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정보 교환만으로 가격 합의 단정 어렵다”
대한사료·하림 등 과징금 취소

[법알못 판례 읽기]
양계농장에서 닭들이 뛰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양계농장에서 닭들이 뛰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장 경제에서 공급자들은 자유로운 경쟁을 한다. 상품의 질·가격·만족도 등을 놓고 소비자에게 더 합리적인 제안을 내놓는 업체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을 통해 물건의 질은 점점 개선되고 소비자는 만족스러운 소비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저해하는 요소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경쟁자들 간의 ‘담합’이다. 담합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가격 담합이다. 공급자 간 판매 가격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한국은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장기적으로 시장 경제에 해악을 끼치는 담합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또한 은밀하게 이뤄지는 담합 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리니언시’ 제도를 운영하기도 한다. 이는 ‘자백하면 형량을 줄여 준다’는 ‘죄수의 딜레마’를 경제 분야에 적용한 것으로, 담합에 참여한 업체가 자진 신고하면 과징금을 가볍게 해주는 제도를 의미한다.

하지만 ‘담합에 참여했다’는 한 업체의 자진 신고로 공정위가 업계에 과징금 철퇴를 내렸으나 법원이 이를 담합이 아니라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대법원은 대한사료와 하림홀딩스 등 4개 회사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명령과 과징금 납부 명령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 상고심에서 업체들의 손을 들어준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022년 6월 15일 밝혔다.

자진 신고로 시작된 사건…11곳 과징금 750억원


사건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정위는 가축 사료 시장에서 담합 행위를 적발했다며 사료 업체 11곳에 시정 명령을 내리고 745억9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해당 사건이 알려진 것은 사료 업체 두산생물자원의 자진 신고 때문이었다. 제재 대상은 카길애그리퓨리나·하림홀딩스·팜스코·제일홀딩스·CJ제일제당·대한제당·삼양홀딩스·서울사료·우성사료·대한사료·두산생물자원 등 11곳이었다. 이 중 가장 먼저 자진 신고한 두산생물자원은 과징금(27억3600만원)을 감면받았다.

담합의 근거가 된 것은 사료 업체 사장단의 모임이었다. 사료 업체의 대표나 부문장들이 수년간 골프장과 식당 등에서 모임을 하며 가축 배합 사료의 가격 인상·인하 폭의 적용 시기 등을 합의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들이 2006년부터 4년 동안 16차례 돼지·닭·소 등 가축 배합 사료의 가격 인상·인하 폭과 적용 시기를 미리 짜 맞췄다고 봤다.

두산생물자원을 제외한 10개 업체는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각자 소송을 제기했다. 우선 이들이 들고나온 것은 바로 ‘사료 시장의 특성’이었다. 배합 사료는 제조 원가에서 옥수수·소맥 등 원재료비의 비율이 90%에 이를 정도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즉 수입 원재료에 대한 구매 경쟁력이 수익 구조를 결정하는 중요 요소라는 점이다.

원재료 운임을 절감하려면 한 번에 최대한 많은 물량을 운송해 운임을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단독으로 많은 양의 원료를 수입하더라도 장기 보관에 따른 보관료 부담, 신선도 유지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배합 사료 업체들은 공동 구매를 통해 운임 절감에 나서고 있다.

이에 원고 측은 “사료 업체들이 원재료를 공동 구매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가격 변동이 유사하다”며 “배합 사료 시장은 가격 외에도 다양한 배합비를 가진 제품을 통한 품질 경쟁, 각종 할인 제도를 통한 가격 경쟁을 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담합과 정보 교환의 차이점, ‘합의’


담합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사업자 간의 합의 절차 역시 없었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은 “공정위가 업체 간 담합이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기간에도 치열한 경쟁에 따른 각 업체 간 시장점유율 변동이 심했다”며 “사장단 모임은 단순 친목 모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해당 모임에서 가격에 대한 정보를 교환할 순 있었어도 실제로 담합하기 위해 11개사가 ‘의견의 합치’를 본 적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재판부 역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모임에 참석했던 직원들은 판매 전략을 세우기 위해 정보를 교환했을 뿐 실제 판매 가격 결정은 각 사에서 독단적으로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두산생물자원 직원 중 한 명이 ‘회사의 압력으로 가격 등의 담합 사실이 없음에도 어쩔 수 없이 자진 신고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등을 고려하면 자진 신고 내용만으로 담합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결에 법리 오해가 없다고 봤다. 해당 사건을 맡은 안준규 법무법인 태평양 공정거래그룹 소속 변호사는 “시장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단순 정보 교환을 담합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라며 “사료업계의 특성을 파악하고 담합의 근거로 제시된 ‘사장단 모임’의 성격을 해명하는 등 증거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돋보기]
‘담합 시 경영자도 책임’…동국제강 주주대표소송 보니

기업 담합 행위가 인정되면 대표이사에게 ‘감시 의무 위반’을 물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회사 업무를 총괄하는 대표이사가 회사 내 조직적인 담합 행위를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내부 통제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것으로 감독의 의무를 게을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소액 주주 오 모 씨가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을 상대로 낸 회사에 관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철강제조·가공업체인 유니온스틸은 2013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냉연 강판과 아연 도강판 등의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약 320억원의 과징금 부과 처분을 받았다. 장 회장은 2004년 3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유니온스틸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오 씨는 ‘유니온스틸의 담합 행위가 있었던 시기에 재임한 장 회장 등에 대해 이사의 선관 주의 의무와 충실 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 배상 청구를 제기할 것을 요청한다’는 청구서를 발송했지만 유니온스틸이 거부하자 2014년 12월 “장 회장 등은 회사에 319억여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장 회장 등이 담합 행위에 관여했거나 위법 행위임을 알면서 감시 의무를 다하지 않고 방치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장 회장이 담합 행위를 지시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담합 행위에 대한 장 회장의 감시 의무 위반은 인정했다.

대법원은 “대표이사가 내부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거나 이러한 시스템을 통한 감시·감독 의무의 이행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결과 다른 이사 등의 위법한 업무 집행을 방지하지 못했다면 대표이사로서 회사 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 의무를 게을리한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오랜 기간 영업담당 임원과 영업팀장 모임을 통해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가격 담합이 이뤄졌음에도 담합에 관여한 임직원이 어떠한 제지나 견제도 받지 않은 것은 대표이사가 담합 행위를 의도적으로 외면했거나 가능성에 대비한 어떤 주의도 기울이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 회장이 담합 행위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고 임원들의 행위를 직접 지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는 책임을 면할 수 없고 대표이사로서 감시 의무를 게을리한 결과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면 이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