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계는 ‘환영’…의료계는 거센 반발 “초음파는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 필요”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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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온 대법원 판결이 의료계와 한의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22년 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은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동안 사실상 금지돼 왔던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이 이 판결을 계기로 허용된 셈이다.

이번 판결에 한의계는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의료계는 “환자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판결”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1‧2심은 벌금 80만원 선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022년 12월 22일 한의사 A 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무죄 취지 의견으로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A 씨는 한의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 누구든지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 행위를 할 수 없고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 의료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 기기를 사용한 게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재판에서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이 사건 전인 2014년 이와 관련된 판단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위법 여부를 판단할 때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 기기 등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이 있는지, 해당 의료 기기 등의 개발·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한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해당 의료 기기 등을 사용하는 의료 행위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의 응용 또는 적용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해당 의료 기기 등의 사용에 서양 의학에 관한 전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더라도 보건 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지도 따져야 한다.

1심과 2심은 대법원이 제시한 이 같은 기준에 따라 A 씨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한의사의 사용을 명시적으로 금지한 법 규정은 없지만 초음파 진단 기기의 판독을 위해선 서양 의학적인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초음파 진단 기기는 판독에 관해 서양 의학 원리에 기초해 개발·제작된 것”이라고 판단한 근거다.

재판부는 진단 이후 침이나 한약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이 한의학 응용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봤다.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 자체로 인한 위험성은 크지 않지만 진단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판독하지 못하면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상 위험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도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 기준 수정

1‧2심의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깨면서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 기기 사용에 관한 판단 기준을 수정했다. 한의사의 해당 의료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는 여전히 따져야 한다고 봤다.

엑스레이(X-ray)나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장치(MRI)와는 달리 초음파 진단 기기의 경우 한의사의 사용을 금지한 법령은 여전히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과거 제시한 다른 기준들과 관련해선 기기 사용을 불허하려면 과거보다 엄격한 요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보건 위생상 위해 우려’와 관련해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의료 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선 보건 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했다. 또한 진단용 의료 기기가 한의학적 의료 행위 원리의 응용과 무관한 것이 명백한지 살펴봐야 한다고 설시(알기 쉽게 설명함)했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판단하면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을 막을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초음파 투입에 따른 부작용이 보고된 바 없고 임산부나 태아를 상대로도 초음파 진단 기기가 안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보건 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한 초음파 진단 기기가 한의학적 의료 행위와 무관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한의사가 환자에게 침을 놓거나 한약을 처방하는 등 치료 행위에 앞서 진단을 위해 초음파 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한의학적 원리와 일정한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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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헌법재판소 “무면허 의료 행위에 해당”

한편 대법원과 함께 양대 최고법원인 헌법재판소는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이 무면허 의료 행위에 해당한다고 2013년 결정한 바 있다.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이 위법하다고 판단할 여지가 있는 의료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한의사의 헌법 소원을 기각하면서다. 당시 헌재는 “이론적 기초와 의료 기술이 다른 한의사에게 허용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번에 대법원이 과거 헌재 결정과 상반된 판결을 내놓으면서 의료계 파장은 더 증폭됐다. 다만 헌재가 과학 기술의 발전 등에 따라 전향적으로 결정할 가능성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이날 대법원 판단이 헌재 결정과 크게 배치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과거 헌재는 안압 측정기 등 의료 기기를 이용해 진료한 한의사가 기소 유예 처분을 받은 데 불복해 제기한 헌법 소원 심판 청구를 받아들여 기소 유예를 취소하라고 결정하기도 했다.

당시 헌재는 “과학 기술 발전으로 의료 기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돼 보건 위생상 위해의 우려 없이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 자격이 있는 의료인에게 그 사용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법률이) 해석돼야 한다”고 했다.


[돋보기]
대법원 “한의원의 초음파 검사, 국민건강보험 대상인지는 좀 더 따져야”

한의계는 대법원 결정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의료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대한방사선사협회·대한임상병리사협회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초음파 진단 기기를 통한 진단은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의료 행위로, 의사의 지도하에 방사선사와 임상병리사가 수행해야 한다”며 “초음파 진단 기기를 누구나 사용해도 안전하다는 것은 극히 단편적이고 비전문적인 시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의료계 단체들도 대법원 판결에 반발하는 내용의 성명을 잇따라 내놓았다.

다만 진료 현장에서 초음파 진단 기기가 널리 활용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급여 문제가 해결돼야 하는 상황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곧바로 한의원의 초음파 검사료가 국민건강보험 대상이 된다는 취지가 아니다”며 “이는 국가의 보건 의료 정책과 재정의 영역으로 의료법 위반 여부와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대법원 측은 이번 판결을 의료법에 규정된 이원적 의료 체계를 부정하는 취지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도 당부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진단용 의료 기기 사용에 관한 새로운 판단 기준에 따라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초음파 진단 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형사 처분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최한종 한국경제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