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최태원 회장, 노소영 관장에게 665억원 줘라”
‘특유 재산’ 인정된 SK 주식 제외돼 1심 선방

[법알못 판례 읽기]
최태원 SK 회장 사진=한국경제신문
최태원 SK 회장 사진=한국경제신문
‘1조원대 이혼 소송’으로 주목받은 최태원 SK 회장이 배우자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 분할로 665억원, 위자료로 1억원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그동안 공개된 한국 기업인의 이혼 재산 분할 금액 중 최대 규모다.

대규모 재산 분할 결정에도 최 회장과 SK그룹 측은 한숨 돌린 분위기다. 노 관장이 청구한 대로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 지분 17.5% 중 절반을 떼어주는 일은 피하게 돼서다. 다만 노 관장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것을 고려하면 재산 분할을 둘러싼 법적 다툼은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결혼 34년 만에 이혼 판결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김현정 부장판사)는 2022년 12월 6일 노 관장이 최 회장을 상대로 낸 이혼 소송을 받아들이면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 분할로 665억원, 위자료로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은 판결이 확정된 뒤 재산 분할금을 내지 않으면 연 5%의 지연 이자를 물어야 한다.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줘야 하는 금액은 지금까지 공개된 한국 기업인의 재산 분할 금액 중 가장 많다. 최 회장 이전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2004년 이혼할 때 시가 기준 약 300억원어치의 회사 주식(35만6000여주)을 전 배우자에게 넘겨줘 주목받았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1988년 9월 결혼했다. 슬하에 세 자녀를 뒀지만 34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먼저 결별을 선언한 쪽은 최 회장이었다. 그는 2015년 혼외자 존재를 밝히면서 노 관장과 이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2017년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하면서 노 관장과 갈라서기 위한 법적 절차에 들어갔다.

하지만 노 관장이 이혼에 동의하지 않자 최 회장은 2018년 2월 정식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이혼에 응하겠다”며 맞소송을 냈다. 노 관장은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 주식의 50%인 648만 주를 달라고 요구했다. 선고일 종가 기준 노 관장이 요구한 SK(주) 주식의 가치는 약 1조3500억원에 달했다.

SK(주) 주식 지켜낸 최태원

최 회장은 대규모 재산 분할을 해야 할 처지가 됐음에도 SK(주) 주식을 지켜내는 데는 성공했다. 재판부가 재산 분할 규모를 노 관장이 청구한 것보다 대폭 줄인 데다 이마저도 주식이 아닌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해서다. 최 회장이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재판부는 “노 관장이 SK(주) 주식 형성과 유지, 가치 상승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특유 재산’으로 판단하고 재산 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최 회장이 보유한 일부 계열사 주식·부동산·퇴직금·예금과 노 관장의 재산만 분할 대상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혼인 생활 과정과 기간, 분할 대상 재산의 형성 경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금액을 산정했다”고 덧붙였다.

특유 재산은 부부가 혼인 전부터 각자 가지고 있던 재산이나 혼인 중에 한쪽이 상속·증여로 취득한 재산을 말한다. 원칙적으로 이혼 소송에선 재산 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특유 재산의 유지·증식에 기여한 배우자는 본인이 불렸다고 판단되는 가치만큼 분할 받을 수 있다.

이번 재판에서 분할 대상이 된 재산은 2140억여원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노 관장이 이 재산이 형성되는 데 40% 기여했기 때문에 856억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 재산 중 192억여원어치는 노 관장이 이미 본인 명의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뺀 665억원을 최 회장이 지급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을 두고 “SK(주) 주식은 재산 분할 대상이 아니다”는 최 회장 측 주장의 상당 부분을 재판부가 받아들였다고 보고 있다. 최 회장 측은 이번 재판 과정에서 “현재 보유한 SK(주) 주식의 기원은 부친인 고(故) 최종현 전 회장에게 증여·상속받은 SK 계열사 지분이기 때문에 재산 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진=한국경제신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진=한국경제신문
판결 불복한 노소영, 장기 소송전 예고

노 관장은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법적 다툼을 이어 가겠다는 뜻을 내보였다. 노 관장의 소송 대리인단은 12월 19일 이번 재판을 맡았던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김현정 부장판사)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대리인단은 “최 회장이 보유 중인 SK(주) 주식은 최종현 전 회장이 상속·증여한 게 아니라 최 회장이 혼인 기간 중인 1994년 2억8000만원을 주고 매수했다”며 “그 후 최 회장이 경영 활동을 통해 해당 주식의 가치를 3조원 이상으로 키웠고 노 관장은 이 과정에서 내조를 통해 협력했다”고 주장했다.

노 관장 측은 내조도 기업 가치 상승에 기여했다고 봐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대리인단은 “전업주부의 내조와 가사 노동만으로는 주식과 같은 사업용 재산을 분할할 수 없다고 판단한 법리를 수긍하기 어렵다”며 “내조와 가사 노동의 기여도를 넓게 인정하고 있는 최근의 판례와 재판 실무에 부합하지 않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돋보기]
한국 5위 부자 권혁빈 ‘5조 이혼 소송’도 대기

최태원·노소영 부부의 이혼 재산 분할 금액 기록은 오래 지나지 않아 깨질 수도 있다. 한국 5위 부자인 권혁빈 스마일게이트그룹 창업자 겸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가 이혼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이혼이 성립되면 한국의 이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 분할이 이뤄질 것이 유력하다.

서울가정법원은 2022년 12월 7일 권혁빈 CVO의 배우자인 이 모 씨가 “이혼과 재산 분할 소송이 마무리될 때까지 권 CVO가 스마일게이트그룹의 지주회사인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주식 등 재산의 3분의 1을 처분하지 못하게 해달라”며 낸 가처분 소송을 받아들였다. 주식 처분 금지 가처분은 이혼 소송의 첫 단계로 여겨진다.

권 CVO는 이 씨와 결혼한 지 1개월 후인 2002년 6월 현재 스마일게이트그룹의 모태인 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를 세웠다. 스마일게이트는 그 후 20년 동안 몸집을 불리며 1조원이 넘는 매출을 내는 회사로 성장했다. 스마일게이트홀딩스는 2021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매출 1조4345억원, 영업이익 5930억원을 거뒀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스마일게이트의 기업 가치를 10조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권 CVO는 현재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2022년 4월 권 CVO의 재산을 68억5000만 달러(약 8조8000억원)로 평가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에 이어 한국 5위에 올랐다. 법조계에선 이 씨가 이혼 과정에서 권 CVO의 재산 중 절반을 달라고 요구하면 법정에서 다투게 될 재산 분할 규모만 최소 5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재산 분할 요구 금액이 가장 컸던 이혼 소송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 간 소송이다. 임 전 고문은 이 사장의 전체 재산을 2조5000억원 규모로 추산하고 이의 절반가량(약 1조2500억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번 최태원·노소영 이혼 소송과 마찬가지로 이 사장이 결혼 전 보유하던 주식 대부분을 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법원은 2020년 이 사장에게 임 전 고문이 요구한 규모의 0.9% 수준인 141억원어치의 재산만 분할해 지급하라고 확정 판결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