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보다 ‘더 길고 고통스러운’ 경제 위기 대비해야

‘닥터 둠’ 루비니 교수 “2차 세계대전과 닮은 오늘날…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 올 것”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부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를 정확히 예측하며 ‘닥터 둠’으로 잘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가 12월 2일 그랜드 조선 제주에서 열린 ‘제주포럼 2022년 회기간 회의’에 참여해 ‘거대한 위기가 온다 : 공존과 협력의 전략 모색’이란 주제로 화상 강연했다.

세계는 지난 75년간 자유 무역과 국제적 협력을 바탕으로 많은 발전과 번영을 이뤘다. 이 때문에 앞으로의 20년도 과거와 비슷하게 전개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이라는 경고로 루비니 교수는 강연을 시작했다. 루비니 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는 1914년부터 1945년 상황과 비슷하다. 당시 지구촌은 세계화가 가속화되는 듯했지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이후 1918년 스페인 독감을 경험했다. 그리고 찾아온 것이 1929년 대공황이었다. 인플레이션이 심화됐고 금융 시장의 혼란은 더해졌다. 대규모 실직 사태가 이어지며 전 세계 경제는 더욱 침체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1939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까지 6년 동안 지속됐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확립했고 자유 무역을 바탕으로 유례없는 평화와 번영의 시기를 누렸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10년간의 스태그플레이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의 고비가 있었지만 극복해 냈다. 루비니 교수는 “최근 세계 여러 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역풍으로 인해 극단주의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포퓰리즘이 고개를 들고 있다”며 “좌파든 우파든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게 다 극단주의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푸틴과 이탈리아의 네오파시스트 정권,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외 미국의 트럼프 당선, 브라질 룰라 당선, 중국 시진핑 등이 모두 이와 같은 맥락이다. 오늘날 강대국 간 전쟁이 일어난다면 아주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다. 더욱이 오늘날 강대국들은 핵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1940년대보다 상황이 더 악화될 위험 또한 크다.

루비니 교수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오늘날 전 세계가 마주하고 있는 경제 위기는 과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한다.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거대 위협들이 얽히고설킨 ‘복합적인 위기’이기 때문이다. 루비니 교수는 “1930년대만 하더라도 인류가 기후 위기로 인한 위험에 직면해 있지도 않았고 인공지능(AI)의 발전이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라는 우려도 없었다”며 “미국과 중국의 갈등,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등으로 인한 공급망 붕괴와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정부의 부채 위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모든 것들이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을 만큼 거대한 위협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거대한 위협이 한꺼번에 복합적으로 인류를 덮쳐 오고 있는 만큼 ‘심각한 위기’를 인류가 맞닥뜨리고 있다는 경고다.

최근의 세계 경기 침체와 관련해서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시작된 양적 완화 정책이 팬데믹 기간까지 이어지며 경기 부양을 지나치게 오래 한 상황에서 단기간에 고물가를 잡기 위해 미국이 긴축 강화에 돌입하며 경착륙이 도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루비니 교수는 “부실 기업이 늘어나고 금융 시장에 충격이 더해지고 경기 침체가 악화되는 악순환이 시작될 것”이라며 “1970년대 인플레이션에 경기 침체가 더해진 스태그플레이션이 10년간 지속됐는데 앞으로 닥칠 위기는 이보다 더 길고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관적이기만한 미래 예측과 함께 루비니 교수는 최악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해법을 함께 제시했다. 루비니 교수는 “앞으로의 미래는 힘들겠지만 현재 인류는 그 미래를 더 힘들게 만들거나 혹은 덜 힘들게 만들 수 있는 갈림길에 서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고 국제적 협력, 민간과 정부 간 협력이 이뤄진다면 바람직한 이상주의적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고 당부했다. 그는 “거대한 위협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국가적 차원에서 협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뿐만 아니라 지구에 대한 위기로 이어지고 인간이라는 종이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