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회사 앞 서소문공원에 갑니다. 잔디도 밟고 나무도 보며 공기도 느껴 봅니다. 마지막 발걸음을 멈추는 곳은 공원 안에 있는 탑. 그 앞에 서서 순교자들의 이름을 다시 읽습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김아기·김업이·박큰아기 등.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들이 이름 지어 줄 여유도 없었던 이들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천주교 순교 성인이 됐을까. 소설가 김훈은 ‘흑산’에서 이유를 설명합니다. 대략 이랬던 것 같습니다. “이름없는 이들은 누구를 부를 수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마음껏 부를 수 있는 누군가가 나타났다. ‘주여’.” 언제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의 얘기를 모두 할 수 있었던 주님을 위해 목숨을 아낌없이 내놓았다는 얘기입니다. 잠시 그들의 삶을 상상하다 보면 ‘나의 지치고 힘든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이릅니다. 잠깐 눈을 감았다 회사로 돌아옵니다. 비록 냉담 생활 20년이 넘었지만….

삶과 마음으로 얘기를 시작한 것은 앞으로 한경비즈니스의 편집 방향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직장인들의 파트너, 지식과 문화와 마음의 위로가 한 권에 담긴 경제 주간지’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6개월간의 실험에서 확신을 얻었습니다. ‘우영우를 읽는 법’이라는 커버스토리에 밀리의서재 독자들은 몇 주 동안 전체 매거진 1위라는 타이틀을 달아주셨습니다. ‘직장인 마음의 병,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를 썼을 때는 많은 분들이 댓글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왜 다시 동네책방인가’란 제목의 책자도 밀리의서재 1위에 올랐습니다. 문화 칼럼 ‘컬처 인사이트’도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경제 매거진 본연의 기사에도 많은 응원이 있었습니다. ‘금의 배신’, ‘Fed에 대하여’, ‘세계화의 종말 등 거시 경제 기사도 많이 읽은 기사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지식·문화·마음의 위안,재테크까지 직장인들의 파트너가 되고자 합니다.

이런 취지로 몇 가지 코너를 신설했습니다.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안주연의 ‘다시, 연결’이란 칼럼으로 직장인들의 마음의 상처를 쓰다듬어 주기로 했습니다. 최정봉 전 뉴욕대 영화이론과 교수는 ‘몸의 정치경제학’이란 코너를 연재합니다. 몸을 둘러싼 담론을 정치경제학적 틀로 읽어 보는 시도입니다. 한경무크 4명의 기자는 ‘MZ세대가 사랑하는 공간’을 게재할 예정입니다. 이밖에 더 편히 읽을 수 있도록 활자체도 바꿔봤습니다.

이번 주 커버스토리 키워드도 마음입니다. ‘마켓 셰어(market share)보다 마인드 셰어(mind share), 어떤 브랜드가 마음을 파고드는가’라는 제목은 책에서 따왔습니다.

이 주제를 택한 것은 다가오는 경제 위기라는 상황과 맞닿아 있습니다. 불황은 지갑을 닫게 만듭니다. 소비자들은 꼭 필요하거나 마음이 간절히 원하는 브랜드가 아니면 소비하지 않습니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파고든 브랜드는 위기에서 견디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설명이 필요없을 듯합니다. 이런 브랜드는 유무형의 정치적 공격이나 위기에서 버텨내는 내성이 강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면교사의 사례는 롯데입니다. 2016년 검찰은 롯데에 대한 저인망식 압수 수색을 한 후 총수를 구속했습니다. 이를 빌미로 사드 기지도 빼앗아 버렸습니다. 롯데는 중국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롯데 경영진의 죄목이 뭔지 기억도 잘 못합니다. 샅샅이 뒤졌지만 크게 나온 게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아무도 롯데 편을 들어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독사 같은 권력 기구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얻지 못하면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또 다른 변수는 소비 문화의 변화입니다. 1990년대 소비는 자기 과시적이었습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의 소비 코드는 실용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가성비와 가심비란 코드도 등장했습니다. 그다음은 브랜드를 인격화하는 흐름입니다. 기업의 히스토리를 탐구하고 자신의 소비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비자의 탄생이라는 시대에 맞는 단어가 마인드 셰어이기도 합니다. 최근 한국 사회는 ESG 열풍 속에 소비자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기업이 쏟아지는 아이러니를 겪고 있습니다. 이 흐름이 멈추고, 감동을 주는 기업의 스토리를 더 많이 전달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끝으로 힘들고 지칠 때 서소문역사공원에 들러 나무·잔디·바람·사람을 느껴보시길 바라며 글을 닫습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