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줄어드는 소비…향후 한국 경제의 ‘취약점’ 될 수도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을 찾은 고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을 찾은 고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MZ세대’는 우리 경제에서 소비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성향을 꿰뚫는 것은 기업 마케팅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MZ세대가 벼랑 끝에 몰렸다는 조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시기, 주식과 암호화폐 등에 뛰어들어 과감히 ‘빚투’까지 감행했다. 하지만 주식과 암호화폐 시장이 침체되고 설상가상으로 금리까지 치솟자 대출 이자가 불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MZ세대는 ‘0원 챌린지’, ‘짠테크’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소비를 줄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지갑을 닫는 것이 단순히 개개인의 소비 형태 변화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향후 우리 경제에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의 등장

이에 따라 금융회사들은 최근 들어 MZ세대의 닫힌 지갑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11월 21일 보고서를 통해 MZ세대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경기 수축기에 여가와 취미 활동 등 소비를 크게 줄이면서 경기 부진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부진한 한국의 가계 소비를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와 가계 소비가 함께 침체되기 시작한 이유는 MZ세대와 베이비 붐 세대의 소비 감소가 큰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MZ세대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대 소득·자산 기반 취약, 부채 증가 등으로 외식비·차량 유지비·교양 오락비·통신비·내구재 등 소득 탄력성이 큰 선택 소비를 중심으로 지출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나온 연구들은 경기 수축기, 소비 부진의 원인을 5060세대에서 찾았다. 고령층에 돌입한 세대가 다가올 미래에 소득이 약해질 것에 대비해 지갑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는 고령층의 소비 감소도 커다란 타격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MZ세대의 위축된 소비가 향후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처음으로 주목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문제는 MZ세대가 소비를 줄이는 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MZ세대는 소득·자산·부채 등 전반적인 경제 상황에서 이전 세대들보다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 출생자들을 시작으로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라는 명칭이 붙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발표한 ‘MZ세대의 현황과 특징’ 보고서에서 MZ세대의 불안정한 경제 상황을 지적했다. MZ세대는 향후 상당 기간 한국 인구의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금융 취약성은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18년 MZ세대(결혼한 상용직 남성 가구주 기준)의 연간 총소득은 2000년 동일 연령대(1962~1977년생) 대비 1.5배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MZ세대의 총소득 증가는 주로 이전 소득 증가에 따른 것으로 이를 제외하면 실제로는 더 낮은 것이다. 실제로 2018년 MZ세대의 이전 소득은 이전 소득이 본격적으로 증가한 2005년 동일 연령대에 비해 2.1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전 소득은 생산에 직접 기여하지 않고 얻는 소득으로 지원금이나 실업 수당을 말한다. 여기에 부모에게 받는 증여도 이전 소득에 포함된다.
부채 느는데 소득 제자리…경제 한파에 더 추운 MZ세대

진짜 문제는 ‘일자리 양극화’?

소득도 이전 세대보다 취약하지만 부채도 더 늘어났다. MZ세대의 총부채는 주택 마련 목적의 금융회사 차입 증가로 2000년 이후 대폭 늘었고 X세대와 베이비 붐 세대의 총부채 증가 폭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MZ세대의 총부채는 2000년 동일 연령대의 총부채 대비 4.3배 수준으로 증가했는데 이는 X세대의 2.4배, 베이비 붐 세대의 1.8배와 비교할 때 매우 높은 수준이다.

최영준 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실 연구위원은 “MZ세대는 불황기에 처음으로 취직해 근로 소득이 적은 데다 생활비 등을 빼면 금융 자산 축적을 위한 종잣돈 마련이 쉽지 않아 금융 자산 축적도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2012년께부터 MZ세대 연령대가 투자를 위한 현금의 임시 보관처로 수시 입출금식 은행 예금을 선호하면서 은행 예금과 금융 자산이 소폭 증가했다”고 말했다.

사실 MZ세대의 생애 주기에서 빚을 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들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학자금 대출로 빚을 졌다. 가까스로 취업문을 통과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더라도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만 했다. 저성장 시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근로 소득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주식·암호화폐·부동산 등 과감한 투자로 이익을 보려는 성향이 강했다.

투자 열기가 가라앉고 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이들의 부채는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부채가 많으면 근로 소득을 통해서라도 버팀목을 마련해야 하지만 이조차 쉽지 않다. 경기 침체로 인해 고용이 줄어들면서 청년층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 자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임금 근로 일자리는 1년 전보다 63만 개 가까이 늘면서 2000만 개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는 양적 성장일 뿐 일자리 수 증가 폭은 직전 분기보다 둔화했다. 청년층 일자리는 30대는 2만5000개, 20대 이하는 2만1000개로 소폭 증가하는 것에 그쳤다. 늘어난 30대 이하의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 증가 규모의 7.3% 수준이다.

이 때문에 MZ세대가 벼랑 끝에 몰린 진짜 원인을 일자리의 양극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월 발표한 2020년 임금 근로 일자리별 소득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소득은 각각 529만원과 259만원으로 두 배가 넘는 격차를 기록했다. 여기에 대기업들도 공채 대신 특채를 도입하고 신입보다 경력직을 선호하면서 청년층은 취업 자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가올 불황에 기댈 것은 근로 소득뿐이지만 MZ세대에겐 이를 확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