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기술 스타트업 276개사에 투자…예상 시가총액 최대 1257억원

이용관 블로포인트파트너스 대표이사 / 사진=블루포인트 제공
이용관 블로포인트파트너스 대표이사 / 사진=블루포인트 제공
한국의 액셀러레이터(AC) 중 최초로 상장을 추진하는 회사가 있다. 2014년 설립된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이하 블루포인트)다. 액셀러레이터는 유망한 스타트업에 투자한 후 멘토링·교육·투자자 연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벤처캐피털(VC)이 어느 정도 성장한 기업을 지원하는 것과 달리 액셀러레이터는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에어비앤비·드롭박스·코인베이스 등 유니콘 기업을 배출한 와이컴비네이터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액셀러레이터다. 하지만 한국에선 VC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 금리 상승과 유동성 경색으로 VC들의 주가가 부진한 가운데 한국의 액셀러레이터 중 처음으로 증시에 입성하는 사례를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 VC보다 먼저 스타트업에 창업 자금 지원

액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의 창업 초기 자금을 투자한다. 창업자와 함께 사업 모델을 고민하고 시장의 문제를 검증하는 창업 기획자이자 멘토로 활동하면서 회사를 육성한다. 이렇게 기업 가치를 높인 다음 VC 등에 보유 지분을 매각하거나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로 자금을 회수해 수익을 내는 것이 액셀러레이터의 사업 모델이다. 초창기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것은 액셀러레이터의 고유한 영역으로 평가된다.

블루포인트는 기술 전문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를 한 뒤 시리즈B 투자 단계에 투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지난해 말 운용 자산 규모는 1147억원으로 자기 자본(고유 계정)이 315억원, 펀드가 832억원으로 나타났다. 자기 자본 투자를 통한 영업수익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217억원, 투자 조합 수익은 26억원이다.

한국의 투자 시장은 최근 5년간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투자 금액이 꾸준히 증가했다. 2021년 한국의 벤처 투자 금액은 연간 7조원에 달했다. 2017년 약 2조4000억원에서 4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투자받은 기업도 2017년 1266개에서 두 배 가까이 증가한 2438개로 나타났다. 정부가 2020년과 2021년 2년 연속 모태펀드를 1조원 이상 조성해 벤처 투자 시장에 충분한 투자 자금을 공급한 결과다.

투자 규모도 커졌다. 2021년 벤처 투자를 유치한 기업 중 100억원 이상 대형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은 총 157개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7년 100억원 이상의 대형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이 29개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세 배 이상 늘었다. 벤처 투자 활성화로 더 많은 자금이 유입되고 창업 단계에서 투자를 유치한 기업들이 지속적인 성과를 보이면서 선순환 효과에 따라 투자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장하면서 해외 투자자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로켓배송으로 성공한 쿠팡, 배달의민족을 창업한 우아한형제들, 하이퍼커넥트 등 한국 스타트업이 연이어 IPO와 M&A에 성공하면서다. 2021년 10월 기준 해외 VC는 한국 스타트업에 4조9561억원(147개)을 투자했다. 전년 연간 투자 금액 8718억원(128개)보다 약 6배 증가했다. 초기 단계인 ‘시드(Seed)’부터 시리즈A에 해당하는 초기 단계의 투자도 1506억원으로 나타났다. 초기 스타트업에도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일부 해외 투자자들은 성장 잠재력이 있는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있다. 해외 투자사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발판으로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이 가속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벤처기업가 DNA 살려 테크 기업에 집중 투자
한국 최초 상장 추진하는 액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파트너스[전예진의 마켓 인사이트]
한국 최초 상장 추진하는 액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파트너스[전예진의 마켓 인사이트]
블루포인트는 스타트업 중에서도 주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투자한다. 전기기계·장비·화학소재·바이오·의료 등 기술 기반 기업에 주력한다. 이는 창업자인 이용관 대표의 배경과 관련이 있다. 이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물리학과 학사 학위와 석사 학위를 받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 중이던 2000년 반도체 장비 기업 플라즈마트를 창업했다. 이후 플라즈마트의 지분을 2012년 미국 나스닥 상장사 MKS에 매각한 후 액셀러레이터를 창업했다. 벤처기업가로 플라즈마트를 경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 적절한 사업 모델을 설정하고 팀 구축을 체계적으로 돕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대표는 TIPS 운영사 협의회, 카이스트 창업원의 사업 운영 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의 조직위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바이오 랩센트럴 설립 기획추진단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창업 지원 활동을 해왔다. 산업 전문성과 창업 초기의 경험을 예비 창업자들에게 공유함으로써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겠다는 것이 그의 경영 철학이다. 이 대표는 “많은 창업자가 좋은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사업화하고 조직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전에 스타트업을 경험하거나 창업했던 분들을 심사역으로 영입해 이런 문제를 잘 이해하고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블루포인트는 액셀러레이터 중 업력이 상대적으로 짧은 데도 불구하고 2016년부터 투자 건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기업 인지도가 높아지고 한국의 벤처 투자 시장이 성장하면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2022년 9월 말 기준 보유한 투자 포트폴리오는 누적 262건이다. 업력 12년의 한국 최초 액셀러레이터인 프라이머의 누적 투자 건수(217건)보다 많다. 투자 기간이 짧지만 후속 투자 유치 비율이 높은 편이다. 기술 스타트업이 성장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림에도 불구하고 블루포인트만의 스타트업 육성 노하우를 통해 포트폴리오 기업 중 75% 이상이 후속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포트폴리오는 크게 하드웨어·소프트웨어·바이오 헬스케어로 나뉜다. 분산 투자를 통해 매년 달라지는 트렌드에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 "혁신 스타트업 초기 투자 기회 제공할 것"
한국 최초 상장 추진하는 액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파트너스[전예진의 마켓 인사이트]
블루포인트가 투자한 기업이 5년 이상 생존하는 비율은 폐업 및 손상된 35개의 기업을 제외하고 85.3%다. 대한민국 평균 창업 기업 생존율(29.2%)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40.7%)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 지원 기업의 5년 차 생존율(57.1%)과 비교해도 블루포인트가 투자한 기업의 생존율이 훨씬 높다. 회사 관계자는 “재무적 안정성이 비교적 높고 자금 조달 창구가 비교적 다양한 기술 기반 벤처기업에 주로 투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블루포인트의 경쟁력은 투자 경험을 기반으로 체계적인 심사 절차와 투자 시스템이다. 이 회사는 스타트업의 경영 상태를 진단하고 필요한 전문가를 소개해 줄 수 있는 투자 데이터 관리 시스템인 ‘래티스’를 자체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정관 변경과 마케팅 등 사업 초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블루패밀리케어’와 카이스트 연구원과 학부생, 창업자가 한 공간에서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작점’ 등도 개발했다. 이를 기반으로 스타트업 투자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다.

블루포인트는 2월 6~7일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수요 예측을 진행하고 공모 절차에 돌입한다. 공모가는 8500~1만원으로 제시했다. 예상 시가 총액은 1068억~1257억원이다. 한국투자증권이 주간사 회사를 맡았다. 2020년 한 차례 상장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후 재도전이다.

블루포인트는 상장으로 스타트업 투자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기술이 액셀러레이터를 만나 사업화에 성공하면 스타트업의 실패 확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며 “일반 투자자들도 혁신 스타트업의 성장에 간접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통로가 되겠다”고 말했다.


전예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ace@hankyung.com