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의 경솔한 ‘트윗’ 하나로 바이낸스와 갈등…열흘 만에 파산

‘암호화폐 거인’ FTX 제국은 왜 몰락했을까[비트코인 A to Z]
2022년은 크립토업계에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특히 한때 슈퍼스타로 주목받던 시장 참여자들이 허무하게 몰락하는 일이 허다했다. 테라(루나) 사태로 암호화폐 시장 전반이 출렁였고 3AC와 셀시어스가 파산했다. 최근 발생한 FTX 파산은 업계에 다시 한 번 큰 충격을 주고 있다. FTX는 특정 지역과 섹터뿐만 아니라 거래소·헤지펀드·벤처 투자·레이어1 등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거인이었기 때문이다. FTX 사태의 현황을 알아보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는지 알아보자.조 바이든 대통령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프리드먼FTX는 제인스트릿 트레이더 출신의 샘 뱅크먼 프리드먼이 2019년 창업한 거래소다. 당시 글로벌 크립토 거래소는 두 가지 생존 방식이 있었다. 하나는 바이낸스처럼 무국적 거래소로 활동하며 최대한 규제를 피해 공격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체 토큰을 발행하고 파생 상품 거래를 지원하면서 자기 자본으로 투자한 토큰을 자체 거래소에 상장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코인베이스처럼 지역 규제 당국과 협력하며 소극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방식이다. FTX는 영리하게 중간 어딘가를 공략했다.

바이낸스와 마찬가지로 무국적 거래소를 지향하며 자체 거래소 토큰인 FTX 토큰(FTT)을 발행하고 파생 상품을 론칭하며 공격적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했다. 동시에 미국 정계에 로비하며 정치인과 규제 당국과의 관계도 돈독하게 쌓았다. 실제로 프리드먼 FTX 최고경영자(CEO)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가장 많은 기부금을 후원한 인물 중 한 명이다.

프리드먼 CEO는 FTX 거래소 창업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프리드먼 CEO의 뿌리는 그가 2017년 창업한 프랍트레이딩하우스알라메다리서치다. 알라메다리서치는 유동성 공급, 트레이딩을 시작으로 벤처 투자까지 확장하며 크립토업계에서 입지를 공고히 했다. 알라메다리서치와 FTX는 승승장구하며 프리드먼 CEO의 자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프리드먼 CEO는 약 30세의 어린 나이에 억만장자에 올랐고 소탈해 보이는 라이프스타일로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프리드먼 CEO는 순식간에 업계의 유명 인사가 됐다.

프리드먼 CEO의 성공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솔라나를 주요 레이어1 블록체인으로 키우는 데 기여하며 트레이더가 아닌 빌더로서의 입지도 공고히 했다.

이더리움보다 빠르고 저렴한 조건을 자랑하는 솔라나는 크립토 시가 총액 톱 10에 들며 이더리움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비록 솔라나 네트워크가 다운되며 비판을 받는 일도 있었지만 어쨌든 솔라나는 무수히 많은 잠재적인 ‘이더리움 킬러’ 중에서 가장 위협적인 블록체인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사실이다.

프리드먼 CEO는 크립토업계에서만 비즈니스를 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올드머니에서 자금을 유치하고 실리콘밸리, 월스트리트 기관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블랙록·세콰이어캐피털·타이거글로벌·소프트뱅크 등 쟁쟁한 투자사들이 FTX의 주주로 참여한 것이다. 또 2022년 약세장에서 프리드먼 CEO는 백기사를 자처하며 부도 위기의 블록파이·보이저디지털 등에 자금을 수혈했다.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프리드먼 CEO를 JP모간에 비유하기도 했다.

프리드먼 CEO는 FTX 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거래량 기준 세계 3위 거래소 FTX(1위는 바이낸스, 2위는 코인베이스), 트레이딩알라메다리서치, 레이어1 블록체인 솔라나, 벤처 투자 FTX벤처스까지…. 그런데 FTX 제국은 한순간에 몰락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재무 건전성 문제 제기와 바이낸스와의 갈등FTX 제국의 재무 건전성에 의문이 제기된 것은 몇 주 전이다. 예를 들어 코인데스크는 알라메다리서치의 자산에서 FTX 제국과 연관된 토큰-이를테면 거래소 토큰인 FTT와 FTT를 담보로 한 토큰, 솔라나 계열 토큰 등등-이 유의미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통상적으로 크립토에서 가장 블루칩으로 취급 받는 비트코인 역시 가격 변동성이 높기 때문에 비트코인을 유의미한 비율로 보유한 기업은 암호화폐 시장 등락에 따라 재무 건전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검증되지 않은 알트코인이, 더군다나 사실상 한 기업이 발행한 알트코인들이 재무 제표의 상당수를 차지한다면 재무 건선성이 멀쩡할 리 없다. 왜냐하면 만약 FTT를 비롯한 FTX 제국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토큰 가격이 하락하면 알라메다리서치가 취한 수많은 포지션이 청산되고 알라메다리서치와 연계된 FTX도 재무상에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립토 트위터를 중심으로 FTX 제국이 위험해 처할 수 있다는 이슈가 제기되자 프리드먼 CEO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사태를 무마하려고 했다.

그런데 FTX 제국에 균열을 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FTX의 최대 경쟁사 바이낸스의 장펑자오 CEO가 FTX에 투자하고 받은 5000억원 이상의 FTT를 마켓에 덤핑하겠다고 트위터에 공개 선언한 것이다. 장 CEO의 이런 행보는 한때 새끼 호랑이(참고로 바이낸스는 FTX 초기 투자자 중 하나였다)였지만 너무나 커져 버린 프리드먼 CEO와 FTX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미국 정계와 네트워크가 좋은 FTX는 바이낸스의 미국 진출을 꾸준히 견제했고 프리드먼 CEO는 장 CEO를 조롱하는 듯한 트윗을 올린 적이 있다. “앞으로 업계를 대변한다는 것이 흥분된다! 아, 근데 그(장 CEO)가 워싱턴D.C.에 출입할 수 있는 것 맞지?”

프리드먼 CEO가 위 트윗을 올린 이후 장 CEO는 프리드먼 CEO를 의식하며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FTT를 유동화하는 것은 루나 사태에서 배운 사후 회수 위험 관리일 뿐이다. 우리는 이전에 지지했다. 하지만 이혼 후 사랑하는 척할 수는 없다. 우리는 누군가와 척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업계 종사자의 뒤에 칼을 꽂는 로비를 하는 자들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바이낸스가 FTT 공개 덤핑을 선언하자 시장은 요동쳤다. 왜냐하면 FTT 가격이 하락하면 알라메다리서치의 재무 건전성이 나빠지고 불안을 느낀 고객들이 FTX 거래소에서 자산을 출금하기 시작하면 일종의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 CEO의 FTT 덤핑 트윗에 알라메다리서치 CEO는 FTT 매도 물량을 받아낼 수 있다고 응수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고객들은 앞다퉈 FTX에서 자산을 인출했고 며칠 사이에 7조원이 넘는 금액이 FTX 거래소에서 유출됐다. 결국 FTX는 자금 인출을 일시 중단했고 지급 불능 상태임이 드러났다. 바이낸스는 FTX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인수 계약 검토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리드먼 CEO가 항복한 셈이다. 프리드먼 CEO는 트윗에 이렇게 적었다. “장 CEO와 바이낸스, 그리고 우리의 지지자들에게 특히 감사하다.” FTX 제국을 세운 황제가 장 CEO에게 무릎을 꿇은 순간이다.

하지만 바이낸스는 불과 하루 만에 공식 성명을 통해 FTX 문제가 통제 가능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인수 검토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시간을 끌던 프리드먼 CEO와 FTX 제국은 결국 파산 신청을 했고 프리드먼 CEO의 자산은 불과 며칠 만에 증발했다. 설상가상으로 FTX 거래소에 묶여 있던 고객들의 자금이 해킹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FTX는 업계에서 도저히 재기가 불가능한 브랜드가 됐다. 불투명한 운영과 빈약한 위험 관리, 매니지먼트의 경솔한 언론 플레이로 FTX 제국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지난 4~5년간 업계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블랙 스완이 처음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014년 마운트 곡스 해킹, 2016년 더다오 해킹과 이더리움 하드포크, 2017년 비트코인 하드포크, 2021년 중국 비트코인 채굴 금지, 2022년 테라(루나)·3AC·셀시어스·FTX 파산 등등. 당대의 슈퍼스타와 제국이 몰락하면 업계 전체가 망할 것으로 우려되지만 크립토 시장은 바퀴벌레 같은 회복 탄력성을 가졌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크립토만큼 ‘안티 프래질’이 명백하게 작동하는 시장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번 FTX 제국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크립토업계는 그 어떤 업계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동시에 바보 같은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탐욕의 정글이다. 놀라운 점은 한 개인의 명석함과 우둔함 역시 놀라울 정도로 극단적이라는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성공한 사람일수록 이런 경향이 짙다. 결국 자신의 모자란 점을 인정하고 경솔한 언행을 최소화하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한중섭 ‘비트코인 제국주의’, ‘넥스트 파이낸스’,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