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 찬스’ 옛말…리오프닝 수혜 기대한 면세점, 환율 고공 행진에 가격 메리트 사라져 ‘울상’

[비즈니스 포커스]
김포~하네다 노선의 운항을 재개한 2022년 6월 29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에서 승객이 면세점을 이용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김포~하네다 노선의 운항을 재개한 2022년 6월 29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에서 승객이 면세점을 이용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최대 수혜주로 꼽혔던 면세점이 환율 고공 행진에 울상을 짓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3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으면서 면세점의 가격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면세점 가격이 백화점과 온라인몰의 판매 가격과 차이가 거의 없거나 일부 품목에선 면세점 판매 가격이 백화점 판매 가격을 넘어서는 가격 역전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2022년 8월 24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340원을 돌파했다. 환율이 1340원을 넘어선 것은 2009년 금융 위기 이후 처음이다. 2022년 6월부터 국제선 운항 규제가 모두 해제된 이후 여름 휴가철을 맞아 면세점 이용객들이 늘어나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던 면세점들이 고환율로 한숨을 내쉬고 있다.

면세점은 여행자에게 부과되는 세금(소비세·주세·수입품의 관세 등)을 면제해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시중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환율이 높아지며 면세점의 가격 메리트가 떨어지면서 사람들은 백화점이나 온라인 쇼핑몰로 향하고 있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을 다녀온 김 모 씨는 지인들의 선물로 핸드크림을 사기 위해 시내 면세점에 들렀다가 백화점보다 비싼 가격에 발길을 돌렸다. 김 씨는 “예전엔 면세점에서 하나라도 더 사야 이득을 보는 것 같았는데 환율이 너무 올라 결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선물용 핸드크림을 구매했다”며 “면세점보다 2만원 정도 싸게 샀다”고 말했다.

해외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행을 앞두고 오프라인 면세점에서 명품 선글라스를 샀다가 세금 폭탄을 맞고 왔다”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한 이용자는 “물가가 오른데다 환율까지 올라 ‘면세 찬스(면세점 쇼핑)’를 포기했다”며 “스마트폰으로 면세점 판매 가격과 백화점 매장 가격을 비교해 보고 구매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빅3, 생존을 위한 ‘재고떨이’ 총력전

국제선 항공기 운항 규제 해제, 해외여행 자가 격리 면제 등 해외 출입국 관련 규제 완화로 실적 회복 기대감이 감돌았던 면세점의 매출 회복은 고환율·고물가 암초를 만나 더디기만 하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 한국 면세점 매출은 1조4615억원으로 한 달 전인 5월(1조4535억원)보다 0.5% 증가에 그쳤다. 그동안 면세점업계의 큰손이었던 중국인 다이궁(보따리상)들은 ‘계륵’과 같은 존재다. 다이궁을 유치하기 위한 알선 수수료가 폭등하면서 면세점들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업계는 다이궁 의존도에서 탈피하기 위해 동남아 단체 관광을 잇달아 유치하며 외국인 개별 관광객으로 다변화를 꾀했지만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상황이다. 결국 객단가(1인당 구매 금액)가 높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 방문이 재개돼야 면세점 매출이 예전 수준을 회복할 수 있는데 중국의 봉쇄 조치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한국 면세점 빅3의 올해 상반기 성적표는 엇갈렸다. 신세계면세점은 올해 상반기에만 매출 1조3737억원, 영업이익 480억원을 올렸다. 신라면세점은 매출 1조9886억원, 영업이익 275억원을 기록했다. 롯데면세점은 2조4511억원의 매출을 올려 매출 규모로는 1위였지만 892억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실적을 가른 것은 재고 관리였다. 면세점들은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면세점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그동안 사들인 상품을 다 팔지 못했다. 면세점은 상품을 직매입해 판매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재고 중 유행이 지나거나 유통 기한이 짧은 상품들은 손실 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 떨어내지 못한 재고는 재무제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올해 상반기 기준 3사가 보유한 재고 자산은 신세계면세점 3594억원, 신라면세점 6199억원, 롯데면세점 7299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올해 3월 해외 거주 외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국 면세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할 수 있는 ‘온라인 면세 역직구’를 7월부터 허용하면서 면세점들도 역직구몰을 열고 중국을 포함해 일본·미국 등 9개국 고객을 대상으로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신세계면세점은 온라인 쇼핑몰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재고 상품을 할인 판매하며 재고를 상당 부분 정리했다.
서울의 한 면세점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내외국인.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면세점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내외국인.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반사이익, 제주 면세점은 매출 고공 행진

제주 지역 면세점들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로 제주를 찾는 내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제주지역 면세점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제주관광공사(JTO) 지정 면세점 매출 현황을 보면 모두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JDC 제주공항 지정 면세점은 올해 상반기 매출액이 3519억4900만원으로, 지난해 상반기(2943억2100만원)보다 19.6%(576억2800만원) 늘었다. JDC 면세점은 2002년 12월 개점 이후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액 6000억원을 넘어섰다.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도 제주 지역 면세점 호황에 큰 몫을 했다. 해외로 나가지 못한 내국인들이 제주에 몰렸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제주를 방문한 관광객은 684만1854명으로, 지난해 상반기 551만3290명보다 24.1% 증가했다. 가장 많이 팔린 품목은 주류다. 매출 상위권 10개 품목 중 7개가 주류였다. 가장 많이 팔린 것은 위스키 발렌타인 30년산(129억2580만원)이다. 이어 조니워커 블루(74억148만원), 발렌타인 21년산(62억8710만원), 로얄살루트 21년산(51억7080만원) 순이다.

정부는 기대보다 회복이 더딘 관광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8년 만에 내국인 면세 한도를 현행 600달러에서 80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면세점 매출에서 내국인 매출 비율이 전체의 약 10%에 불과해 면세 한도 상향이 하반기 실적 개선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면세점업계는 고환율에 따른 고객의 쇼핑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자구책 마련에 사활을 걸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환율 보상 행사로 매장 기준 환율이 1300원을 초과하면 3만5000원 상당의 LDF페이를 지급했고 신라면세점은 서울점에서 휴가비 지원 행사를 열고 700달러 이상 구매하면 3만 포인트를, 1500달러 이상 구매하면 5만 포인트를 지급하는 혜택을 제공한 바 있다.

포인트 지급과 적립금, 페이백 정책이 장기화하면 결국 면세점업계의 제 살 깎아 먹기가 될 수밖에 없다. 면세점 관계자는 “고환율·고물가로 위축된 소비 심리를 되살리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 상승분을 보전해 주고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객단가가 높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 방문이 재개돼야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의 매출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