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준 EGG 대표 인터뷰
조직 배양 통해 생산 기간 6년→2년으로…생산 면적도 획기적으로 늘려

이집트 식량 안보 구원 투수 된 한국의 씨감자 기업
올해 6월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인 이집트가 밀 수입량 줄이기에 들어갔다. 각국의 곡물 보호주의로 밀값이 급등한 탓이다. 이집트 정부는 밀 수입량 10%를 포기하는 대신 감자를 택했다. 감자는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현지 생산을 통한 자급자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집트 내 감자 소비가 늘자 네덜란드 감자 가공 기업 팜프리츠 등은 이집트 내 공장 증설에 나섰다. 문제는 생감자 공급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발생했다. 팜프리츠는 이집트 내 감자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이집트에서 가장 큰 감자 회사에 한국 기업 한 곳을 소개했다. 세계 최초로 ‘마이크로튜버’ 기술을 상용화해 무병씨감자(감자 종자)를 배양하는 ‘이그린글로벌(eGG)’이다. eGG는 두 기업의 소개로 이집트 감자 회사와 합작사를 설립했다.

eGG는 조직 배양 기술을 기반으로 한 푸드테크 기업이다. 주로 대체육이나 배달·로봇 등 기술 서비스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한국 푸드테크 시장에서 농생명과학 기술을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회사다. 중국 최대 국유 곡물 기업인 베이다황그룹과 맥도날드에 감자를 공급하는 북미 감자 가공 업체 램웨스턴 등이 eGG 씨감자를 납품 받는 고객사다.

신흥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소위 ‘감자 선진국’에서도 eGG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기준 eGG 대표를 만나 글로벌 기업들을 사로잡은 기술 경쟁력에 대해 물었다.
신 대표는 식용유 ‘해표’ 브랜드로 유명했던 신동방그룹 3세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다가 2009년 eGG를 창업했다.

-창업 아이템이 왜 감자였나요.
“감자는 까다로운 작물입니다. 벼·밀·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작물로 분류될 만큼 중요한 식량 자원이지만 전 세계 생감자 교역량은 생산량의 5%에 그쳐요. 씨가 아니라 감자를 다시 심는 ‘종서’ 형태여서 부피가 매우 크고 운송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죠. 감자의 70%가 물일 정도로 수분 함유량이 많아 장기간 저장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흙이 그대로 묻어 수입돼 검역도 까다롭죠. 한국에도 미국과 호주 일부 지역에서 세척을 마친 감자가 아니면 들어올 수 없어요. 벼·밀·옥수수·대두 등 거의 모든 작물이 거래되는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 감자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죠. 그래서 역으로 감자를 택했습니다. 게다가 감자는 기후 변화와 전쟁으로 인한 식량보호주의에서 안보 자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감자가 식량 안보 자원으로 부상한 이유가 따로 있나요.
“교역량이 적다는 말은 곧 자급률이 높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집트 정부가 밀 대신 감자 소비를 늘리겠다고 선언하기 이전 중국과 미국의 무역 전쟁에서 감자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중국은 무역 전쟁이 발발하자 가장 먼저 콩과 옥수수 수입을 막고 감자 생산량을 늘렸죠. 감자는 식량 자원 중 물을 가장 적게 쓰고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가장 높은 작물이기도 해요. 인구가 많은 신흥 개발국이 감자를 전략적 안보 작물로 삼는 이유입니다.”

-감자 중에서도 무병씨감자 시장을 노린 이유가 궁금합니다.
“감자 수요는 늘고 있는데 생산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감자는 재배 과정에서 오염된 토양과 벌레, 농업 용수 등으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감염되기 쉽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씨감자는 세대를 걸쳐 유전돼 감자 생산성이 계속 떨어지죠. 병이 있는 감자와 없는 감자는 생산성이 세 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무병씨감자를 사용하는 국가는 감자를 먹는 160개국 중 10%밖에 안 돼요. 나머지 90% 나라에는 무병씨감자 시스템이 없죠. eGG는 이 시장을 노렸습니다.”

-무병씨감자를 재배하는 기술이 그렇게 어려운가요.
“기존에는 온실 방식으로 씨감자를 배양했습니다. 감자를 두면 싹이 나는데 그 싹의 끝부분을 생장점이라고 하거든요. 무병 생장점을 떼다가 심으면 줄기가 나옵니다. 이 줄기를 다시 심으면 줄기 하나에 감자 하나가 맺혀요. 이 씨감자를 심으면 감자 하나에 10개가 맺히죠. 이 과정을 6번 반복해야 농가에 보급할 수 있는 정도의 경제성이 생깁니다. 즉 기존에는 씨감자 보급까지 통상 6년이 걸렸던 거죠.”

-eGG는 이 과정을 어떻게 혁신했나요.
“온실 대신 실험실에서, 토양 대신 배양액에서 씨감자를 생산하는 마이크로튜버 방식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습니다. 기존 씨감자 증식을 6년에 걸쳐 6번 해야 했다면 마이크튜버는 이 기간을 2년으로 줄였어요. 방울토마토보다 약간 크던 씨감자 크기도 콩알 만하게 줄였죠. 그 덕분에 감자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고 온실을 지을 만한 땅이나 흙이 없어도 실험실만 지으면 어디서든 손쉽게 감자를 재배할 수 있게 생산 프로세스를 혁신했습니다.”

-생산 기간이 줄었다는 것 외에 다른 장점도 있나요.
“세 가지 장점이 더 있습니다. 첫째, 생산 면적을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단위 면적으로 비교하면 온실 방식은 1㎡에 150개가 열립니다. 반면 마이크로튜버 방식으로는 1㎡에 2만 개가 나와요. 면적으로 따지면 생산성이 14배 정도 높아진 셈이죠.

둘째, 진정한 의미의 무병씨감자 생산이 가능합니다. 기존 온실 방식에서는 매년 씨감자를 다시 심어 증식할 때마다 멸균 토양을 새로 깔아 줘야 해요. 그런데 신흥 개발국이나 생산량이 많은 국가에서는 이 과정을 매번 지키기 어렵거든요. 흙이 조금이라도 오염되거나 벌레 한 마리만 들어가도 감자에 바이러스가 옮을 수 있어 6년간 무병 상태를 유지하기 힘듭니다. 반면 실험실에서는 토양이 아니라 배양액에서만 씨감자가 자라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무병씨감자 생산이 가능하죠.

셋째, 노동 집약적인 생산 방식을 바꿨습니다. 온실 방식에서는 씨감자 줄기를 배양하고 다시 그 줄기를 일일이 사람이 손으로 심어야 했어요. 온실이 1만 동, 10만 동 이렇게 늘어나면 어마어마한 인력이 소모되는 셈이거든요. 반면 마이크로튜버는 매일 씨감자가 공산품처럼 나올 수 있는 식물 공장입니다.”

-이집트에 합작사를 설립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롭습니다. 왜 글로벌 가공 기업들이 먼저 나서 이집트 회사와 한국 회사의 만남을 주선했나요.
“지난해 유럽감자협회(Potato Europe)가 주최한 대회에서 네덜란드 등 감자 선진국 업체를 제치고 혁신 1등 상인 ‘금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글로벌 업체들에 이름을 알렸어요. 이집트는 밀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최근 식량 보호주의로 밀 수출국들이 수출을 봉쇄하고 밀값이 급등하면서 식량 안보가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어요. 글로벌 가공 기업들이 이집트에 공장을 증설했지만 감자 공급 물량이 부족했죠. 이집트는 감자 강국이지만 씨감자는 100% 유럽에서 수입해 왔거든요. eGG를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 이집트 감자 회사와의 만남을 먼저 제안해왔어요. 몇 년 안에 공장을 설립해 씨감자부터 생감자까지 ‘로컬 포 로컬(자급자족)’할 수 있는 길을 열 계획입니다.”

-이번에 네덜란드에도 생산 시설을 설립했다고 들었습니다.
“네덜란드는 전통적인 씨감자 강국입니다. 무병씨감자 생산 체계가 잘 잡혀 있어요. 그런데 이제 씨감자를 재배할 밭이 부족합니다. 여기에 서유럽을 덮친 기후 변화도 문제였습니다. 감자는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는데 기후 변화로 수확량이 줄어들었고 전쟁 때문에 전기 요금과 가스 요금이 올라 영농비가 급격하게 늘었죠. 또 유럽연합(EU)이 2030년까지 비료를 비롯한 화학 제품을 50%로 줄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4번에서 6번 반복하던 씨감자 증식 단계를 확 줄여야 하거든요. 이런 수요를 보고 네덜란드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네덜란드 기업으로서는 경쟁자의 등장이네요.
“저도 견제를 받을 줄 알았는데 모두 기후 변화로 인한 ‘지속 가능성’을 우려하고 같이 방향을 모색하는 분위기였어요. 9월 준공식에 초대한 60개 기업 모두가 참여해 줬고 연사로 나서 환영해 줬습니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해외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푸드테크 시장은 IT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농업 시장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려면 기반 기술로 해외에서 경쟁이 돼야 합니다. 신흥 개발국의 식량 안보 수요와 서유럽의 지속 가능성 수요를 투 트랙으로 겨냥해 성장할 계획입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