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화·검열 가능성 높아진 것은 역설적으로 투자 호재…증권성은 리스크 안 돼

[비트코인 A to Z]
머지 업데이트를 축하하는 비탈릭 부테린 트위터
머지 업데이트를 축하하는 비탈릭 부테린 트위터
이더리움 네트워크 업그레이드 머지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작업 증명에 기반한 합의 메커니즘이었던 이더리움은 이제 지분 증명으로 전환됐다. 작업 증명과 지분 증명 그리고 이더리움 머지에 대한 설명은 이미 인터넷에 수많은 설명 자료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번 칼럼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이더리움 낙관론자 vs 비관론자
이더리움 머지 업그레이드에 대한 낙관과 비관[비트코인 A to Z]
이더리움 낙관론자들은 머지를 계기로 이더리움 에너지 효율성이 증가하고 공급량 증가율이 하락해 희소성이 부각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더리움 비관론자들은 (대체로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 지분 증명으로 인해 검열과 중앙화 리스크가 커졌고 이더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해 증권으로 분류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고 비판한다.

누가 맞을까. 양측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누가 옳은지를 편드는 것은 필자의 몫이 아니다.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크립토 생태계의 의견이 양분되는 것을 지켜보며 유연한 사고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필자가 보기에 크립토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평균 대비 유연한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지만 (왜냐하면 남들이 사기라고 할 때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뒤 시장에 진입했으니까) 아무래도 사람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워낙 변화가 빠르고 불확실성이 높은 크립토 시장의 특성상 극단적으로 유연한 사고를 하는 것이야말로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마인드라고 믿는다.

레이 달리오의 책 ‘원칙’은 유연한 사고가 무엇이고 이것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돕는다. 레이 달리오는 유연한 사고를 막는 원인으로 자아와 사각지대 등 두 가지를 지목한다.

자아는 약점과 실수를 수용하기 어렵게 만드는 방어 기제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누군가 건설적인 비판을 하면 이것을 공격으로 받아 들인다. 필자는 이더리움 머지를 둘러싼 크립토 인플루언서들의 설전을 보며 건강한 토론보다 감정적이고 날 선 비난이 주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자기가 똑똑하고 돈이 많고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싶다.

사각지대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허점이다. 크립토 시장의 복잡성은 극한으로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얼마든지 많다. 예를 들어 테라-루나가 이렇게 허망하게 실패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당시 테라-루나 낙관론자를 비롯한 크립토 시장 참여자 다수는 테라-루나의 사각지대를 과소 평가했다. 마찬가지로 이더리움 머지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리스크로 거론되고 있는 요소들(중앙화·검열·증권성 등)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아니다. 사각지대는 누구도 예상하지 않은 요인에 기인한다.

레이 달리오는 유연한 사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극단적으로 개방적인 사고는 당신이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순수한 걱정에서 비롯된다. 열린 사고는 자아나 사각지대가 자신을 방해하지 않도록 다른 관점과 다른 가능성을 효율적으로 탐구하는 능력이다. 개방적 사고를 위해서는 당신이 언제나 옳다는 애착을, 무엇이 진실인지를 배우는 기쁨으로 대체해야 한다. (중략) 대부분의 사람은 극단적으로 개방적이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잘못된 것을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태도가 개방적인 사고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자신의 의견에 집착하고 다른 의견의 이면에 있는 타당성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한다.”이더리움 지분 증명, 규제 당국이 통제하기 쉬워져 한편 현재의 상황과 몇 가지 가설에 기반해 필자가 내린 결론은 이더리움 머지는 투자 관점에서는 호재라는 것이다.

이더리움 비관론자들의 의견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필자가 보기에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성장과 이더 가격이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전보다 높아졌다는 뜻이다.

우선 증권성 여부와 별개로 미국 규제 당국은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증권으로 분류하거나 ‘금지’시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규제 당국으로서는 지분 증명이 통제하기 더 쉽기 때문에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검열하고 규제 준수를 강요하는 방향이지 않을까 싶다.

둘째, 멀티 체인 생태계는 활성화되겠지만 이더리움을 비롯한 L2 생태계가 주축이 될 것 같다. 무수한 ‘이더리움 킬러’ L1은 저마다의 생태계를 형성하며 나름의 역할을 하겠지만 이더리움 생태계를 압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빅테크와의 경쟁 혹은 예상하지 못한 네트워크 공격이 변수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향후 수년간 이더리움은 웹3 테마를 주도하는 주요한 크립토가 될 것 같다.

물론 필자가 틀릴 수 있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언제든지 관점을 바꿀 준비가 돼 있다. 크립토를 알게 된 지 약 5년 정도가 됐는데 그동안 크게 두 번의 틀린 판단이 있었다. 첫째는 비트코인을 처음 접했던 2017년 당시, 상당한 김치 프리미엄이 존재했을 당시 효율적 시장 가설을 운운하며 기회를 놓친 것이다.

둘째는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로 업계에 입문했다가 이더리움을 비롯한 플랫폼 코인의 저력을 과소 평가한 것이었다.

크립토 시장 참여자들은 안개에서 손을 허우적거리고 있는 장님 신세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여기에서 늪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필자는 알고 있다. 바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생각이 다른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 그리고 극단적으로 유연한 사고를 하면서 낯설지 않은 것을 수용하는 것이다.

한중섭 ‘비트코인 제국주의’, ‘넥스트 파이낸스’,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