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성공 방식은 결국 ‘자유롭게 만들도록 하는 것’

배우 이정재가 9월 12일(현지시간)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모습.
배우 이정재가 9월 12일(현지시간)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모습.
한국 드라마가 마침내 새로운 역사를 썼다. 방탄소년단(BTS)을 중심으로 한 K팝 열풍, ‘기생충’이 보여준 한국 영화의 위력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웠다. 여기에 9월 12일(현지 시간)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과 이정재 배우가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며 더 큰 기적을 만들어 냈다. ‘비영어권 최초’라는 화려한 수식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세계 많은 사람들이 K-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시청하며 열광하고 있다는 것을….

작품 흥행의 비결은 다양하지만 작품 바깥에 존재하는 플랫폼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오징어 게임’에 투자하고 제작한 것도, 190여 개 국가에 유통한 것도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2016년 한국에 들어온 이후 K-콘텐츠를 해외에 동시다발적으로 실어 나르는 강력한 운반책이 됐다. 역으로 넷플릭스도 K-콘텐츠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빨아들인 것은 물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수리남’ 등 K-콘텐츠가 잇달아 흥행하며 넷플릭스를 떠받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오고 다수의 지식재산권(IP)도 보유하고 있는 한국 OTT는 정체돼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오며 한국 OTT 시장이 급속히 커졌다. 한국 콘텐츠 기업과 방송사·통신사 등이 일제히 OTT 사업을 확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OTT의 가입자,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등도 증가세를 보였다. 코로나19 사태 확산 이후 OTT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덕분이다. 하지만 그것은 OTT 전체의 승리였을 뿐 한국 OTT의 승리는 아니었다. 심지어 한국 OTT는 최근 사람들의 대외 활동이 늘어나며 넷플릭스보다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기로에 선 한국 OTT는 잠깐 멈춰 서 숨을 고르고 자문해야 한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어디쯤인가. 더 나아가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질주 속 묻혀 버린 파열음
파열음은 이미 곳곳에서 들려왔다. 독자적인 한국형 OTT를 목표로 삼고 꾸준히 사업을 확장해 온 왓챠는 경영 악화에 따라 매물로 나왔다.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쿠팡플레이는 8회분의 드라마 ‘안나’를 6회 차로 축소 편집해 논란이 일었다. 대표 한국 OTT 웨이브와 티빙은 실적이 부진하다. 제작비에 계속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아직 그만큼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런데 한국 OTT는 이 문제들은 고스란히 묻어둔 채 전력 질주를 이어 가고 있다.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하는 콘텐츠 시장에서 한순간도 멈춰 설 수 없다는 위기감과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반드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한국 OTT가 잘하고 있는 점도 많다. 한국 OTT는 확실히 한국인을 잘 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는 한국인 맞춤형이 아니다.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만들다 보니 이질적인 요소들을 자꾸만 섞는다는 느낌을 준다. 반면 한국 OTT는 한국 시청자들이 반응하는 지점을 정확히 안다. 티빙의 ‘술꾼도시여자들’과 ‘환승연애’, 웨이브의 ‘위기의 X’ 등이 인기를 얻은 것은 그 내공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과감한 베팅까지 시도해 화제성까지 얻고 있다. 쿠팡플레이가 여름 대작인 ‘한산’과 ‘비상선언’의 독점 방영권을 사들인 것이 대표적이다. 쿠팡플레이는 스크린에 걸려 있던 작품을 동시 공개함으로써, 극장에서 IPTV로 영화가 직행하는 기존 관행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무엇보다 쿠팡플레이 이용자만이 작품을 볼 수 있게 한 점은 가입 유치에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연과 스포츠 중계권 확보에도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티빙은 가수 임영웅 씨의 콘서트 단독 중계를, 쿠팡플레이는 손흥민 선수가 속한 토트넘 홋스퍼의 방한 경기를 독점 중계했다. 이 또한 플랫폼 외부에 존재하는 강력한 팬덤을 플랫폼 안으로 끌고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OTT 성공을 위한 핵심 요소인 ‘중독’이란 단어를 다시 떠올려 봐야 한다. 우리는 한국 OTT에 중독돼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확실히 ‘예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얕은 중독’ 정도가 흐르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한국 시청자를 잘 알고 있는 만큼 익숙하고 편안한 콘텐츠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가끔 제공되는 대작 영화, 콘서트, 스포츠 중계도 매혹적으로 다가오기는 한다.

하지만 이 얕은 중독이 해당 OTT를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이유까지는 되지 않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9월 20일 발표한 ‘OTT 서비스 변화와 이용 전망 분석’에 따르면 OTT 이용자 3000명 가운데 39.8%는 주로 이용하는 OTT를 다른 OTT로 옮길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 OTT는 기껏 큰돈을 들여 여러 작품도 사들이고 중계하고도 그 이슈가 끝나고 나면 줄줄이 해지 버튼을 누르는 ‘메뚜기족’을 허무하게 지켜볼 뿐이다. 그렇다면 이 치킨 게임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수요 창출은 불가능한 것일까.

결국 해답은 이용자가 쉽게 헤어나올 수 없는 ‘강력한 중독’이다. ‘오징어 게임’과 같은 결정적이고 막강한 파급력을 가진 킬러 콘텐츠가 탄생해야 하는 것이다. 킬러 콘텐츠는 플랫폼의 브랜드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지속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플랫폼에서 콘텐츠는 곧 ‘락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락인 효과는 특정 브랜드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들이 다른 브랜드로 옮겨 가지 않고 계속 머무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에겐 암묵적인 신뢰가 존재한다. 해당 브랜드에서 앞으로도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꾸준히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넷플릭스에서 당장 마음에 쏙 드는 콘텐츠를 발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오징어 게임’과 ‘킹덤’ 같은 킬러 콘텐츠가 또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입을 지속하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그렇게 콘텐츠를 통해 믿음이 한 번 형성되고 나면 이용자는 굳이 가입과 해지를 반복하지 않고 해당 플랫폼엔 계속 머물러 있게 된다.
◆‘강력한 중독’을 만들어 내려면
물론 한국 OTT도 킬러 콘텐츠의 탄생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온 지 6년이 넘도록 좀처럼 킬러 콘텐츠가 나오지 않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면 결국 ‘업의 본질’을 떠올리게 된다.

콘텐츠업의 처음이자 끝은 창작이다. 아무리 외부에서 대작을 수급하고 대형 스포츠 중계를 해서 반짝 효과를 누려도 오래 가기는 힘들다. OTT의 브랜드 신뢰도가 외부 콘텐츠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 오직 오랜 시간 기억될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한국 OTT는 좋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제대로 만드는 데 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이 중요한 원칙이 어긋났던 쿠팡플레이의 드라마 ‘안나’ 축소 편집 논란을 떠올려 보자. 제작과 투자의 주체가 OTT라고 해도 작품 자체는 창작진이 만드는 것이다. 기획부터 마지막 편집까지 그 권한과 책임이 온전히 창작진에게 있다. 협의 여부를 떠나 작고 사소해 보이는 장면 하나도 창작잔이 아닌 외부 사람이 편집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그 장면이 하나 빠지는 것만으로도 본 의도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이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완성작이 어떤 형태이든, 아쉬운 점이 많아 보이든, 더 자르거나 더 늘리는 것이 좋아 보이든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유롭게 만들도록 하는 것’, 그것이 OTT가 창작진에 해야 할 일의 전부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창작자들이 가장 열광했던 이유도 업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존중해 준다는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편집 단계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시장에서 여러 단계에 걸쳐 이뤄져 온 ‘가위질’ 자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고정 관념과 틀에 박힌 시선 때문에 펄떡이는 날것들은 수없이 놓쳐 버리지 않았던가. 10년 전 ‘오징어 게임’은 시장에서 버려진 작품이었다. ‘비현실적이다’, ‘터무니없다’는 소리를 들으며 제작 자체를 거부당했다. 하지만 그 옥석을 알아보는 글로벌 플랫폼이 있어 가까스로 탄생했다.
'오징어 게임'의 체육복을 입고 2021년 3분기 실적을 발표한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오징어 게임'의 체육복을 입고 2021년 3분기 실적을 발표한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우리는 당신의 잠과 경쟁한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의 호기로운 외침은 이미 현실이 됐다. 외부 활동이 늘어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가 나오면 관심을 갖고 밤새 몰아보기를 한다. 반면 한국 OTT는 그만큼의 몰입감을 선사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갖고 있는가. 이제 OTT의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다. 오늘 밤 이용자의 잠을 빼앗는 것,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며 나아가야 한다.

김희경 한국경제 문화부 기자 겸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