박 전 회장은 게이트그룹에 기내식 사업을 통해 30년간 순이익을 낼 수 있도록 보장해 줬다는 내용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아시아나항공 측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아시아나항공은 2022년 1월 게이트그룹을 상대로 기내식 공급 계약이 무효임을 확인해 달라는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 등 해당 거래를 두고 본격적인 분쟁에 돌입한 상태다. 이 밖에 금호기업이 2016~2017년 아시아나항공 등 금호그룹 계열사 9곳에서 1306억원을 담보 없이 저금리에 빌린 거래도 유죄(공정거래법 위반)로 인정됐다.
2018년 7월 4일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기자회견에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2018년 7월 4일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기자회견에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돋보기] ‘승자의 저주’, 재기하지 못하고 결국 해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전 회장의 끈질긴 재건 시도에도 결국 부활하지 못한 채 공중 분해됐다. 무리한 인수·합병(M&A) 전략이 그룹의 몰락을 가져 온 ‘승자의 저주’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남게 됐다.

금호그룹의 비극은 2006년 대우건설 인수에 뛰어들면서 시작됐다. 6조4255억원에 달하는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호 계열사들은 금융권에서 대거 자금을 빌렸다. 빅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금호그룹은 2년 후인 2008년 4조1040억원을 투입해 대한통운을 사들였다. 이 거래 역시 막대한 외부 차입을 바탕으로 성사시켰다.

금호그룹은 대규모 M&A 두 건으로 단숨에 재계 순위 7위까지 올라섰지만 영광은 짧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이 나빠지면서 금호그룹은 순식간에 유동성 위기를 맞는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2009년 대우건설을 되팔았음에도 상황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금호그룹은 2010년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과 워크아웃 협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산업과 주요 계열사 중 하나인 금호타이어의 경영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갔다.

채권단의 관리하에서도 금호그룹의 시련은 이어졌다. 재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금호고속·금호렌터카·금호생명 등 계열사들을 줄줄이 매각했다. 대한통운마저 인수한 지 3년 만에 재매각했다. 그룹의 위기를 불러오면서까지 인수했던 기업 두 곳을 잠시 거느리기만 하다가 떠나 보낸 셈이다.

박 전 회장은 2015년 채권단이 매물로 내놓은 금호산업 지분을 사들여 5년 만에 다시 금호그룹의 경영권을 갖게 됐다. 하지만 옛 영광을 재현시키지는 못했다. 박 전 회장은 채권단이 보유하던 금호타이어를 되찾으려고 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끝내 인수를 포기했다. 금호그룹에 돌아가지 못한 금호타이어는 6500억원에 중국 더블스타에 인수됐다.

금호그룹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상징이나 다름없는 아시아나항공마저 잃어 버렸다. 장기간 경영난을 겪던 아시아나항공은 2019년 3월 외부 감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한정’ 의견을 받으면서 자본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박 전 회장은 결국 그해 7월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선언했다. 당초 인수 우선 협상 대상자였던 HDC현대산업개발이 거래 막판에 포기했지만 한진그룹이 새 주인이 되겠다며 뛰어들어 인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호그룹은 2020년 말 그룹 해체를 선언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 집단 지정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