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유동성 위기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사업 진행 과정의 잡음도 이어져

[글로벌 현장]
미국 온라인 중고차 매매회사 카바나의 차량 자동판매기.(사진=한국경제신문)
미국 온라인 중고차 매매회사 카바나의 차량 자동판매기.(사진=한국경제신문)
2015년 온라인 중고차 업체인 카바나가 미국 테네시 주 내슈빌에 대형 자동차 자동 판매기(벤딩머신)를 설치하자 업계의 찬사가 쏟아졌다. 더 이상 중고차 값을 흥정하는 데 진을 빼지 않아도 되는 상징물이자 카바나의 부상을 각인시켜 주는 기념비란 평가가 나왔다. 카바나는 현재 미국 내 32곳에 대형 자동차 자판기를 설치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해 온 카바나는 올해 백척간두에 서 있다. 최악의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주가는 전고점 대비 95% 넘게 떨어졌다. ‘중고차업계의 아마존’으로 불리던 카바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중고차의 아마존’ 카바나는 왜 몰락했나 [글로벌 현장]

비대면 경제와 팬데믹 슈퍼스타의 등장

카바나를 설립한 이는 어니스트 가르시아 3세다. 애리조나 주에서 상당한 규모로 중고차 사업을 영위하던 아버지(어니스트 가르시아 2세)의 조력을 바탕으로 온라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가르시아 3세가 30세 되던 해였다.

소비자들에게 차량 실물을 직접 보여주지 않더라도 360도 이미징 기술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카바나는 7일 이내 환불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소비자 신뢰를 쌓아 나갔다. 미국 내 300개 이상 도시에서 익일 배송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카바나가 뉴욕 증시에 입성한 것은 2017년 4월(티커 CVNA)이었다. 그 직후 공모 자금을 바탕으로 경쟁사이자 스타트업이었던 칼립소를 인수했다. 또 이듬해 스마트폰으로 증강현실(AR)을 구현할 수 있도록 카360이란 기술 기업을 사들였다.

카바나가 더욱 주목을 받은 것은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덕분이었다. 비대면 경제가 활성화하자 온라인 거래의 대표 주자들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줌비디오(화상 회의), 로블록스(게임), 로빈후드(온라인 증권) 등과 함께 ‘팬데믹 스타’로 떠올랐다.

감염 우려로 대중교통을 꺼리게 된 소비자들은 자동차 구매로 몰려 들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봉쇄와 원자재 값 급등, 반도체 공급 차질까지 맞물리며 신차 수급이 어려워지자 온라인 중고차를 찾는 소비자들이 급증했다.

카바나 매출 증가율은 분기마다 10~20%에 달했다. 이 회사 주가는 팬데믹 기간에만 4배 넘게 뛰었다.

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올해 상반기부터다. 미 중앙은행(Fed)이 제로 금리 시대를 접고 기준금리를 올리자 차량 수요가 눈에 띄게 줄었다. 신차는 물론 중고차 가격도 뚝뚝 떨어졌다. 차량을 구매하는 데는 목돈이 들기 때문에 자동차 대출 금리가 뛰면 수요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중고차 가격 동향을 실시간 반영하는 맨하임 중고차가격지수는 올 들어 15% 넘게 하락한 상태다. 맨하임 지수는 미국 내 중고차 딜러들이 매입하는 평균 가격을 지수화한 수치다.

중고차 시장의 경쟁이 심화한 것도 카바나엔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했다. 온라인 판매에 대한 기술적 장벽이 애초 높지 않았던 때문이다. 공급난을 겪어 온 완성차 업체들은 신차를 대량으로 찍어 내기 시작했다.

고객이 실행한 차량 대출을 담보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는 구조 역시 카바나 위기를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경기 침체와 함께 자동차 대출 관련 파생상품 수요가 끊기다시피 하자 카바나 ABS의 매력이 떨어졌다.

결정타는 카바나의 자체 유동성이다. 현금 흐름이 악화하면서 파산 가능성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지난 5월 중고차 경매 업체인 아데사의 미국 사업부문을 22억 달러에 인수한 뒤 원래 적자였던 재무 구조에 경고등이 켜졌다.

카바나는 아데사 인수 자금을 대출과 채권 발행을 통해 마련했다. 이에 따른 비용 부담이 연간 3억36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덩달아 커지는 구조다.

이 와중에 카바나 실적은 급전직하했다. 3분기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2.7% 쪼그라든 34억 달러였다. 작년 3분기 3200만 달러였던 순손실은 1년 만에 2억8300만 달러로 9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중고차 판매량은 약 13% 줄어들었다.

회사 측이 우여곡절 끝에 발행한 채권도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다. 32억7500만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금리가 연 10.25%나 되기 때문이다. 높은 이자 때문에 부채 악순환에 빠진 게 아니냐는 경고가 나왔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잡음도 적지 않게 발생했다. 올해 5월엔 일리노이 주가 카바나 사업권을 영구 정지했다. 차량 구매자에게 법적 기한 내 소유권 이전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펜실베이니아·미시간 등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불만이 제기됐다. 다양한 행정 제재가 내려졌다. 집단 소송도 잇따랐다.

대규모 감원에도 월가 “생존 여부 지켜봐야”

카바나도 잇달아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 5월 전체 인력의 12%인 2500여 명을 감원했다. 11월에는 둘째 대규모 해고를 실시했다. 총인력의 8%인 1500여 명에 달했다.

가르시아 3세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명확하게 답변하기 어렵다는 게 괴롭다”며 “거시 경제 환경이 악화한 가운데 미래 예측에도 실패했다”고 반성했다. 다만 “우리는 여전히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며 “비용 절감을 통해 이번 폭풍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의 평가는 냉정하다. 신용 평가 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 레이팅스는 카바나의 신용 등급 전망을 종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꿨다. “조만간 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카바나의 신용 등급은 이미 투기 수준인 ‘CCC-’다.

S&P 측은 “카바나는 전체 이익의 절반 이상을 대출과 같은 금융 상품에서 얻고 있는데 금리 상승과 함께 경쟁에서 점차 밀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중은행들이 훨씬 더 경쟁력 있는 차량 대출 금리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 투자은행 스티븐스의 대니얼 임브로 분석가는 “성장이 계속될 것이란 믿음 아래 과도한 인프라를 구축했던 게 실패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오펜하이머의 브라이언 네이글 분석가는 최근 고객들에게 보낸 투자 메모에서 “카바나의 단기적인 운영 및 재무 위험이 상당히 높아졌다”며 “주가가 단기간 내 회복될 가능성이 낮은 만큼 지금 투자하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팩트셋에 따르면 카바나가 안고 있는 부채는 총 60억~70억 달러 규모다. 빚이 이렇게 많은 데도 적자 폭이 되레 급증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에선 1년 내 카바나의 현금이 고갈될 수 있다는 경고가 적지 않다.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3억 달러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억 달러 규모의 부동산이 있지만 금방 처분하기 어렵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세란 점도 부담스럽다.

모간스탠리의 애덤 조나스 분석가는 “매출 감소와 비용 증가, 현금 고갈 등 3중고를 겪고 있다”며 “최악의 경우 카바나 주가는 10센트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바나의 주가가 1년 만에 95% 넘게 하락한 만큼 저가 매수 타이밍이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JP모간의 라자 굽타 분석가는 “유동성 위기에 몰려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충분히 생존 가능한 모델”이라며 “다만 중고차 시장이 살아나더라도 카바나의 주가가 V자형 회복세를 보이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