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 잔액 6.67조원 불완전 판매로 확대…금감원 대책 마련에도 실효성 여부 논란

[비즈니스 포커스]
카드사의 나쁜 마케팅 ‘리볼빙 덫’
“이 좋은 걸 왜 안 쓰세요.”

사회 초년생인 A(28) 씨는 지난해 말 카드사 상담원의 권유에 결제성 리볼빙(일부 결제 금액 이월 약정) 서비스에 가입했다가 6개월 후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해지했다. 단순히 후불 결제라고 생각했는데 6개월이 돼서야 카드 빚이 1000만원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연체 없이 신용도를 관리하는 서비스라며 엄청난 혜택인 양 말해 가입했는데 알고 보니 돈 먹는 하마였다”고 말했다. 직장인 B(32) 씨도 카드 연회비 지원금을 주는 대신 리볼빙 서비스에 필수 가입해야 한다고 해 리볼빙에 발을 들였다가 부채의 덫에 빠졌다. “(리볼빙 서비스는)좀처럼 막아지지 않는 도랑물이에요. 강물이 될 때쯤에야 마이너스 통장 대출을 뚫어 막았습니다. 애초에 쳐다도 보지 말아야 해요.”

최근 카드사의 리볼빙 서비스가 가계 부채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카드사는 수익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고금리 서비스인 리볼빙을 불완전 판매 방식으로 확대하며 이용자를 키웠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리볼빙 서비스 이용자 수는 2020년 말 246만9000명에서 2022년 7월 말 273만5000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이월 잔액은 5조3900억원에서 6조6700원으로 커졌다. 사상 최대치다.

리볼빙 서비스는 신용카드 사용 대금 중 일부만 갚고 나머지 결제액은 일부 이자를 부담하고 다음 결제 때 대금을 상환하는 제도다. 한국 7개 카드사의 리볼빙 서비스 최고 금리는 연 18~20% 수준으로, 전체 이용자의 40%가 이 금리를 적용받고 있다. 평균 금리 역시 카드론 금리보다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고금리 서비스인 리볼빙에 대한 소비자 접근이 매우 쉽다는 점이다. 카드사들이 가계 대출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결제성 리볼빙을 전략적으로 확대하면서 카드 발급 초기에 가입을 유도하거나 서비스의 위험성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는 등 불완전 판매 방식으로 마케팅을 확대해 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연회비 지원금을 주며 리볼빙 서비스를 필수 가입시키거나 신청 시 문제가 전혀 없다며 서비스 가입을 유도하는 식이다. 자영업자 C 씨는 “리볼빙에 가입한 적이 없는데 가입돼 있어 찾아보니 서비스 신청 항목란이 매우 작게 돼 있었고 설계사가 이미 체크한 채 줘 나도 모르게 동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위험성에 대한 고지도 간략하게 서술하거나 생략됐다. 카드사는 리볼빙 서비스를 광고하며 ‘자유로운 상환으로 결제 부담을 줄이고 신용도 보호까지 가능하다’고 상단에 언급한 대신 이자율은 장문의 하단에 기재하는 방식으로 불완전 판매도 했다. 실제 2021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금감원에 접수된 리볼빙 민원 128건을 분석한 결과 신청하지 않았는데도 리볼빙에 가입됐거나 무이자 서비스로 안내 받았다는 등의 불완전 판매 민원이 지속 발생했다.

리볼빙 서비스는 고금리에 더해 갚아야 할 원금이 계속 불어나게 되는 구조로 연체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금감원은 소비자 민원이 급증하자 지난 8월 24일에야 리볼빙 서비스의 건전한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 설명 의무를 강화하고 수수료율 인화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내용의 서비스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11월부터 별도의 리볼빙 설명서를 신설하고 계약 채결 전 권유 단계에서 주요 내용을 설명할 수 있도록 설명 의무 절차를 도입할 방침이다.

리볼빙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민원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앞서 금감원은 10년 전인 2012년 6월에도 ‘카드 리볼빙 서비스 피해 주의보’를 발령한 바 있다. 한국소비자원 역시 2006년, 2015년 똑같은 주의보를 발령했다. 당시에도 과도한 수수료와 설명 불충분이 민원의 내용이었다. 향후 서민 경제의 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제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서지용 상명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장기적인 해결책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카드론이 올해 초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반영되며 DSR 예외인 리볼빙 서비스가 풍선 효과로 늘어난 측면을 고려하면 리볼빙 이용 잔액은 오히려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