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후 기술 기업 - 이온어스

[ESG 리뷰]
사진=김기남 기자
사진=김기남 기자
지난 10월 25일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이온어스 연구소에 도착하니 주차장에 흰색으로 도색한 트럭이 여러 대 주차돼 있었다. 이온어스의 주력 제품인 이동식 발전기 인디고(Indego)다. 인디고는 ‘인디펜던트 파워 고(Independent power Go)’의 준말로, 전선에서 독립됐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전력이 충전된 커다란 배터리를 실은 이동형 에너지 저장 장치(ESS)라고 할 수 있다. 전력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가서 전력을 공급해 준다.

허은 이온어스 대표는 인디고에 대해 “산업용으로 쓰는 커다란 보조 배터리 또는 파워 뱅크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웃었다. 인디고는 ESS처럼 산업 공정이나 건물에서 실제 사용하는 전력(3상4선식 380V 교류)을 충전해 필요할 때 공급한다. 허 대표는 “개념은 ESS와 비슷하지만 차량용이기 때문에 ESS와 구체적 설계는 다르다”며 “배터리 구조나 전력 변환 장치 등을 이동형 발전기의 목적과 형태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배터리를 싣고 전력이 필요한 곳까지 안전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최적의 상태를 갖추는 것이 이온어스의 노하우다.
“디젤 발전기 대체하는 이동형 배터리…북미 진출이 목표죠”
경제적이면서 탄소 배출이 적은 ‘움직이는 ESS’
현재 인디고는 축제와 이벤트 행사, 건설 현장 등에 쓰인다. 지난 10월 초 성남시에서 개최한 성남파크콘서트에 발전원으로 쓰였고 서울시에서 매주 일요일에 여는 ‘차 없는 거리’ 행사에도 참여해 잠수교 일대 플리마켓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소음 등이 없어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과 가까운 곳에 주차할 수 있는 것도 인디고의 장점이다. 인디고는 건설 현장 투입을 위해 현대건설과 실증 사업을 시작했다. 건설 설비나 기계를 시운전할 때도 인디고를 이용하면 안정적이고 높은 전력 품질을 제공하는 전력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이동형 전력 시장은 디젤 발전기가 주를 이루지만 이온어스는 이 시장을 친환경 발전기로 대체한다는 생각이다. 한국 디젤 발전기 임대 시장만 해도 연간 2700억원 규모이고 그중 30%를 인디고로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친환경적인 그린(green) 발전기가 탄소 배출이 높은 그레이(gray) 발전기를 대체하는 개념이다.

이동형 디젤 발전기와 인디고는 여러 점에서 차별화된다. 디젤 발전기는 엄청난 소음 공해와 함께 진동·미세먼지·매연·냄새 등 다양한 환경 오염을 유발한다. 최근에는 기름값이 올라 경제성 측면에서도 장점이 사라지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쓰는 커다란 디젤 발전기는 하루 기름값만 수천만원씩 들어가지만 뾰족한 대체재가 없었다.

“인디고는 디젤 발전기에 비해 소음이 없고 매연과 미세먼지도 없으며 이산화탄소 배출 역시 극단적으로 낮춰 준다. 인디고를 재생에너지로 충전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제로에 가깝고 한국전력이 공급하는 전기로 충전해도 배출량을 약 80% 줄이는 환경 효과가 있다. 연료비 절감액에 비하면 액수는 적지만 탄소 배출권도 얻을 수 있다.”

특히 많은 양의 전력을 쓸 때 인디고의 경제성이 두드러진다. 이온어스에 따르면 10MWh의 전력을 공급하려면 디젤 발전기로는 6400리터의 디젤 연료가 필요하다. 현재 기준 연료 가격은 1200만원 정도다. 인디고는 같은 양의 전력을 공급하는 데 60만원밖에 들지 않는다. 탄소 배출량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디젤 연료를 쓰면 이산화탄소가 약 17톤 발생하지만 인디고는 한국전력 전기로 충전해도 배출량이 4.6톤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전력의 전기는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가스나 석탄으로 생산한 전력이 섞여 있다. 이온어스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고객을 위해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고 거기에서 확보한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와 탄소 배출권을 활용해 탄소 배출이 없는 전기를 이용하도록 설계돼 있다. 아직은 각종 규제로 실행이 어렵지만 관련 법이 개정되면 곧바로 적용할 수 있다.
‘태양광 발전소 렌털’…RE100 구독 서비스도
이온어스는 기업 파트너들과 함께 만든 태양광 발전소를 통해 RE100(재생에너지 100%) 가입 기업에 RE100 월 구독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오비맥주가 이온어스와 RE100 정기 구독 계약을 체결했다. 이온어스가 오비맥주 광주·청주·이천 공장에 발전 용량이 12GWh에 달하는 자가 소비형 태양광 발전 설비를 대신 구축해 주고 월 이용료를 받는 방식이다.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도 이온어스와 RE100 전략 컨설팅 계약을 하는 등 탄소 중립에 관심이 있거나 실행에 착수한 기업들이 이온어스의 구독형 RE100 모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태양광 발전소를 정수기 렌털처럼 고객사에 설치해 주고 20년간 렌털비를 받는다. 고객은 렌털 기간 동안 태양광 발전소를 쓰면서 생산 전력을 모두 생산 공정에 투입할 수 있다. 진정한 RE100이라고 할 수 있다.”
“디젤 발전기 대체하는 이동형 배터리…북미 진출이 목표죠”
허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 10여 년간 ESS 연구·개발(R&D) 사업에 몸담아 왔다. 한국이 배터리 종주국, ESS 종주국이라고 할 정도로 ESS 시장이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ESS 연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동형 에너지 사업을 꿈꾸게 됐다. ESS처럼 상용 전력을 기반으로 하되 이동성을 갖춘 형태를 구상했는데 초기에는 배터리가 너무 비싸 실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리튬이온배터리의 성능이 개선되고 가격이 떨어져 경제성만 갖춘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0년 2월 이온어스를 설립했다. 이온(aeon)은 영겁의 시간, 어스는 지구(earth), 우리(us)라는 뜻이고 ‘지속 가능한 지구’ 혹은 ‘지속 가능한 우리’라는 의미로 지은 것이다.

현재 이온어스의 서비스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돼 있다. 규제 샌드박스란 법체계에서 상용화할 수 없는 것을 일시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 전기 장치 인증 기준 등이 모두 고정형 ESS를 기준으로 규정돼 있어 새로운 방식인 이동형 ESS에는 적용하기 어려웠다. 즉 상업용 전력을 이동한다는 개념이 없어 한국전력의 계통 경제 기준에 맞춰져 있지 않았다. 실증 특례 승인으로 이동형 ESS의 판매·대여 등 상용화의 길이 열렸다. 앞으로 관련 법이 개정되면 사업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온어스의 목표는 ‘에너지 모빌리티(energy mobility)’라는 새 사업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대용량 에너지를 운반하면서 필요할 때 전기를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태양광 발전소나 풍력 발전소에서 산업용 유휴 전력을 저장해 주던 고정식 ESS와 이동성이 있는 자동차의 장점을 결합한 형태다. 이온어스는 인디고 같은 이동형 발전기 대여 사업에 그치지 않고 차량용 배터리 팩 제조 사업도 곧 시작할 계획이다. 오는 12월 연구소 내에 배터리팩 조립 라인을 갖출 예정이다.

“배터리팩 만드는 업체는 많지만 주로 고정된 형태로 사용하는 산업용 배터리팩을 만든다. 우리는 구동 축전지라고 부르는 차량 전용 배터리팩을 만들고 있다. 이 팩은 전기차 개조나 차량용 배터리 재이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쓰인다. 배터리팩을 만들면 이온어스가 배터리 관련 서비스를 하는 기업의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최근 배터리업계에서는 ‘BaaS’라는 말이 화두다. BaaS는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고객의 사용 패턴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형 배터리(Battery-as-a-Service)를 뜻한다. BaaS 생태계는 배터리 제조부터 전기자동차 제작, 배터리 대여 및 충전, 재사용 제품 활용 등 자원 순환 경제를 기반으로 창출되는 다양한 서비스로 확장될 수 있다. 최근 에바·그리드위즈·식스티헤르츠 등 전기에너지를 기반으로 배터리를 사용하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이온어스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배터리팩을 만들어 줄 수 있고 대여 사업을 통해 소유 비용도 절감해 줄 수 있다.

현재 이온어스가 인디고 서비스를 직접 하는 이유는 고객의 소리를 듣고 서비스를 빠르게 개선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배터리 제조 사업이 안착하면 배터리 플랫폼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행사 수요자와 발전 기업체를 플랫폼으로 연결해 주는 것이다. 이온어스는 운영 데이터를 확보해 전력 사용량과 탄소 배출 감축량 등으로 리포트해 준다.
“디젤 발전기 대체하는 이동형 배터리…북미 진출이 목표죠”
사용 후 배터리 재활용 위해 연구·개발
배터리 사업은 무엇보다 배터리의 안정성이 중요하다. 이온어스는 배터리의 성능 측정과 배터리팩의 안정성을 연구하기 위해 군포에 자체 연구소를 마련했다. 연구소 1층에 들어서자 방사능 표시가 붙은 거대한 CT 기계가 눈에 들어왔다. 제너럴일렉트릭(GE) 계열사 베이커휴즈에서 구매한 영상 진단 장비다. 이온어스는 병원의 영상의학과처럼 자체 3D CT 비파괴 검사 시설을 갖추고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살펴본 뒤 진단한다. 배터리 성능과 안정성 검증도 수차례 실시한다. 사용 후 배터리(폐배터리) 활용을 감안한 품질 관리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해서다.

배터리를 사용하다 보면 배터리 내부 내용물의 색상이 변하거나 단자가 변하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지만 충격을 받거나 과열된 흔적일 수도 있다. 비파괴 장치를 통해 배터리가 얼마나 안전한지 모니터링한 데이터를 축적하면 안전한 배터리만 골라 쓸 수 있다. 허 대표는 글로벌 스타트업 중 배터리에 비파괴 검사를 도입한 것은 이온어스가 최초라고 말했다.

이온어스는 현재 인디고에 새로 구매한 배터리를 사용한다. 향후 전기차에 장착된 사용 후 배터리가 쏟아져 나오면 이를 활용할 계획이다. 사용 후 배터리는 70~80%의 수명이 남아 있는 데다 가격도 저렴해 이를 잘 활용하면 경제성을 높일 수 있다. 사용 후 배터리를 활용하는 데는 안전성이 중요하다. 5년 뒤 사용 후 배터리 사용이 본격화되면 이온어스의 축적된 노하우가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디고와 같은 이동형 발전기 사업은 유럽에서 더욱 활발하다. 2018년께부터 그리너(네덜란드), 노스볼트(스웨덴), AMPD 에너지(홍콩), 엑셀트릭스 파워(호주) 등이 배터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중 그리너는 인디고와 유사한 이동형 발전기 사업 모델이다. 건설 현장용, 이벤트 전력 공급용 등 다양한 특화 제품을 공급하는 데 최근 587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배터리 셀과 모듈, 모듈러 팩을 만드는 노스볼트는 BMW그룹에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온어스의 메인 타깃은 북미 시장이다. 이온어스의 투자사인 현대코퍼레이션·현대엠파트너스 등과 현지 시장을 분석한 결과 이동형 배터리 수요가 많아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제품 양산을 시험한 뒤 곧바로 북미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본격적인 배터리 양산 라인은 미국에 구축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 시행도 기회 요인이다. 지난 8월 미국 캘리포니아에 지사를 설립했고 내년 초 열리는 세계 가전 전시회(CES)를 계기로 글로벌 행보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자동차가 전기차로 바뀌면서 차량 가격이 더 비싸졌다. 그런데도 없어서 못 파는 실정이다. 발전기도 결국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전 지구적 기후 위기와 연료 문제, 기업과 공공 기관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탄소 중립 등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시장 전환이 예상된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410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