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이후 팍팍한 대도시 떠나 귀농·귀촌 증가…‘농촌 살리기’ 정부 정책 지원도 한몫

[비즈니스 포커스]
사진=유투브 채널 '리틀타네의 슬기로운 생활'
사진=유투브 채널 '리틀타네의 슬기로운 생활'
# 유튜브 채널 ‘리틀타네의 슬기로운 생활’ 운영자는 30대 여성이다. ‘타네’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그녀는 스스로를 영국에 유학을 다녀온 소위 고스펙자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그는 취업 대신 귀촌을 택했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결정이다. 시골 생활이라고 하지만 본격적인 귀농은 아니다. 시골에 자리 잡은 덕분에 마당을 가꾸고 텃밭에서 소소하게 작물들을 기르는 것만으로도 그의 하루는 매우 바쁘다. 스스로를 백수라고 칭하지만 그렇다고 직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프리랜서인 그의 유투브 채널에는 실제 귀촌 생활과 함께 현재 영국에 유학 중인 동생과 함께 하는 영국 생활 모습도 종종 담아내고 있다. 시골에 있든 영국에 있든 업무가 가능한 덕분이다.
사진=유투브 채널 '서울부부의 귀촌 일기'
사진=유투브 채널 '서울부부의 귀촌 일기'
# ‘서울부부의 대책 없는 귀촌 일기’라는 설명이 붙은 ‘서울부부의 귀촌일기’는 방탄소년단(BTS)의 슈가가 즐겨 보는 채널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탄 바 있다. 현재 구독자만 17만 명에 이른다. 주인공인 서울부부는 게임 음악 작곡가인 이준영 씨와 그의 부인 추지현 씨다. 3평생 대도시에서만 살아온 이들 부부가 어느 날 갑자기 시골로 내려갈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너무나 현실적이다. 내 집 하나 마련하기 힘든데 전셋값 때문에 은행 빚은 매달 갚아야 했다. 물속에 가라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이들은 ‘더 늦기 전에 물 밖으로 나가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길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머무를 곳을 찾았고 충남 부여에 낡은 집 한 채를 발견했다. 30대에 시골살이를 시작한 이들 부부는 동물들과 따뜻한 교감을 나누고, 아침에는 뒷산에 올라 버섯을 따고 오후에는 텃발을 가꾸는 삶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다.

귀농·귀촌에 관심을 갖는 20~30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귀농이나 귀촌은 은퇴한 50~60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관심사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남들과는 다른 삶’을 꿈꾸는 젊은층에서 귀농·귀촌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젊은 세대의 귀촌 열풍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 젊은 세대의 귀촌 열풍이 주목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정부 또한 ‘농촌 살리기’의 수단으로 젊은 세대의 귀촌에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가 ‘시골’로 떠나는 이유
통계청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1년 귀농·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귀농·귀촌 가구가 38만 가구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계 이후 최대치다. 2021년 37만7744가구보다 5.6% 증가했다. 인구수로 보면 51만5434명으로 전년 대비 4.2% 증가했다. 통계 자료를 보면 귀촌은 동에서 읍·면으로 이동한 경우(일시적 이주 및 귀농 제외)를, 귀농은 이동은 물론 농업경영체등록명부·농지원부·축산업등록명부에 새로 이름을 올린 경우라고 정의돼 있다.

과거에도 귀농·귀촌 인구가 급격한 증가를 보이던 시기가 있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와 2008년 금융 위기 때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겨 가는 이들이 증가하는 흐름을 보여 온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2년 연속 귀농·귀촌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최근의 귀촌 열풍은 과거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20~30대의 젊은 세대가 이와 같은 귀농·귀촌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기준 30대 이하 귀농·귀촌 인구는 23만5904명으로 전체의 45.8%를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농사’를 직업으로 선택한 귀농 인구는 1522명으로 역대 최대치다. 2020년 1370명과 비교해 11.1% 늘었다. 이들 가운데 전업 농업인은 67.9%이고 32.1%는 농사와 함께 다른 직업 활동을 병행하는 겸업 귀농이다.

이와 관련해 농식품부는 보고서를 통해 “2021년 국내 인구 이동량이 전년 대비 줄었음에도(773만 명→721만 명)에도 귀농·귀촌 증가세가 유지된 것은 농촌으로의 이주 흐름이 견고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며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여파, 농촌에 대한 관심 증가, 도시 주택 가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젊은 세대는 왜 익숙한 대도시를 떠나 낯선 ‘시골살이’를 선택하는 것일까. 과거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어려워진 경제적 여건은 물론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와 비교해 젊은 세대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성공하는 삶’에 대한 관심이 적다. 이들에게는 오히려 ‘성공한 삶’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그 무엇보다 이들에게는 도시와 비교해 주거 비용은 물론 생활 비용 측면에서도 훨씬 적은 돈으로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상당한 매력 요인이 되고 있다.

스스로도 귀농해 농사를 지으며 귀농·귀촌 교육을 이어 가고 있는 충남 연암대의 채상헌 교수는 “지금의 젊은 세대는 아버지 세대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 성공을 꿈꿀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부모님들처럼 일만 하는 삶보다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데 도전적이고 거리낌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귀촌 열풍을 이와 같은 ‘가치관의 변화’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최근에는 농촌이라고 하더라도 도시 못지않은 인프라를 갖춘 곳들이 적지 않다. 특히 모바일이나 인터넷 사용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 굳이 대도시에 머무르지 않아도 컴퓨터만 있으면 얼마든지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텃밭을 가꾸는 것을 넘어 ‘귀농’을 선택한 이들에게도 잘 갖춰진 최첨단 기술 인프라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특히 농업을 고부가 가치 산업의 하나로 인식하고 ‘스마트 농업’에 도전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을 활용해 자유롭게 자신들이 농사 지은 수확물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 또한 젊은 세대의 귀촌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귀농 귀촌 교육 과정. 사진=서울시 제공
귀농 귀촌 교육 과정. 사진=서울시 제공
‘젊은 인구’ 유입 원하는 농촌 지역, 정책 지원 강화
이와 같은 젊은 세대의 욕구는 정부의 이해 관계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 지역으로서는 젊은 인구의 유입만큼 반가운 일이 없다. 따라서 정부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에서는 젊은 세대가 농촌 지역에 안정적으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주택 구입 지원 사업을 비롯해 정착 지원금 등을 다양하게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청년 귀농인을 위한 커뮤니티와 컨설팅 사업 등도 활발하다.

이와 같은 지원 제도들 가운데 실제 귀농·귀촌에 관심이 있는 젊은 세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교육 프로그램’이다. 대표적인 곳이 농림축산식품부의 ‘귀농귀촌종합센터’다. 목공, 집 고치기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술에서부터 ‘농촌 로컬 상품 기획 사례’ 등의 교육도 받을 수 있다. 농업 외에 농촌 지역에서 가능한 다양한 경제 활동에 대한 정보 또한 중요하게 다뤄진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접근이 편리하기 때문에 실제로 귀촌이나 귀농을 실행하기 전 3~4년 전부터 이곳에서 교육을 받으며 귀촌을 준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인기다. 보다 실질적으로 농업과 관련한 기술을 익히기 위한 교육기관도 있다.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농업기술센터나 농협중앙회의 청년농부사관학교 등이 대표적이다.

젊은 세대의 귀농·귀촌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더욱 확대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농촌으로 이주를 선택한 젊은 세대가 ‘농업’을 자신들의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는 경우라고 해도 자유롭게 다른 직업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골에서의 재택근무나 작은 가게 창업 등이 활발해진다면 이 또한 농촌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시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는 “젊은 세대의 귀농·귀촌을 위한 지원 방안에 파격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며 “지원 규모나 기간의 확대는 물론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지원 정책보다 각 지역이나 귀농·귀촌 인구의 유형별 특징에 따른 맞춤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