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ESG 리뷰]
현대건설이 주관하는 CCU 파일럿 플랜트.사진 제공=현대건설
현대건설이 주관하는 CCU 파일럿 플랜트.사진 제공=현대건설
한국에서도 기후 위기 대응이 미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을 체감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탄소 중립(넷 제로) 목표를 마련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이행 수단을 앞다퉈 발표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 기관과 시민 단체는 이러한 목표와 수단이 과학에 기반하고 실현 가능한 것인지 엄격한 검증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한국 기업 중 상당수가 온실가스 통계에 여전히 개별 기준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연결 기준 지표를 기본으로 하는 글로벌 기준과는 차이가 있다. 글로벌 ESG 공시 표준을 만들고 있는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도 지난 3월 공개한 초안에서 연결 기준 배출량 수치를 요구한다. 개별 기준 통계에는 해외 사업장과 자회사가 빠져 전체적 현황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연결 기준 지표 사용…배출 집약도 평가

이에 <한경ESG>는 블룸버그가 제공한 연결 기준 배출량 통계를 적용해 ‘2022 한국의 기후 리더’를 선정했다. 한국 기업의 기후 변화 대응 현황과 성과를 글로벌 기준에 맞춰 평가해 보기 위해서다. 조사 대상은 2020년 기준으로 연간 3만 톤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한 매출액 5000억원 이상 상장사다. 이 중 2018~2020년 3년간 연결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 데이터를 공개한 103개 기업이 최종 평가 대상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스코프 1(직접 배출)과 스코프 2(전략 사용 등 간접 배출)을 합한 것이다.

‘한국의 기후 리더’ 선정 기준은 2018~2020년 3년간의 온실가스 배출 집약도 감소율이다. 배출 집약도는 총배출량을 매출액으로 나눈 수치다. 매출 10억원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적용했다. 배출 집약도가 감소했다는 것은 동일한 매출을 올리면서 더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친환경 기술 혁신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배출 집약도 대신 총배출량로 평가하면 이러한 기업의 노력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총배출량은 기업의 매출 증감과 연동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성장하고 매출액이 증가하면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도 불구하고 총배출량은 늘어난다. 반대로 경기 침체기에는 매출 감소로 총배출량도 함께 감소한다.

‘한국의 기후 리더’는 기후 변화 대응 선도 기업을 선정한다는 취지에 맞게 온실가스 배출 집약도 외에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우선 한국ESG기준원(KCGS, 구 한국기업지배구조원) 평가에서 환경 등급 B 이하 기업과 2018년 이후 환경 관련 사고 유발 기업은 최종 명단에서 제외했다. 또 배출 집약도가 개선됐더라도 총배출량이 증가한 기업은 제외했다.

글로벌 이니셔티브는 배출 집약도 개선보다 절대 배출량 감축을 중시하는 추세다. 과학 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SBTi), 기후 변화 관련 재무 정보 공개 협의체(TCFD) 등도 기본적으로 ‘절대 배출량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배출 집약도를 개선했더라도 총배출량이 증가하면 결과적으로 전 지구적 차원의 기후 변화 완화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일차적으로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대건설 1위…주요 대기업 대거 탈락

이번 조사에서는 33개 기업이 ‘한국의 기후 리더’에 선정됐다. 온실가스 배출 집약도 개선과 총배출량 감축 등 까다로운 기준을 모두 통과한 기업이다. 선정 결과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기존에 기후 변화 대응이 우수하다고 평가받은 주요 대기업이 모두 탈락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포스코 등 한국 경제와 수출을 이끌고 있는 주요 제조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는 기후 위기 시대를 맞은 한국 경제의 취약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올해 ‘한국의 기후 리더’ 1위는 현대건설이 차지했다. 2018~2020년 온실가스 배출 집약도가 48.91% 감소했다. KCC(-43.95%)가 2위에 올랐고 LG이노텍(-35.00%)과 DB하이텍(-31.66%)이 뒤를 이었다.

업종별로 보면 금융은 삼성생명(5위, -25.99%)이, 물류는 한진(7위, -23.93%)이, 생활 소비재는 LG생활건강(10위, -18.72%)이, 식음료는 하이트진로(11위, -18.58%)가 선두에 올랐다. 100만 톤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한 기업 중에서는 현대차(9위, -20.97%)와 LG전자(14위, -16.48%)가 두각을 나타냈다.

김태한 한구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은 “한국 기업들이 넷 제로 목표를 발표하고 이행에 힘쓰고 있지만 배출량이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며 앞으로도 현재와 같은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감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ESG 공시 표준화·의무화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한국에서도 스코프 3(공급망을 포함한 총 외부 배출)를 산정하고 글로벌 기준에 맞춰 연결 기준 지표를 공개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내년 조사에서는 더 많은 기업이 조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ESG리뷰]한국의 기후 리더 33…삼성전자 등 대거 탈락 '탄소 중립 험난'
<돋보기> ‘기후 대응 선도’ 톱 4 기업의 혁신 전략
1위 현대건설 : 스코프 3 배출량 공개

현대건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5년 대비 연간 2.1%를 지속적으로 감축하겠다는 공격적 목표를 세웠다. 2045년까지는 연간 4.2%로 감축량을 대폭 강화한다. 현대건설은 스코프 1(직접 배출)·2(전력 사용 등 간접 배출)뿐만 아니라 스코프 3(공급망을 포함한 총외부 배출)까지 공개하고 매년 온실가스 절감량을 함께 공시하며 투명한 소통을 이어 가고 있다.

현대건설의 탄소 경영은 꾸준히 선두에서 달려왔다. 2012년 전 세계 건설사 최초로 에너지 경영 시스템 국제표준인증(ISO5-0001)을 획득한 것을 시작으로 현장별 온실가스 발생량 예측과 발생량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기존 석탄 화력 조직은 신재생에너지 부문으로 개편해 포트폴리오도 적극 전환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탄소 중립 대응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더욱 적극적인 탄소 중립 이행을 약속했다.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기술 개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6월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전해 기반 수소 생산 기지 구축 사업 공모에 최종 선정됐다. 사업을 위해 2.5MV 규모의 수소를 하루 1톤 이상 생산·저장·운송이 가능한 한국 최대 상업용 청정 수소 생산 기지를 2024년까지 전북 부안에 조성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 탄소 포집 및 활용 기술(CCU) 국책 과제 주관 연구·개발 기관에도 선정돼 평택수소특화지구에서 현장 실증을 거친 후 연간 100만 톤급 상용화 공정 설계 수행을 통해 기술을 내재화할 계획이다.

2위 KCC : 사업장별 마스터플랜

KCC는 온실가스 배출 개선 비결로 사업장의 연료 사용 데이터 취합, 사업장·부서별 에너지 및 온실가스 배출 목표 설정 및 관리 등 데이터 기반의 철저한 관리를 꼽았다. KCC는 제품 생산 및 공장 운영을 위해 전기, 액화천연가스(LNG), B-C유 등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며 주요 온실가스 배출 원인은 공장 생산 설비와 유틸리티 설비 운영을 위한 화석 연료와 전기다.

KCC는 사업장별로 온실가스 감축 마스터플랜을 도입하고 연도별 목표를 수립해 달성하기까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주요 목표는 배출권 거래제 전략 수립과 시스템 도입, 고효율·에너지 절감 제품 개발 등이 있다.

KCC ESG팀 관계자는 “KCC는 생산 효율 향상이 곧 에너지 소비 축소와 연결된다는 접근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대응해 왔다. 전 사업장의 발광다이오드(LED) 등을 교체하고 펌프와 유틸리티 설비에 인버터를 설치하는 등 에너지 전환책을 10여 년 전부터 도입했다”며 “향후 보일러 등을 비롯한 공용 시설의 무탄소 기술 활용, 탄소 포집 기술 도입 등을 통해 2050 넷 제로 달성에 적극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개정·시행된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등 국내 환경 규제치를 모두 충족해 친환경성을 강화한 KCC의 전기차용 저온경화 크리어 도료.사진 제공=KCC
최근 개정·시행된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등 국내 환경 규제치를 모두 충족해 친환경성을 강화한 KCC의 전기차용 저온경화 크리어 도료.사진 제공=KCC
3위 LG이노텍 : 2030년 100% 재생에너지 전환

LG이노텍은 2040 넷 제로를 선언하고 글로벌 기조보다 빠른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30년까지 전 세계 사업장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LG이노텍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90%가 전력에서 나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공격적인 목표다. ‘폐기물 매립 제로’ 인증을 통해 매립 폐기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대응도 이어 간다. 업무용 차량 역시 100% 무공해 차량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협력사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확장하기 위해 온실가스, 환경, 안전 보건 등 자체 체크리스트 평가와 현장 방문 컨설팅을 지원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환경 영향성 평가(LCA)를 통해 제품 개발부터 구매, 품질, 제조 전 과정의 온실가스 배출량 데이터를 산정하고 관리한다. 이후 제삼자 검증을 통해 신뢰성까지 확보한다.

4위 DB하이텍 : 공정가스 배출 공격적 개선

DB하이텍은 환경 안전 보건(ESH) 전담 조직을 별도로 마련하고 환경과 안전·소방, 보건에 대한 선도적 대응을 이어왔다. 반도체 세정에 사용되는 공정 가스의 배출량에 대한 공격적 개선이 눈에 띈다.

DB하이텍은 이를 축소하기 위해 매년 온난화지수(GWP)가 낮은 가스로 전환하는 방식을 선택하거나 공정 내에서 발생하는 폐가스 처리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 저감 장치의 효율성을 개선하거나 공정 내 유해 가스를 제거하는 플라스마 스크러버를 사용하는 등 전략을 마련해 실천했다. 에너지 전환 차원에서는 사업장 내 친환경 에너지 전환과 함께 에너지 절감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온실가스 저감 목표에 따라 DB하이텍의 직접 배출량과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생산량 증가와 무관하게 감소하는 추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402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