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국회 한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허송…경제 살리기 법안 뒷전

홍영식의 정치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11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기국회 대책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11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기국회 대책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가 실종됐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여야는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마주 달리는 기차와 같다.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 중 일어난 ‘비속어 발언’ 파문에 이어 검찰의 칼날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본격적으로 겨누면서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결사 옹위’를 외치면서 이 대표 방탄에 나서고 있고 국민의힘은 정국 혼란을 수습할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올해 국정 감사는 여야 간 싸움밖에 보여주지 못했고 앞으로 남은 정기 국회도 생산적인 활동은커녕 여야의 극한적인 대치만 남아 있을 뿐이다. 정치판엔 조롱과 가십성 발언들만 난무하고 생산적인 토론은 찾아볼 수 없으면서 숙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고 있다.

수출이 10월 2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우리 경제에 초비상이 걸렸는 데도 여야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특히 수출 대들보인 반도체(-17.4%)와 석유화학(-25.5%), 철강(-20.8%) 등의 감소 폭이 커 이러다가 성장 엔진이 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주력 제품의 수출 감소는 연관 산업에 주는 타격이 커 경기 침체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역 적자가 지속되면 고환율을 더욱 부추기고 외국인 자금 이탈을 가속화해 예기치 못하는 위기를 부를 수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을 돌아보면 답답하다. 기업 노력만으로는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법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줘야 마땅하지만 거꾸로 가고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와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입법안들을 연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 것은 이 대표와 그 측근들의 의혹이다. 이런 의혹들은 민주당과 정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다. 이 대표가 성남 시장할 때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표 개인의 의혹과 당·정치와 분리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대통령의 국회 예산안 시정 연설 보이콧을 시작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에 대해 건건이 제동을 걸 태세다.
민주당, 법인세·반도체 지원 등 건건이 제동

민주당은 본격 심사에 들어간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 부수법안에 대해서도 선전 포고를 한 상황이다. 초유의 대통령 시정 연설 불참에 이은 대정부 투쟁 2탄이다. 지도부의 잇단 결기와 각오를 들어보면 야당으로서의 건전한 견제와 감시 이상을 예고하는 것 같다. 정부의 감세안을 ‘초부자 감세’로 규정짓고 막아선다는 방침을 정한 것부터 그렇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나라 살림 정책에 맞지 않는 초부자 감세를 반드시 막아내는 싸움을 해야 한다”고 했다.

초부자 감세 첫 타깃은 종합부동산세 부담 완화 법안이다. 민주당의 반대로 국회 처리가 불발될 가능성이 높다. 종부세율은 문재인 정부 이전엔 1주택자·다주택자 모두 0.5∼2.0%의 세율을 적용했다. 하지만 2018년 세법 개정으로 과세가 강화되면서 1주택자 기본 세율은 0.6∼3.0%, 다주택자는 1.2∼6.0%로 올랐다. 납세자들의 반발이 커지자 윤석열 정부는 기본 공제액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리고 세율은 다주택 여부를 가리지 않고 0.5∼2.7%를 적용하는 내용의 종부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올해 한시적으로 1주택자의 종부세 공제액을 11억원에서 14억원으로 올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반대에 막혀 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과 지방 선거 때만 해도 종부세 부담 완화를 공약해 놓고 선거에서 지자 돌변한 것이다.

법인세율 인하(최고 세율 25%에서 22%로)와 기업 상속 공제 확대 등에 대해서도 초부자 감세 저지 목록에 올라 있다. 하지만 ‘초부자 감세’ 프레임부터 잘못됐다.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이 40%에 달한다. 세제 변화는 고소득자와 대기업들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2020년 기준 소득 상위 10%가 소득세의 79%를 냈고 법인세 상위 10% 기업이 97%를 납부했다. 그런데도 초부자 감세를 외치는 것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갈라 놓으려는 정치적 의도로 볼 수 있다. 민주당은 1주택자 종부세 과세 기준을 14억원으로 높이는 것은 부자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내년에 12억원으로 다시 내려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 5년간 국민 세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을 완화하기 위한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다.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수출이 급감하는 것을 고려하면 시설 투자 세액 공제 확대, 인재 양성 등을 담은 반도체지원특별법 처리가 시급하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 8월 초 국회에 제출된 이후 ‘초대기업에 특혜’라는 이유로 소극적 자세를 보이면서 3개월 동안 뒷전으로 미뤘다.

농업 혁신을 막는 문제의 양곡관리법, 노조의 불법 행위에 따른 피해에 대해 기업의 손해 배상 청구를 봉쇄하는 ‘노란봉투법’, 감사원의 독립성을 박탈하는 ‘감사완박법(감사원법 개정안)’, 나라 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기초연금 인상 등을 거야(巨野)’의 힘으로 밀어붙일 태세다. 정치 보복을 막겠다는 핑계로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폐지)법’ 국회 통과를 강행하고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 반기업법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면서 민심 이반을 부른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또 입법 폭주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거대 야당 협조 끌어낼 전략 안 보여
정진석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11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정국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진석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11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정국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정부는 정기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많은 법안들을 국회에 제출해 놓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은 별다른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소수 여당의 현실을 인정한다면 이재명 대표 수사와 별개로 거대 야당의 협조를 어떻게 끌어내야 할지 전략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야당과 대립각만 높일 뿐 아무런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 ‘비속어 발언’ 문제만 해도 그렇다.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 국회를 모욕한 것이 맞다면 사과부터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시종일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야당에 대여 투쟁의 강도를 높이는 빌미만 주고 말았다.

여야 간 이런 극한 대치로 인해 예산안의 법정 기한(12월 2일) 처리도 힘들어 벌써부터 준예산 편성 얘기가 나온다. 부동산 관련법, 각종 세법 등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정책을 뒷받침할 각종 법안들이 이번 정기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다면 취임 첫해부터 국정은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높다면 여론에 기댈 수 있지만 그렇지도 못한 형편이다.

국민의힘은 집권 이후 4개월 동안 집안싸움을 하느라 집권 여당의 기능을 상실했다. 선거에 연승한 정당이 두 번이나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종부세 부담 완화와 법인세 인하, 연금 개혁, 반도체 입법 지원 등 윤석열 정부가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현안을 국회에서 뒷받침하는 데 아무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세제 개편 관련 법안들을 정기 국회 10대 중점 추진 법안에서 아예 제외해 버렸다.

거대 야당은 ‘이재명 방탄’을 위해 똘똘 뭉쳐 국정에 태클을 걸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민주당의 기초연금 40만원으로 인상 공약을 ‘선심성’이라고 비판한 국민의힘도 같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별다른 재원 대책 없이 아동 수당 확대, 사병 월급 급격한 인상 등을 추진하면서 ‘선심성’에는 야당 따라가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