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해외 수주액, 전년 대비 29% 상승…미국·중동 수주 돋보여
삼성물산, 7월 삼성전자 미국 반도체 공장 수주하며 전체 수주액도 증가

고유가 등에 업고 ‘제2의 중동 붐’ 실현할까…해외에서 활로 찾는 건설업계
부동산 빙하기를 맞은 건설업계가 얼어붙은 한국의 주택 시장 대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한국 주택 건설 시장이 침체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금리가 치솟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건설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상위 10대 건설사 매출 비율의 50%를 한국 주택 사업이 차지하고 있는 만큼 대안 모색이 시급한 상황이다.

건설사들의 재무 상태도 악화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0대 건설사들의 올해 상반기 부채 규모는 모두 80조원으로 작년 상반기 69조원에 비해 15.9% 증가했다. 1년 새 11조원이 늘어난 셈이다.

10개사 모두 작년보다 부채가 늘어났다. 건설사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분양 실패 등의 부담으로 분양 승인까지 받아 놓은 사업마저 미뤄 놓은 상태다.

관급물량도 감소할 전망이다. 정부가 내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올해보다 10.2%(2조8000억원) 감액한 25조1000억원으로 편성하면서 건설업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SOC 예산이 축소된 것은 2018년 이후 5년 만이다. 건설업계는 민간 주택 시장이 침체한 상황에서 SOC 일감마저 줄게 되면서 한국 시장에서 이중고에 직면한 상황이다. 한국의 주택 사업 비율이 50%였는데…건설사 비상건설업계는 이 같은 고비를 해외 수주로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올해 건설사 해외 수주 실적은 나쁘지 않다. 한국 건설사의 해외 수주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가까이 늘었다. 최근 수주 흐름을 감안하면 연내 목표 수준(약 320억 달러)은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2020년 이후 3년 연속 연간 300만 달러 이상 수주액을 기록하게 된다.

해외건설협회 해외건설종합서비스에 따르면 10월 4일 기준 올해 해외 건설 수주액은 224억 달러(약 31조 9800억원)로 전년 동기(174억 달러) 대비 50억 달러(28.7%) 증가했다. 다만 해외 건설 호황기였던 2010년대 초반 매년 600억~700억 달러를 수주한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반 토막 난 수준이다. 2010년 호황기와 비교하면 여전히 반 토막또 올해 수주 성적을 들여다보면 약간의 착시효과도 있다. 올 상반기까지는 120억 달러를 수주해 지난해 같은 기간(147억 달러) 대비 18.4% 적었다. 수주액이 급격하게 늘어난 건 7월부터다. 삼성전자 미국 반도체 공장 신축 공사를 수주한 삼성물산의 역할이 컸다.

삼성물산은 7월 미국 텍사스 주 테일러시의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 신축 공사를 수주했다.

이는 회사의 상반기 전체 해외 수주 실적보다 많은 19억 달러(2조 7000억원)였다. 삼성물산이 7월 수주한 물량은 삼성전자가 총 170억 달러(약 24조원)를 투자해 짓기로 한 테일러시 신규 공장 건설 프로젝트의 일부다. 업계에선 보안상의 이유로 삼성물산이 수주 물량의 대부분을 맡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해외수주 '대어'가 한국 기업에서 비롯된만큼 예년보다 건설사들의 해외수주 경쟁력이 늘었다고 보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삼성물산 해외 수주 물량을 빼면 건설사 수주액이 예년과 비슷한 상황이라 특별히 시장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거나 건설사가 새로운 전략으로 피봇 역할을 할 만한 요소는 크게 보이지 않는다”며 "유가가 급락할 수 있는 상황이나 통화 가치 변동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많은 수주액을 올린 삼성물산의 뒤를 이어 현대엔지니어링(24억8488만 달러), 삼성엔지니어링(24억3517만 달러), 롯데건설(14억2330만 달러) ,현대건설(10억9493만 달러), 대우건설(10억180만 달러)이 10억 달러 이상 계약을 따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인도네시아 초대형 석유화학단지와 현대차의 중국 연료전지 시스템 스택 건설 프로젝트 등을 올해 수주했다.

현대건설은 앞서 1주일 간격으로 총사업비 2조원이 넘는 해외 사업 수주액을 올렸다. 1조9000억원 규모의 필리핀 철도 사업을 수주한 데 이어 1주일 만에 쿠웨이트에서 2200억원 규모의 항만 공사를 수주했다. 앞서 지난 6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은 그리스의 아키로돈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네옴시티 프로젝트 중 ‘더 라인’의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 규모의 터널 공사 수주에 성공했다.

롯데건설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수주를 전폭적으로 늘려 가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올해 들어 약 1조9800억원(14억2300만 달러)의 해외 수주를 따냈다. 전년(1억1700만 달러)과 비교해 약 1116% 정도 증가한 수준이다.

대우건설은 그간 해외 사업에서 손실을 쌓아왔던 플랜트 사업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우건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나이지리리아에서 4억 9232만 달러 규모의 나이지리아 와리 정유시설 보수공사를 수의계약으로 수주했다. 올해 상반기 수주액은 총 7조 7719억 원을 달성하며 올해 초 공시한 수주 목표 12조 2000억 원의 63.7%에 달하는 성과를 올렸다.
고유가 등에 업고 ‘제2의 중동 붐’ 실현할까…해외에서 활로 찾는 건설업계
‘네옴시티’ 중심으로 제2의 중동 붐 노린다건설사들의 해외수주를 돕기 위해 정부도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는 '해외 인프라 수주 활성화 전략'을 통해 한때 수출 역군이었던 해외 건설 수주를 통해 정체 상태에 놓인 수출 동력을 회복하겠다는 목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2의 중동 붐’을 주문하며 5년 내 연간 500억 달러 수주를 목표로 세웠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해외인프라지원공사의 자본금을 5000억원에서 2조원으로 늘리고 한국수출입은행 지원 규모를 50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건설 산업은 한때 한국의 ‘수출 역군’이었다. 2010년 710억 달러대에 이르던 해외 건설 수주는 2016년부터 꺾이기 시작해 2019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2019년 총수주액은 224억 달러로 2006년 165억 달러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이후 지난 3년 연속 해외 수주는 300억 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 경쟁력이 떨어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한국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한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하락했고 코로나19 사태로 유가가 낮아지면서 중동 지역 플랜트 수요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해외 건설 수주 실적은 대체로 유가와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건설사가 주로 중동과 아시아 지역에서 석유화학 플랜트로 수주를 올린 결과다.

유가가 높아져 플랜트 건설이 늘어나면 수주액이 늘고 유가가 낮아지면 다시 수주액이 줄어든다. 실적이 좋았던 2010∼2014년은 국제 유가(두바이유 기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을 기록하던 시기다. 하지만 2015년 국제 유가가 급락한 뒤 한국의 해외 수주 실적은 가파르게 하락했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 경기가 몇 년간 활황을 유지한 것도 큰 이유다. 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사들이 지난 몇 년간 한국 주택 시장에 집중하면서 리스크가 큰 해외 수주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유가가 80~10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한국의 주택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해외 수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건설사들은 특히 오일머니가 대거 유입되는 중동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홍해 사막에 서울 면적의 44배에 달하는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네옴시티 프로젝트 홈페이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홍해 사막에 서울 면적의 44배에 달하는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네옴시티 프로젝트 홈페이지]
수익이 높아진 중동 기업들이 대규모 시설 투자를 계획하면서 건설업계 수주 증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는 2020년 2분기 이익이 66억 달러로 대폭 감소했지만 수익이 확대되며 올해 2분기에는 484억 달러로 7배 증가했다. 이에 따라 기존 400억 달러의 시설 투자 계획을 500억 달러로 상향 조정해 발표했다.

대형 플랜트 시장의 전방 산업인 글로벌 에너지 업체들의 수익 성장세도 눈에 띈다. 특히 엑슨모빌과 쉐브론의 올해 2분기 수익은 지난해 동기 대비 3~4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IHS마킷은 올해 중동 지역에서 발주하는 사업 규모가 4034억 달러에서 4446억 달러로 10.2% 증가하며 시장을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정지훈 해외건설협회 연구원은 “다소 시차가 있겠지만 정유 석유화학 공장 등 플랜트 시장에 발주가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주요국의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형 프로젝트인 ‘네옴시티’가 대표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 주도로 역내 북서부 홍해 인근 2만6500㎢ 용지에 서울의 44배에 달하는 도시, 네옴시티를 짓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5년 1차 완공, 2030년 최종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투자액이 총 5000억 달러(약 650조원)로 지난해 한국의 전체 본예산(607조7000억원)보다 많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