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자동차는 남성들의 장난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남성들의 집착은 대단합니다. 집은 못 사도 차는 좋은 것을 타겠다는 젊은이들은 넘칩니다. 3년 후 받을 수 있는 고급차를 사기 위해 수백만원을 선뜻 예약금으로 건 40대, 50대도 주변에 꽤 있습니다. 이런 성향에 대한 심리학적 근거도 있습니다. 포르쉐를 몰 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 호르몬으로, 포르쉐를 타고 도심을 달릴 때 더욱 상승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차의 엔진뿐만 아니라 남성의 내분비 엔진도 가속화된다는 얘기입니다.

남성뿐만 아니라 한 국가에서 자동차 산업이 갖는 정치·경제적 의미도 중요합니다. 영국이 대표적 예입니다. 영국 자동차 브랜드중 기억나는 게 있는지요. 롤스로이스·벤틀리·애스턴 마틴·랜드로버·재규어·미니 등은 영국에서 시작된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모두 독일의 폭스바겐과 BMW, 인도의 타타 등에 팔려 버렸습니다. 제조업 하면 영국이 떠오르지 않는 이유입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영국은 과도한 복지와 임금 상승 그리고 생산성 저하로 경제가 침체하는 영국병에 걸려 버립니다. 영국병의 심화는 자동차 산업의 몰락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국가별 자동차 생산 순위의 변화는 산업 판도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미국의 시대였습니다.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1950년 세계 자동차 생산의 80%를 담당했습니다. 1960년에도 절반 가까이가 미국 몫이었습니다. 이 시기를 미국에서는 ‘황금자본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당시 미국에 이어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캐나다가 자동차 생산국 상위를 차지했습니다. 수십년간 이들 7개국은 과점 체제를 형성합니다. “자동차 산업에 성공한 나라는 G7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 배경입니다. 우리가 ‘선진 7개국 정상회담’이라고 불렀던 회의 당사국도 이들 나라입니다.

7개국 내 순위 변동은 제조업의 성쇠를 보여줍니다. 일본은 1963년 프랑스와 이탈리아, 1965년 영국을 차례로 제치며 3위로 뛰어오릅니다. 1968년 일본은 독일마저 제치고 세계 2위 자동차 생산국이 됩니다. 일본 제조업이 세계 시장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는 초입이었습니다.

970년대와 1980년대는 일본의 시간이었습니다. 일본의 자동차 생산은 1960년 48만 대, 1970년 528만 대를 기록합니다. 1978년 미국을 꺾고 세계 1위에 오릅니다. “미국 비즈니스 전략의 역사는 1970년대 일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시작됐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에서는 1975년 첫 독자 모델 포니 생산을 시작합니다.

1990년은 아시아 자동차 업체에 중요한 해였습니다. 일본은 1348만 대 생산으로 정점을 찍습니다. 한국은 142만 대로 9위, 중국은 50만 대로 13위, 인도는 37만 대로 14위로 순위권에 얼굴을 내밉니다.

이는 1990년대 지각변동으로 이어집니다. 우선 G7 신화는 깨집니다. 주인공은 한국이었습니다. 한국은 1992년 영국, 1993년 이탈리아·스페인을 제치고 7위권에 진입합니다. 1994년에는 5위까지 올라섭니다. 그해 고성장기를 구가하던 미국은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 빠져든 틈을 타 1위 자리를 되찾아 옵니다. 1997년 해외 자동차 업체들의 현지 공장 설립으로 중국은 자동차 생산 10위권에 진입합니다.

2000년대 세계 자동차업계는 요동칩니다. 중국·브라질·멕시코·인도가 10위권에 진입합니다. ‘자동차 산업의 선진국 과점’ 구도는 완전히 파탄납니다. 중국은 2008년 생산량 1위에 올라서고 2위가 된 미국과의 차이를 벌려 나갑니다. 미래의 게임 체인저가 될 테슬라는 2003년 탄생합니다. 2010년 GM과 도요타가 합작해 세운 프리몬트 공장이 테슬라 공장으로 바뀐 것은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2021년 자동차 생산국 순위는 중국·미국·일본·인도·한국·독일·멕시코·브라질·스페인·태국 순입니다. 세계 제조업의 패권 지도가 눈에 보이는 순위입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이뤄진 20여 년간 인수·합병(M&A)의 역사를 다뤘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중산층을 탄생시키고 키우는 요람입니다. 고용의 보루 역할도 합니다. 전기차 대중화로 120년간 이어진 엔진의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새로운 빅뱅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합니다. 이럴 때 한 번쯤 격변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