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종부세 부담 완화·법인세 인하 등 19개 법안 제출…野 “초부자 감세” 반대, 처리 불투명

홍영식의 정치판
불붙은 국회 세법 전쟁, 감세 모두 막는 민주당[홍영식의 정치판]
정기 국회가 끝 무렵으로 가고 있지만 법안 논의와 예산안 심사가 지지부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검찰 수사와 이태원 참사를 물고 늘어지고 있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거야(巨野)의 힘에 눌린 채 추진 동력을 상실한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윤석열 정부가 임기 첫해 ‘민간 주도 성장’과 ‘경제 활성화’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내놓은 세법 개정안은 물 건너가거나 애초 의도에서 많이 벗어난 채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가 이번 정기 국회 통과를 목표로 국회에 제출한 세법 개정안은 19개다. 거대 야당은 ‘초부자 감세’ 프레임을 걸고 종합부동산세·법인세·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등 윤석열 정부의 핵심 법안에 대해 모두 반대하고 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60조원에 달하는 ‘초부자 감세’를 반드시 막아 제자리로 돌려놓겠다”고 했다. 세법 개정안들은 모두 내년 세입과 관련한 예산 부수 법안이다. 정부 뜻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당장 예산 집행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부동산 관련 세법은 종부세율 부담 완화, 다주택자 중과 제도 폐지 및 세율 인하 등이 핵심이다. 종부세율은 2018년 이전엔 1주택자나 다주택자 모두 0.5∼2.0%의 세율을 적용받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과세가 강화되면서 1주택자 0.6∼3.0%, 다주택자는 이보다 2배 높은 1.2∼6.0%의 중과 세율을 적용받도록 했다.

크게 늘어난 종부세 부담에 대해 납세자들이 집단적으로 행정 심판을 제기하는 등 반발이 거세지자 윤석열 정부는 기본 공제액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리고 세율은 다주택 여부에 관계 없이 0.5∼2.7%를 적용하는 종부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올해 한시적으로 1주택자의 종부세 공제액을 11억원에서 14억원으로 올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세제 개편안에 담았다.
“실거래가, 공시가보다 떨어진 곳도…종부세 내려야”

윤석열 정부는 고금리·고환율에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기업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감세를 통한 투자·고용 확대를 위한 법인세법 개정안도 제출했다. 법인세 최고 세율을 25%에서 22%로 내리고 중소·중견기업에 대해 과세 표준 5억원까지 10% 특례 세율을 적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4단계로 나눠져 있는 법인세 과표 구간을 매출액 200억원 이하 20%, 매출액 200억원 이상 22% 적용 등 2단계로 단순화했다.

중소·중견기업 지원책의 일환으로 가업 상속 공제 대상·한도를 확대하는 법안도 내놓았다. 가업 상속 공제 대상이 되는 중견기업 기준을 매출액 4000억원 미만에서 1조원 미만으로 확대했다. 공제 한도는 가업 영위 기간이 10년 이상일 때는 기존 200억→400억원, 20년 이상일 때는 300억→600억원, 30년 이상일 때는 500억→1000억원 등으로 올렸다. 피상속인의 지분 요건은 50%(상장사 30%)에서 40%(상장사 20%)로 완화했다. 사후 관리 기간은 7년에서 5년으로 줄였고 고용 요건 유지는 7년 통산 100%에서 5년 통산 90%로, 자산 유지 요건은 20%(5년 이내 10%)에서 40%로 각각 완화했다. 가업 승계 시 상속·증여세 납부 유예 제도도 신설했다.

금융투자소득세법 개정도 화두다. 금투세는 2020년 도입됐고 2023년부터 시행된다. 주식·채권·펀드·주가연계증권(ELS) 등에 투자해 발생한 수익에 대해 세금 20~25%를 매기는 것이다. 국내 주식은 5000만원까지, 해외 주식·채권·ELS 등은 250만원까지 비과세 대상이다. 윤석열 정부는 금융 불확실성을 고려하고 주식 시장 활성화를 위해 세제 개편안에서 금투세 시행 시기를 2025년으로 2년 미뤘다. 세제 개편안에는 국내 상장 주식 양도 소득세 대주주 기준을 고액 주주 기준 10억원에서 100억원 이상으로 완화했다. 증권거래세 인하와 가상 자산 과세 2년 유예안도 담겼다.

정부가 마련한 소득세법 개편의 핵심은 과세 표준 구간 조정이다. 소득세 최저 세율인 6%가 적용되는 과표 구간이 현재 1200만원 이하에서 1400만원 이하로 올라간다. 15% 세율이 적용되는 과표 구간은 1200만원 초과~4600만원 이하에서 1400만원 초과~5000만원 이하로, 24% 세율이 적용되는 과표 구간은 46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에서 50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로 조정된다. 총급여 1억2000만원이 넘는 고수익 노동자에 대해서는 근로 소득 세액 공제 한도를 5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축소했다. 식대 비과세 한도를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고 근로·자녀 장려금 지급액도 늘렸다.

이런 세법 개정안들이 정기 국회에서 통과할지는 흐릿하다. 우선 세법 개정안들을 논의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 구성부터 막혔다. 이 바람에 정기 국회 시작 두 달 반이 넘도록 법안 심사는 하나도 이뤄지지 못했다. 기재위 산하엔 조세소위·경제재정소위·예산결산심사소위 등이 있다. 핵심은 조세소위원장을 누가 맡느냐인데 여야는 힘 겨루기를 하다 11월 16일에야 소위를 구성했다.

법안마다 대립각이 뚜렷하다. 종부세 비과세 기준을 11억원에서 14억원으로 올리는 데 대해 민주당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됐다. 정부는 야당이 반대하자 종부세 과세 대상을 공시 가격 14억원 이상에서 12억원 이상으로 낮추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공정 시장 가액 비율 조정 폭(100→60%)이 크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전 종부세 부담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선거 패배 후 태도를 바꿨다. 이에 따라 올해 종부세 고지 인원이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기게 됐다. 더욱이 집값 하락세로 실거래 가격이 공시 가격에 육박하거나 그보다 더 떨어진 아파트 단지들이 속출하고 있어 조세 저항 움직임도 감지된다. 민주당은 반대 이유로 ‘부자 감세’를 내세웠지만 종부세를 내는 1주택자의 60% 정도가 연봉 5000만원 이하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민주당, 주식 수익 등 과세 금투세 유예 자중지란

법인세 최고 세율 인하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1%포인트도 낮춰 줄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법인세율을 내리면 세수 감소로 나라 재정이 흔들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법인세를 낮추면 일시적인 세수 감소는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증대된다고 주장했다. 법인세 최고 세율을 3%포인트 인하하면 경제 규모가 단기적으로 0.6%, 중·장기적으로 3.39% 성장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법인세 인하로 기업의 수익이 증가하면 배당·임금·투자 등이 늘어나 주주·노동자 등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도 했다. 민주당은 ‘재벌 특혜법’이라고 하지만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경감률이 높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가업 상속 공제 대상·한도 확대에 대해 민주당은 부의 대물림을 확대할 것이란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원활한 가업 승계를 도와 경영 일관성과 고용 유지를 통한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 어떻게 부의 대물림이냐며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당초 금투세 시행 유예에 대해서도 역시 ‘부자 감세’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가 제동을 걸면서 혼선을 겪었다. 그대로 시행된다면 2년 유예를 예상했던 투자자들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그렇지 않아도 악재가 쌓인 주식 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외국인은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역차별 논란도 있다. 이런 역풍을 우려해 이 대표가 “굳이 강행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반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유예 반대 방침을 굽히지 않으면서 자중지란이 일어났다.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