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에는 하이데거를, 짜증에는 장자를…열다섯 명의 철학자가 들려주는 지혜

[서평]
힘든 직장 생활을 철학으로 이겨 내는 법
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
필로소피 미디엄 지음 | 박주은 역 | 한국경제신문 | 1만6000원


사표를 쓸까, 말까. 저 동료는 왜 매일 불평일까. 저 상사는 왜 자꾸 날 이용하려 들까. 왜 내 성과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고민에 휩싸인다. 일은 따분하고 노동 시간은 길며 월급은 오르지 않는다. 정글의 투쟁 같기만 한 사내 정치는 어쩌면 이리도 꼴불견인지….

‘이렇게 일하며 사는 게 맞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 때쯤 주변을 둘러본다. 이럴 때 내게 현명한 조언을 해 줄 만한 멘토 한 명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동료든 선배든 친구든 상관없이 누구라도 말이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해 본들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너도나도 힘들다는 한탄과 버텨야지 어쩌겠느냐는 낙담뿐이다.

‘출근길에 니체, 퇴근길엔 장자’는 바로 그런 직장인들을 위한 책이다. 힘겨운 직장 생활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좀 더 지혜롭게 일할 수 있게끔 각자의 앞길에 손전등 하나를 비춰 주는 그런 스승과도 같은 책 말이다.

이 책에는 열다섯 명의 철학자들이 등장해 보통의 직장인들을 만난다. 월요일부터 주말을 기다리고 주말이 끝나기도 전에 월요일이 두려워지는 이른바 ‘월요병’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는 마르크스가 다가간다. 그리고 우리가 노동에서 만족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비정한 방식에서 찾고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해 말한다.

회사는 망하고 애인은 떠나가고…. 이제까지 익숙했던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리고 ‘이렇게 매일 괴롭게 일은 해서 뭐 하나’라는 부조리감에 빠진 직장인에게는 카뮈가 조언한다. ‘시시포스 신화’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카뮈는 현대의 직장인들에게도 ‘월급 받는 시시포스’의 운명을 읽는다. 매일 산꼭대기까지 거대한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시포스는 그 무의미한 행위를 어떻게 반복할 수 있었을까. 시시포스는 신이 그에게 부여한 운명과 돌을 밀어 올리는 형벌의 의의를 멸시하며 그 안에서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말의 의미를 찾아낸다. 그리고 사회가 정해 놓은 모든 사회적 기대, 외재적 가치, 성공의 테두리를 벗어날 것을 권한다. 이러한 정신적 반항이 판에 박힌 직장 생활을 되풀이하는 직장인에게도 삶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까.

에피소드를 하나 더 소개하자면, 이 책에는 바쁜 동료를 대신해 일을 도와주다가 결과가 좋지 않자 도리어 동료에게 원망만 듣게 되는 직장인도 등장한다. 그에게 지혜를 전할 철학자는 한비자다. 현실 속 사람들의 성향을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을 구축한 한비자는 우리에게 불필요한 도덕성의 갑옷을 벗어던지고 직장이라는 전쟁터를 똑바로 대면할 것을 일깨운다.

맹자는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 인(仁)”이라고 했는데 직장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서로를 인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까. 기대하기 힘들다. 한비자가 보기에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을 만났을 때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쪽은 대개 전자이고 직장 동료들이 내 생각까지 해 주길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는 직장인들이 흔히 느끼는 열다섯 가지 심리적 곤경을 다룬다. 걱정·불안·공포·부조리·혐오·불평·소진·용기·짜증·잔혹·낙담·분노 등이다. 그리고 각각의 심리에 하이데거·사르트르·마르크스·니체·카뮈·들뢰즈·칸트·손자·순자·장자·한비자·공자 등이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슬기로운 해석을 내려준다.

사실 철학은 우리에게 그리 가까운 주제가 아니다. 철학 자체가 난해하고 대중적으로 친근하지 않은 때문도 있지만 일반인이 철학을 이해할 기회도 흔하지 않다 보니 철학에 대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직장이라는 낯익은 공간을 배경으로 일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태도나 심리, 경향까지를 철학적으로 고찰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야말로 직장인을 위한 철학 안내서이자 심리 처방서라고 할 수 있다.

윤효진 한경BP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