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 스터디 – SK임업

[ESG 리뷰]
산림의 탄소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표준지 조사'가 있다. 표준지를 지정해 나무의 탄소 잠재량을 측정하고, 이를 산출식에 넣어 전체 산림의 탄소량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슴 높이에서 나무의 두께, 즉 ‘흉고직경’과 나무의 높이, 지형 정보 등을 측정한다.  / 이승재 기자
산림의 탄소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표준지 조사'가 있다. 표준지를 지정해 나무의 탄소 잠재량을 측정하고, 이를 산출식에 넣어 전체 산림의 탄소량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슴 높이에서 나무의 두께, 즉 ‘흉고직경’과 나무의 높이, 지형 정보 등을 측정한다. / 이승재 기자
서울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을 달려 충주 인등산의 ‘SK 수펙스센터’에 도착했다. 인등산은 SK그룹의 철학이 깃든 곳이자 SK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의 발원지다.

1972년 최종현 SK 선대 회장은 민둥산이던 인등산에 나무를 심고 SK임업(서해개발)을 설립해 한국 최초의 기업형 조림 사업을 시작했다. 인등산을 비롯해 천안 광덕산, 영동 시항산 등 4500ha의 황무지는 약 400만 그루가 자라는 울창한 숲으로 거듭났다. 나무를 통해 얻은 수익은 장학퀴즈와 한국고등교육재단을 후원하는 데 쓰였다. 성웅범 SK임업 인등산 수펙스센터 소장은 “‘인재를 심듯 나무를 심고 나무를 키워 인재를 키운다’는 산림과 인재 양성 철학이 ESG 경영의 뿌리가 돼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2007년 개원한 SK 수펙스센터는 친환경 목재 건물로 지은 것이 특징이다. 산속에 자리한 건축물인 만큼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도록 건물을 땅에서 띄운 필로티 구조로 지었고 산보다 건물이 도드라지지 않도록 능선을 따라 SK그룹의 ‘행복 날개’ 모양으로 줄지어 들어섰다. 전시관·연수시설·숙박시설 등으로 이뤄져 SK그룹 임직원의 교육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SK 수펙스센터는 ‘그린 포레스트 파빌리온’을 새롭게 열었다. 넷 제로(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 경영 로드맵을 담은 디지털 전시관이다. SK그룹은 2030년까지 전 세계 탄소 감축 목표량인 210억 톤의 1%인 2억 톤을 줄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린 포레스트 파빌리온은 올해 초 열린 ‘세계 가전 전시회(CES) 2022’에서 선보인 전시물을 옮겨온 것으로, 인등산과 자작나무 숲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직접 찾은 전시관에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상징하는 ‘생명의 나무’가 그린 포레스트 파빌리온 중앙에 자리해 있었다. 나무를 중심으로 4면에 설치된 초대형 스크린에서는 총 9가지 여정을 주제로 SK의 넷 제로 달성 방법론이 디지털로 펼쳐진다.

넷 제로로 향하는 9가지 방법론 중 하나가 ‘탄소 없는 사회 생태계’다. 조림·청정개발체제(CDM) 사업, 맹그로브 숲 복원 등을 통해 650만 톤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제는 산림 탄소 시대

한국 유일의 대기업 임업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SK임업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2012년 최태원 SK 회장은 SK건설(현 SK에코플랜트) 산하에 있던 SK임업을 지주회사인 SK(주)에 편입시켰다. 최근 SK그룹의 계열사들이 ESG 경영 시대에 맞춰 사명을 변경하고 있지만 최 선대 회장이 설립한 SK임업은 아직까지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임업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SK임업은 새로운 50년을 바라보는 비즈니스 전환을 하고 있다. 바로 ‘산림탄소’ 사업이다. 주로 조경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해 온 SK임업은 점차 조림 사업을 진화·발전시키고 있다. 산림 탄소 사업은 숲이 흡수한 온실가스를 측정해 탄소 배출권을 인정받는 사업이다.

해발 400m, 인등산 전망대까지는 차로 이동했다. 산림 부근에는 3m 이상 폭의 도로가 있는 게 특징이다. 작업 차량이 다닐 수 있고 또 혹시 산불이 나도 소방차가 진입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SK임업도 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부터가 자작나무 조림지입니다.” SK임업 관계자가 가리킨 곳에는 반듯하게 심은 자작나무가 가득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낙엽송을 비롯한 침엽수다. 1970년대 치산녹화 계획에서는 빨리 자라는 나무를 주로 심어 침엽수 위주의 녹화를 조성했다. 그런데 인등산은 활엽수 위주로 조림했다. 침엽수는 가공 효과가 떨어져 용재 가치를 고려해 활엽수를 주목한 것이다. 특히 주요 수종으로 자작나무와 가래나무를 선택했다.

이 두 나무는 독특한 수종으로 꼽힌다. 실용목으로 분류돼 과거 국가가 나서 대규모 식재를 하지 않았다.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기술 개발을 위한 국가 통계 자료를 만들 때 자작나무와 가래나무는 SK임업 임야에서 조사한 결과를 반영했다. 이 두 수종의 조림 지역을 확보함으로써 생태 형태가 유사한 총 10여 개 수종에 대해서도 국가 통계에 반영할 수 있었다.

SK임업이 보유한 임야는 여의도 면적의 약 13배에 해당하는 4500ha 규모다. 주로 목재용이나 관상용으로 쓰던 이 거대한 숲은 이제 탄소 저장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산림은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인정하는 ‘과학 기반’의 ‘유익한’ 탄소 흡수원이다. 나무가 자라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면서 ‘탄소 네거티브’가 가능한 흡수원 역할을 한다.

최근 기업들의 넷 제로 선언 이행을 위한 수단으로 ‘상쇄 감축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 그린 수소,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활용 등의 감축 기술을 아직 상용화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산림 탄소를 이용해 글로벌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
산림의 탄소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표준지 조사'가 있다. 표준지를 지정해 나무의 탄소 잠재량을 측정하고, 이를 산출식에 넣어 전체 산림의 탄소량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슴 높이에서 나무의 두께, 즉 ‘흉고직경’과 나무의 높이, 지형 정보 등을 측정한다.  / 이승재 기자
산림의 탄소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표준지 조사'가 있다. 표준지를 지정해 나무의 탄소 잠재량을 측정하고, 이를 산출식에 넣어 전체 산림의 탄소량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슴 높이에서 나무의 두께, 즉 ‘흉고직경’과 나무의 높이, 지형 정보 등을 측정한다. / 이승재 기자
자발적 탄소 시장 겨냥한다

SK임업이 탄소 크레디트 시장에 처음 뛰어든 것은 2012년이다. 한국을 대상으로 소규모 신규 조림과 재조림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등록하는 데 성공하며 현재 조림 기반 탄소 배출권을 개발·확보한 한국 유일의 기업이 됐다.

강원도 고성 지역의 국유림(75ha)에서 지역 주민의 니즈를 반영해 잣나무·낙엽송·자작나무 등 3종을 선택, 총 25만 그루를 식재한 사업이다. 탄소 흡수량만 보면 다른 수종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수목이 성장하면 주민들이 잣이나 자작나무 수액을 확보함으로써 경제적 소득원을 창출하도록 사업 모델을 구축한 것이다. 또 생태학적으로도 단일 수종보다 여러 수목을 섞어 심을 때 생물 다양성 보존 효과를 누린다. 고성에서의 신규 조림·재조림 청정개발체제(AR CDM) 사업을 통해 20년간(2012~2032년) 총 1만2415.8tCO₂eq, 연간 621tCO₂eq의 탄소 배출권을 획득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성 사업을 통해 탄소 배출권 사업에 자신감을 얻은 SK임업은 최근 ESG가 부상하면서 새로운 수익원으로 산림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의 산림에 대해서는 ‘산림탄소상쇄제도’를 통해 탄소를 자산으로 바꾸는 데 역량을 모으고 있다. 산림탄소상쇄제도는 기업·산주·지방자치단체 등이 자발적으로 탄소 흡수원 유지·증진 활동을 하고 이를 통해 확보하는 산림 탄소 흡수량을 정부가 인증해 주는 제도다. 여기서 얻은 탄소 크레디트는 자발적 탄소 시장을 통해 거래할 수 있다.

SK임업은 2017년부터 한국 보유의 임야를 산림탄소상쇄제도로 등록, 자발적 탄소 배출권을 확보하는 근간을 마련했다. 이 사업을 통해 향후 30년간 매년 3만7000tCO₂가 상쇄될 것으로 회사 측은 예측하고 있다. 이는 매년 1만5000km를 주행하는 승용차 약 2만 대가 배출하는 탄소량에 해당한다.

또 직접 보유하지 않아도 한국의 공·사유림 대리 경영을 통해 탄소 배출권 협력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산림은 약 625만ha로, 이 중 국가가 소유하지 않은 사유림은 415만ha, 전체의 약 66%에 해당한다. 국가가 집약적 산림 관리를 통해 그동안 꾸준히 산을 가꾸고 있었음에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서는 좀 더 집약적 관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현재 약 37%에 머물러 있는 사유림의 산림 경영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방치된 산을 산림 경영을 통해 탄소 배출권 확보까지 돕는 것도 SK임업의 역할이다.

SK임업 관계자는 “산림청·산림조합·산주인연합회 등과 연대하는 기틀을 구성해 이를 기업의 전문 수익을 공유하도록 구조화하고 있다”며 “단순 경제적 가치를 넘어선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기업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경영 마인드가 투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소규모 산주들도 손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탄소 플랫폼’을 통해 2030년 기준 약 73만ha 이상 한국의 공·사유림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해외 REDD+ 사업도 개척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산림 탄소를 적극 개발하고 나섰다. 해외 사업은 주로 레드플러스(REDD+, 산림 전용 및 황폐화 방지 사업)로 진행하고 있다.

산림은 흡수원이지만 잘 가꾼 산림을 훼손하고 산지가 아닌 농지 등으로 전환한다면 흡수하던 탄소를 배출하면서 배출원이 되기도 한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산림을 보호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산림 훼손이 많이 일어나는 개발도상국에서 REDD+ 개념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개발도상국의 산림 보호 노력에 대해 재정적으로 보상해 주는 메커니즘이 등장한 것이다.

SK임업은 REDD+ 사업 직접 개발을 통해 2030년 기준 탄소 배출권 1600만 톤 이상을 확보하고 동남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와 중남미까지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올 상반기 베트남과 필리핀 등에서 REDD+ 사업을 직접 개발, 사업 타당성 조사를 착수·완료했다.

SK임업의 REDD+ 사업은 ‘복합 모델 사업’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 기반 솔루션’을 통해 탄소뿐만 아니라 물과 에너지 등 종합적 생물 다양성을 고려해 주민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개발하는 것이다. 현재 동티모르에서 추진 중인 REDD+ 사업은 동티모르 농수산부와 협력해 ‘산림+물+에너지’ 복합 모델 사업 개발을 논의하고 있다.

이렇게 국내외에서 획득한 탄소 배출권을 거래하기 위한 플랫폼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임업은 올 하반기 중 탄소 거래 플랫폼을 오픈할 예정이다. SK임업은 글로벌 인증을 통해 신뢰도 높은 자연 기반의 탄소 크레디트를 플랫폼에 제공할 계획이다.
[인터뷰]유희석 SK임업 네이쳐 솔루션 비즈 부사장
“‘자연 기반 솔루션’으로 지역 주민과 상생한다”
‘산림 탄소가 돈’…탄소 크레디트 비즈니스 하는 SK임업
-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시대에 발맞춰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나.
“에너지·반도체·배터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SK그룹 차원에서 ‘우리가 발생한 온실가스는 우리가 없앤다’는 목표를 갖고 탄소 중립의 배출 효율 기준 할당 방식(BM)으로 전환하기 위해 계열사 간 노력을 추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SK임업은 지난 50년간 산을 가꾸고 나무를 심어 온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산림 기반의 온실가스 감축’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한 탄소 검증 체계(MRV) 기술 고도화, 탄소배출권 거래 생태계 개선을 위한 플랫폼 구축 등 영역을 확대해 탄소 기반의 비즈니스로의 전사 전환을 추진 중이다.”

- 한국에서는 아직 자발적 탄소 시장이 본격화되지 않았다. 어떤 전략으로 비즈니스를 확대할 계획인가.
“산림탄소상쇄제도를 기반으로 발생하는 탄소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데 우리 SK임업이 기여하고자 한다. 특히 위성 영상과 딥러닝 기술을 도입해 위성 기반으로 수종 단위 탄소 잠재량 추정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또 산림청과 연대해 자발적 탄소 시장의 산림 탄소의 신뢰성 향상에 기업의 역할을 다하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 SK임업의 탄소 거래 플랫폼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현재 거래되는 탄소 시장의 탄소는 어떤 ‘스토리’를 갖고 생성됐는지 모니터링·보고·검증 등의 정보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 플랫폼에서는 어떤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얼마만큼 탄소 저감이 일어났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 플랫폼을 통해 직접 판매자와 수요자가 탄소를 거래할 수 있는 거래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탄소를 거래하는 시스템으로, 투명하고 안전한 자산으로서 탄소 배출권을 확보하고 거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한국 사업에서의 주요 과제는 무엇인가.
“한국에서 진행되는 산림 탄소 상쇄 사업을 통한 사업은 탄소 중립 산림 협력 사업이라고 칭한다. 이 사업의 가장 주요한 이해관계인은 산림 소유주다. 산림 소유주는 개인뿐만 아니라 학교법인, 일반법인 등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산림 소유주들은 그동안 산림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산림에서 어떠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이러한 부분에서 더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산림 탄소 상쇄 사업은 한국에서 만든 법(탄소 흡수원 유지 및 증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운영되는 자발적 탄소상쇄제도다. 결국 한국 제도를 어떻게 국제 기준에 맞추고 이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자발적 탄소 시장에서 어떻게 거래 가능하도록 만들 것이냐가 앞으로 과제라고 생각한다.”

- 지역 주민과의 상생이나 생물 다양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수종 선정 시 지역 주민의 니즈를 반영해 고성 신규 조림·재조림 청정개발체제(AR CDM)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베트남 남부 지역의 맹그로브 조림을 한국 정부 사업과 연계해 추진할 계획이 있는데 이때 맹그로브 조림을 통해 생물종 다양성 확보, 수상 생태계 복원 등을 지원하고자 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이미 한국 정부와 P4G라는 민·관 협력 파트너십을 통한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기반으로 커피 농장 주변에 그늘나무 조림과 양묘장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커피 생산량과 품질을 개선해 지역의 소득 창출에 기여하도록 구상하고 있다.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이 SK임업이 추구하는 방향성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400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