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련된 장인들이 바느질 없이 가죽끈 엮어 만들어…로고도 없지만 20년 넘게 사랑받아

류서영의 명품이야기/보테가 베네타 ①
보테가 베네타의 까바백 (사진 ①)
사진=www.bottegaveneta.com
보테가 베네타의 까바백 (사진 ①) 사진=www.bottegaveneta.com
미국의 여론 조사 업체인 ‘럭셔리 인스티튜트’가 2006년 4월 소비자 브랜드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보테가 베네타는 에르메스·샤넬·루이뷔통·구찌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보테가 베네타가 생산하는 가방은 그 흔한 로고도 새겨 넣지 않는다. 이 가방의 가격은 최저 150만원에서 라지 까바백(사각형의 양가죽으로 만든 조금 큰 사이즈의 토트백, 사진 ①)은 1200만원까지 한다.

보테가 베네타의 대표 브랜드인 까바백은 한때 한국에서는 ‘청담동 여자들의 백’으로 입소문 나기도 했다. 바느질 선 없이 손으로 엮어 만드는 장인 정신이 강한 느낌은 청담동 여자들에게 매력적이었다. 얼마 전 ‘뜻밖의 여정’이란 TV 프로그램에서 배우 윤여정 씨가 이 까바백을 든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보테가 베네타의 공동창업자  렌초 첸자로 
사진 출처=world Press.com
보테가 베네타의 공동창업자 렌초 첸자로 사진 출처=world Press.com
가죽 공예로 잔뼈 굵은 친구 두 명 의기투합

까바백은 특별한 장식 없이 고급스럽고 유행을 타지 않는 장점이 있다. 미니 까바, 미디엄 까바, 라지 까바 등 3종류로 출시되고 있고 겉은 양가죽을 인트레치아토 기법으로 만들고 안감은 스웨이드를 사용한다. 장인들은 나무틀에 가죽을 고정해 가방을 제작하기 때문에 까바백의 옆선에는 봉제선이 없다. 모든 까바백에는 일련의 고유 번호가 부착돼 있고 바구니 같은 간단한 모양에 손잡이 두 개만 달려 있는 토트 스타일이다. 까바백은 보테가 베네타의 고도로 숙련된 장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2001년 발표된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보테가 베네타는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비첸자에서 1966년 미켈레 타데이와 렌초 첸자로가 함께 만든 브랜드다. 두 사람은 10대부터 고향인 비첸자에서 가죽 공예로 잔뼈가 굵었다. 보테가 베네타라는 브랜드 이름은 ‘베네토의 아틀리에’란 이탈리아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보테가 베네타의 작업장에서는 수작업으로 가죽을 잘라 바느질하지 않고 가죽을 엮어 가방을 만들었다.

이렇게 가죽끈을 하나하나 엮어 만든 기법을 일명 ‘인트레치아토(이탈리아어로 ‘땋는다’라는 의미)’라고 한다(사진 ②). 이 기법은 가죽의 내구성을 향상시켜 주고 훗날 보테가 베네타의 장인 정신이 깃든 상징적인 요소가 됐다. 인트레치아토 기법의 가방들은 당시 새로우면서도 고급스러운 것을 찾던 상류층 소비자들의 취향에 딱 맞았고 큰 인기를 얻었다. 또 로고를 배제한 디자인은 보테가 베네타만의 특징으로 자리 잡아 나갔다. 브랜드를 시작한 지 5년 후인 1971년 광고에는 이런 절제된 브랜드의 특성이 잘 나타나는 광고가 있었다.
인트레치아토 기법으로 만든 가방(사진 ②)
사진출처=Bottega veneta
인트레치아토 기법으로 만든 가방(사진 ②) 사진출처=Bottega veneta
앤디 워홀, 엘튼 존, 스트라이샌드 단골 고객

‘당신의 이니셜만으로 충분할 때(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라는 광고 문구는 브랜드 로고나 브랜드 이름이 보이지 않아도 충분히 고급스러워 보일 수 있다는 보테가 베네타의 브랜드 철학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큰 인기를 얻은 보테가 베네타는 해외에 진출해 1970년 프랑스와 독일에 매장을 열었고 1974년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단독 매장을 오픈했다. 뉴욕 매장은 이탈리아 스타일을 느낄 수 있도록 카펫은 물론 샹들리에도 이탈리아 무라노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가져왔다. 미국에서 이국적인 이탈리아 스타일이 느껴지도록 한다는 취지에서다.

자가용 제트기나 호화 크루즈를 타고 세계 여행을 하던 젯셋족 사이에서도 보테가 베네타는 선호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가죽을 하나하나 엮어 만든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가죽 가방들은 도심에서뿐만 아니라 휴양지의 해변에서도 멋진 룩으로 연출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앤디 워홀(팝 아티스트)과 함께 뉴욕의 나이트 클럽인 ‘스튜디오 54’를 드나들던 친구들도 보테가 베네타를 좋아했다. 일설에 따르면 앤디 워홀이 크리스마스 쇼핑을 보테가 베네타 뉴욕 매장에서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앤디 워홀은 1980년 보테가 베네타를 주제로 한 단편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밖에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보테가 베네타가 소품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팝스타 엘튼 존이 뉴욕 매장을 즐겨 찾으면서 보테가 베네타의 인지도는 더욱 높아졌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앨범 판매량을 기록한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한 할리우드 스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또한 보테가 베네타의 주요 고객이었다.
보테가 베네타 가방  만드는  방법 
사진 출처=worldPress.com
보테가 베네타 가방 만드는 방법 사진 출처=worldPress.com
수공 제조로 대량 생산 못해 한계 부닥쳐

하지만 이러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보테가 베네타는 일일이 손으로 가죽을 엮어 만들어야 하는 작업의 특성상 생산 물량이 적은 한계가 있었다. 사업체는 대규모로 발전할 수 없었고 소규모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후반 브랜드의 창립자인 렌초 첸자로는 브랜드를 떠나 스페인의 가죽 브랜드인 로에베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다. 얼마 뒤 브랜드의 창립자인 미켈레 타데이 또한 보테가 베네타를 떠났다.

보테가 베네타의 새 주인은 미켈레 타데이의 전처였던 라우라 몰테도다. 몰테도는 새 남편 비토리오 몰테도와 함께 뉴욕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1980년 보테가 베네타를 인수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다. 그녀는 의욕적으로 보테가 베네타 브랜드를 운영하기 위해 이탈리아 비첸자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하지만 역시 이전의 한계에 또 부닥쳤다. 창업자인 전 남편이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수공으로 만드는 가방의 특성상 물량을 증가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또 무리하게 제품 라인을 확장시키다 보니 브랜드의 정체성을 잃게 됐다. 1990년대 보테가 베네타는 ‘절제미’로 대표되던 브랜드 고유의 미학과 철학도, 방향성도, 명성도 잃게 됐다.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